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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 | [교사일기]
뜯어진 교복을 꿰매주는 선생님
이난숙 이리공고 교사(2005-01-05 15:27:04)
우리학교는 공업고등학교이다. 그 어떤 실업계학교보다 학생들이 거칠기로 소문난 학교이다. 새로 부임해온 선생님들은 처음 1년 내내 적응하는데 무척 힘들어한다. 그러나 하루하루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그들의 거칠음 뒤에 숨겨진 아픔을 보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사회 구조적 모순과 교육정책의 문제가 실업계 교육에 집적되어 있으며 교사들이 학교 안에서 이 문제들을 껴안기에는 문제가 너무 버겁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교육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으며 교육에 대해 불만이 없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교육의 현실을 개탄한다. 그래서 수많은 진단과 정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곳엔 실업계에 대한 고민은 없다. 온갖 후광은 인문계학생들에게 집중되고 고등학교의 50프로를 차지한 실업계 학생들은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언제나 뒷전에서 인문계를 위한 정책에 덤으로 딸려갈 뿐이다. 인문계학생들만이 자신의 미래를 열기 위해 노력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고 여기에서 탈락된 실업계 학생들은 단지 개인의 무능으로 낙오자가 되었을 뿐이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실업계 학생들은 무기력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없고 야심도 없다. 미래가 없으니 자신의 삶이 앞으로 어떤 모양새가 되는가가 관심이 없다. 그러기에 즉자적이고 충동적이다. 당연히 학교 중퇴자가 대단히 많다. 문제 해결 방식도 현실에서 합리적 해결보다는 힘에 의한 해결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이 온전히 학생들의 탓이 아니다. 우리 사회구조와 교육 정책이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사회적 계급분화가 완성되어져서 자신의 열악한 상황을 개인이 극복하고 자수성가를 이룰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부모님의 사회적 조건이 그대로 대물림되는 사회가 되었다. 더구나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인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못하는 계층의 자녀들은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현시킬 조건을 갖지 못한 채 이미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실업계학생들의 환경을 조사하면 대한민국의 평균치에 도달하지 못할뿐더러 생각이상으로 열악하다. 소위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제대로 된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30명으로 구성된 반에서 이혼가정, 혼자된 아버지나 어머니, 아니면 1대와 3대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과반수를 훨씬 넘는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앉아 차분히 얘기할 조건이 되지 않으며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어른도 선배도 없다. 그러기에 이들에게는 공교육의 혜택이 더욱 절실하고 학구적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고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라는 훈계보다는 그들이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사랑을 주는게 더 중요하다. 우리 학교에는 그런 보석같은 선생님이 많다. 우리학교의 K모선생님, Y모선생님 온 몸으로 학생을 사랑한다. 언제나 어떤 상황속에서도 학생편이다. 교육의 그 어떤 것도 학생아닌 것을 위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철저한 신념의 소유자이다. 학생이 어떤 잘못을 해도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일단 학생편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시간만 나면 학생들과 함께 대화한다. 특별한 상담활동이 없다. 선생님의 일상이 모두 상담시간이다. 학생들이 연락하면 일요일이든, 한밤중이든 뛰어나간다. 반 학생들이 공동실습소에 입소해서(실업계 학생들은 실습을 위해서 년 1회1주일-2주일동안 공동실습소가 있는 학교로 수업을 한다.) 일주일간 학교에 오지 않으면 학생들이 보고 싶어서 날마다 찾아갈 뿐 아니라 학생들이 힘들다고 떡해주고 밤새도록 김밥을 싸서 갖다 준다. 거칠다고 소문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매를 드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갈수록 눈매가 선해진다. 우리 아이들은 마음 붙일 곳이 없다. 부모님과 온전하게 사는 학생이 드물고 설혹 건재하다 하더라도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경우가 태반이라 서로 얼굴을 마주칠 시간도 없다. 또 마음의 여유도 없다. 1차적 집단인 가정 속에서 마음의 정처를 찾지 못하니 늘 방황하고 자극적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런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선생님이 있어 아이들은 마음 붙일 곳을 길거리나 피시방, 술집에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찾는 계기가 된다. 배움의 기쁨은 몰라도 좋다. 다만 선생님이 좋아서, 왠지 선생님이 의지가 되어서 학교오기를 좋아하게 된다. 덩치는 어른만한 아이들이, 늘 인상만 쓰고 다니던 얼굴을 펴고 벌쭉 벌쭉 웃으면서 공연히 선생님 주변을 맴돈다. 그렇게 오기 싫어하던 교무실을 쉬는 시간마다 놀러 온다. 물론 그러다가도 의지가 약하고 유혹이 많은 우리 아이들이 또 학교에 나오기 싫어할때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어떤 잘못을 해도 자기를 믿고 기다려주는 선생님이 있으면 아이들은 또 돌아오기가 훨씬 쉬어진다. C모선생님은 어떤가. 아무 의욕도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경시대회에 나가서 온갖 상을 다 타온다. 문예 경시대회는 여기저기 개최하는데도 많다. 그걸 일일이 체크하기도 힘들다. 더구나 그곳에 학생들을 한 번 참가시키려면 해야될 잔일도 많다. 출장 내야지, 공문처리해야지, 내부결재 맡아야지. 일 한가지 하려면 이것 저것 해야할 행정적인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그러나 이것 보다 더 힘든 것은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서 탈락하여 열등감과 무기력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많다. 공부만 무능력한게 아니라 모든 일에 대해서 자신을 믿지도 않으며 매사가 다 시들하다. 가끔 무얼 해보겠다고 하다가도 시작도 하기전에 무기력해진다. 그런데도 개중 나은 아이를 하나하나 발굴해서 그 아이들에 맞는 경시대회를 선별하고 사전에 자료 만들어주고 작성해온 글 첨삭하여 다시 써오게 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또 당일 안가려고 하는 아이들 붙잡고 자기 차에 태워서 경시대회에 출전시킨다. 이렇게 나간 아이들이 한 번 두 번, 상을 타면서 그렇게 자신에게 숨겨진 능력을 계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두눈에서 빛이 나고 허리는 꼿꼿해지고 어깨엔 힘을 주며 자신감있는 개체로 거듭나게 만든다. 실업계 고등학교, 그 중에서도 공업고등학교에서 문예반 아이들이 타온 상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아는 선생님조차 많지 않다. 그만큼 소리없이 묵묵히 자기 일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신감을 주고 세상을 열어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는 학생을 아침마다 깨워서 같이 출근하시는 선생님, 결석한 학생의 집에 방문해서는 온통 어지럽혀진 집을 대청소해주고 뜯어진 교복을 꿰매서 빨아주고 오시는 선생님들, 학생들이 좀 더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 현장으로, 실습실로 뛰어다니시는 실과 선생님들.... 세상은 온통 자신을 무시하고 무섭기만 하다는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깨닫게 해주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진정 아름답다. 나는 이런 선생님들을 보면서 희망을 갖는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공교육은 이제 끝났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공교육의 기둥을 떠받치고 그 안에 포근한 보금자리를 학생들에게 마련해주는 선생님을 보면서 또 학생들이 이런 선생님들을 기억하는 한 공교육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평등의 보루로서 그 빛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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