2003.10 | [삶이담긴 옷이야기]
할머니의 무명베 세필
최미현 패션디자이너(2005-01-05 15:29:35)
추석이라 선산에 성묘를 다녀왔다. 언젠부터인지 멀리서 할머니의 무덤이 보이면 괜히 눈물이 핑 돌아서 발을 헛딛고는 한다.
부모님도 나도 말이 없이 괜히 헛기침만 한다. 더구나 아버지가 아파서 큰 수술을 받은 후라 서로 눈치만 본다. 이런 작은 산자락이라도 있어서 옹기종기 집안의 무덤들이 모여 있고, 나도 죽으면 여기 묻히련 하고 생각하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형편이 어려울 때도 고집스럽게 시골집을 팔기만은 거부하던 아버지 덕에 우리 시골집은 남아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아서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곳 마루에 앉아서 조부가 심었다는 나무들이 풀이 돋아난 마당에 떨어뜨리는 그림자며 뒤 곁의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아무리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배워도 내 근본 정서는 이곳에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는 한다. 내 유년의 모든 기억은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부자가 자기 첩을 주려고 지었던 집이라 새 베를 사서 마루를 한번 닦고는 버렸다는 이 집을 증조부가 사서 이사를 했고 아버지와 우리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장성에서 살던 할머니는 북쪽 혼인은 하지 말라던 판수의 말을 어기고 할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시집 온지 사흘 만에 새색시가 처음 차린 밥상을 던질 만큼 성질 고약한 시어머니와, 아픈 시아버지, 바람피는 남편... 할머니의 삶이란 여는 복 없는 한국 여인의 삶과 다르지않다. 딸도 없이 외아들인 아버지를 금쪽 같이 여기면서 사셨는데 손자 손녀가 다섯으로 불어나 할머니 말년은 그렇게 쓸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 사흘들이 아파서 눕고는 했다는데 마음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니 아프지도 않더라고 하시고는 했다. 그 때 할머니가 손수 짰다는 미영 베(무명 베) 세필을 내가 간직하고 있다.
직접 밭에 목화를 키우고 거두어 씨를 빼고 실을 만들어서 베틀에 걸어 짜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이었을까. 반세기를 넘어도 이 거친 무명베는 마치 새 것처럼 말짱하다.
'내가 밤에 이대로 걸어서 집을 나가버리려고도 몇 번이나 했지만, 저 어린것(우리 아버지)병신 될까봐 어디까지 갔다가 되 오고는 했다.' 는 할머니의 질긴 마음을 담아서 짠 것이라 그런가 싶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할머니를 아는 동네 어른들이 너는 꼭 장성양반을 닮았다고 한다.
그럴 때면 괜히 가슴이 철렁해서는 혹시 나도 할머니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염려가 되고는 했었다.
이제 마흔이 넘어서 속으로 가늠해 보건대 나는 생김새나 성격이나 모두 할머니를 닮았다. 어떤 인연으로 한 가족으로 태어났는지는 몰라도 세월을 넘어서 한편에는 할머니가 다른 한편에는 내가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가 보다.
이런 생각들로 처음으로 패션쇼를 열었을 때 주제가 태(胎)였다.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들을 옷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있기까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질기게 이어지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인연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면서 속으로 감탄스럽기만 하다.
지지 않는 생명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