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 [교사일기]
총각 아빠 총각 엄마
정지웅 이리남초등학교 교사(2004-12-09 16:14:04)
“선생님, 오늘 계시면 모시고 한잔 하려고 했는데 아쉽습니다. 이름만 보고 갑니다.”
특강을 위해 저희 대학을 찾은 안도현 시인이 제 연구실 문에 남긴 쪽지입니다. “이름만 보고 갑니다.” 울림이 과연 시인답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것을 보고 저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시인과 술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만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일로 연구실을 자주 비운다는, 그래서 연구는 별로 하지 않을 거라는 혐의를 상당히 진하게 받아오던 터라 반증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니 그런 혐의를 확인시키고 만 것이 속상했습니다. 연구를 하고 있었을 리는 없고 컴퓨터 켜놓고 음악 들으며 빈둥거리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연구실을 지킴으로써 ‘조금은 연구도 하는, 아니면 연구를 할 수도 있는, 교수’로 일거에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한쪽으로는 ‘쌤통이다!’ 쾌재의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모처럼만에 시인의 청을 ‘튕긴’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매번 그랬습니다. 청하는 것은 제 몫이요 거절하는 것은 시인의 권리입니다. 보고 싶어 술을 청하면 전날의 주독(酒毒)을 핑계로 퉁을 놓기 일쑤입니다. 유명한, 거기다가 술을 좋아하는 시인이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터인데 영 그렇지가 않습니다.
복에 겨워 별 투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투정부리는 것 말고 제가 복이 많다는 것 말입니다.
묘하게도 저는 시인들과 남다른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진해에서 군대 생활할 때 함께 야학을 했던 정일근 시인. 지금은 포항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이끌고 있습니다. 영호남문학인대회라도 근방에서 있을 때면, “형, 막걸리 한잔 해야지!” 전화를 해오곤 합니다.
[삼남에 내리는 눈], [풍장]. 황동규 시인은 제 논문 지도교수입니다. 안도현 시인 만나러 전주에 오실 때면 시간 비워놓으라고 매번 미리 전화를 걸어 챙기십니다. 제 식구 또한 석사학위 지도를 받은 터라 곰소 전어회 먹으러 갈 때나 운주 화암사에 들를 때에도 자연스럽게 합류를 하곤 합니다. 시인은 스승의 날이나 연말연시에 제가 꽃을 보내드리는 몇 안 되는 어른 중의 한분입니다.
제가 스승으로 모시며 꽃을 보내드리는 또 다른 분으로 한승헌 변호사가 계십니다. 동학농민혁명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이 분도 등단은 물론 시집까지 내신 당당한 시인이십니다. 어쩌면 가장 시인처럼, 시의 정신에 충실하며, 살아가시는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은 술은 잘 안하시는데 “국민의례는 해야지!” 가장 먼저 챙기십니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이끄는 데에도 언제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또한 제가 한변호사님 모시고 동학농민혁명 일로 한참 분주할 때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저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문병학 시인입니다. 시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일에 시인을 막 부려먹었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두 시인 덕에 기념사업회는 법인으로 확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저는 지금도 시와 어울리지 않는 일에 또 다른 시인을 내몰고 있습니다. 전주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발버둥인 요즘 저는 [거미]의 박성우 시인을 홍보팀장으로 또 부리고 있습니다. 시를 좋아하고 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의당 시를 잘 쓸 수 있도록 시인들을 독려해야 하거늘 일만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독려하지 않아도 시를 잘 쓰고 시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래서 저에게 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 그러기는커녕 즐거움과 위안을, 가끔씩은 뜻하지 않는 일깨움까지, 주는 형님시인으로 김용택 선생님이 있습니다. “너 지금 뭐 허냐? 나 지금 사부님허고 산책 중인데 조금 있다가 [아! 대한민국]에서 만나자.” 실은 어제도 각종 초목으로 둘러싸여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그곳 술집에서 한잔을 했습니다.
김시인과 인연을 맺은 지 어언 20년. 처음에는 술은 잘 하지 않아 만남이 뜸했는데 김시인이 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서는 거의 매주 만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묘한 것은 시인이 청할 때면 저는 항상 약속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가곤 하는 것입니다.
긴 인연으로 보자면 김사인 시인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학동기이지만 졸업을 한 이후에 더 친하게 된 이 [밤에 쓰는 편지]의 시인은 만나 정겨운, 애인 같은 벗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존경스러운 친구입니다. 여린듯하면서 심지가 곧은, 그 느린 말과 소박한 웃음으로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저항을 했던 궁핍한 시대의 자랑스런 시인, 그와의 쉽지 않은 술 약속은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김사인 시인과 비슷한 풍모의 박남준. 그 또한 다른 시인들 못지않게 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술친구입니다. 그가 연락을 하면 저의 모든 약속은 없던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는 미리 날 잡아 약속을 해주지 않습니다. 워낙 역마살이 심해서 일 것입니다. 그가 전화를 주는 것은 전주 도착 두어 시간 전. “형, 나 새벽강에 가 있을께요.” 그러면 끝입니다.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곁으로 달려갑니다. 이미 많이 취해있을 때에도 그의 부름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좀 쉬어야지, 그날 아침의 다짐도 그 전화 한 통에 아침이슬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요즘 그가 새로운 유혹을 하나 덧붙였습니다. 전체 수입이 제 술값만큼도 안 될 것 같은데 제 선물을 챙기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격에 어울리지 않게 시인 친구 자랑을 늘어놓는 것도 실은 이 선물 때문입니다.
선물이라고 해서 제가 부담스러워 할 정도의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소리를 본다]라는 최소리의 특집앨범, 박시인을 매료시킨 린덴(Jaap ter Linden)이 바로크 첼로로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 시디, 그리고 이번에 저를 괴롭히고 있는 터키 음반 등.
이런 선물로 저를 구속하려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마력의 유혹으로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시인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데 시인으로부터 선물을 받게 되다니요.
시인이 펼쳐놓은 큰 이끌림의 자장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벗어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서 달려가 나란히 앉아서 혹시 약해졌을 지도 모를 정과 사랑의 불길 다시 키워가야 합니다. “둘이 사귀나?” 의아해 하는 시선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오늘 음악은 그 문제의 음반에서 골랐습니다. 저를 괴롭힌다고 한 것은 그 음반을 전혀 해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남준 시인만큼은 아니래도 꽤 자주 다양한 음악을 듣습니다만 음악만 듣고 소개의 글을 쓸 수 있는 귀를 갖지는 못했습니다. 적어도 작곡자나 연주자에 대한 소개라도 있어야 뭐라고 사연을 덧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별 수 없이 한국외국어대학 터키학과로 전화를 해댔습니다. 그래서 겨우 음반의 제목이 ‘다리들’(橋)이라는 것과 곡의 이름이 [내 삶의 장미]를 뜻한다는 것 정도를 알아냈습니다. 터키식 바이올린 케만(Kerman)과 클래식 기타, 베이스 기타 및 아후 살람의 목소리가 멋진 화음을 연출하는 이곡을 듣고 있노라면 사랑하는 사람(장미)을 찾아 헤매는 연인들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심경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인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귀한 선물입니다. 시인이 마련한 선물은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시인이 권하는 이국적인 선율에 취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곡 들으시며 나도 누구에겐가 귀한 선물이 되겠노라, 소중한 새해 다짐 키워 가시기 바랍니다. 아 또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음악은 이종민 교수의 홈페이지(http://e450.chonbuk.ac.kr/~leecm)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