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3.10 | [특집]
진정한 연극의 시대를 열었다
박병도 연출가/극단 '황토'대표(2005-01-05 15:07:33)
요즘 '극장'이라는 용어는 대중이 모이는 장소마다 걸림없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연극이나 무용, 음악회가 열리는 공간은 물론이고, 필름이 상영되는 영화관도 거침없이 극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극장'은 적어도 '살아 숨쉬는' 예술행위가 펼쳐지는 공간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살아 숨쉬는 사람(예술가)의 땀과 호흡으로 공간을 메우는 곳이어야 하는 '극장'은 순수예술이라 칭하는 연극, 무용, 음악, 오페라, 창극 등의 무대예술이 상연되는 곳에 붙여져야 할 것이고,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영화관이라 이름 붙여져야 마땅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과 예술가가 한 공간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하고, 관객이 무대 위에 살아 있는 공연자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 순수한 땀과 숨의 결정체인 극장에 대한 나의 열정은 1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도 창단한 '극단 황토'가 동부시장 지하 주차장에 칸막이를 하고 젊음을 산화하며 작품활동에 매진하던 중, 1985년도 전국연극제에서 장려상과 희곡상, 미술상을 수상하고, 1986년도 제4회 전국연극제에서 드디어 대통령상과 연출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때 대통령상 상금으로 오백만원을 받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쉬임없는 공연활동에 목말랐던 우리는 그 오백만원을 종잣돈으로 동부시장 맞은편 건물 2층(30평 정도)에 '황토예술극장'을 열게 되었다. 극장으로서 용도가 적합한 공간을 아니었지만 우리는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무대와 객석(약 70석 정도), 분장실과 방음시설 등에 날밤을 세웠다. 방음문제로 말미암아 건물주인 몰래 창틀사이에 왕겨를 쟁여 넣었던 일, 매 작품마다 셋트를 할랴치면 3층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를 정탐하였다가 순식간에 헤치워야 했던 일등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하여 1986년 9월경에 '황토예술극장'은 문을 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공연행위를 펼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대극장에서 2회 내지 4회정도 공연으로 막을 내려야 했던 작품을 한달이나 두달 넉넉하게 공연할 수 있다는 점은,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이나 배우들의 연기수업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매일공연에 매일 수정하고 보완하고 연기지도하고 앙상블을 맞추다 보니 보다 완성도 높은 연극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공연이 곧 수입이었고, 그 수입이 있어야 운영이 되었으므로 이를 악물고 쉬임없는 공연을 올렸다. 년중 300일 이상 극장 문을 열었던 것 같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몸도 아프고, 레퍼터리 문제도 있고 해서 소극장이 쉬임없이 문을 연다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4년여 동안 문을 연 '황토예술극장'은 아마 문을 닫는 날이 없을 정도로 공연활동에 박차를 가한 열정의 세월이었던 것이다. 개관 축하공연으로 서울 '극단 민예'의 뮤지컬 <꿈먹고 물마시고>를 초청하여 일주일 내내 공연을 하였고, 이어서 <에쿠우스>, <보잉 보잉>, <홍당무>, <위기의 여자>, <정의의 사람들>, <꿀맛>, <오장군의 발톱> 등 수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특히 <오장군의 발톱>은 소극장의 장기공연의 장점을 대변하는 좋은 캐이스였다. 소극장에서 두달 정도 공연하며 다듬어진 작품은 1989년초 전북연극제에 출품하여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그해 제7회 전국연극제에 도 대표로 나가 또다시 대통령상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소극장은 하나의 문화공간의 의미를 떠나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도시의 한 구석에서 날마다 순수예술이 공연된다는 점, 관객과 연희자가 한데 만나는 곳이 살아 있다는 지역적 자부심은 자그마한 공간이 갖는 문화적 상징성 이상을 말해 준다. 연극의 시대는 갔다고들 혹자는 말하지만, 80년대를 풍미하던 '황토예술극장'은 연일 대만원을 이루는 줄을 잇는 관객들로 하여금 연극행위의 참맛과 보람을 알게 해주는 진정한 연극의 시대를 열었던 결코 작지만은 않았던 큰공간이었다고 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