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 [시]
누군들
박형진(2004-12-09 15:40:24)
누군들..
뒹굴고 싶다
이렇게 날 좋은 날엔
뉘랴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콩을 꺾으며 하루종일
뒹굴고 싶지 않으랴
내 누이의 이빨이 부러지지만 않았다면
우리의 엄마들이
울면서 머리만 깍지 않았다면
누군들 애들 손을 잡고 한나절
금빛 들판을 걸어 나무 그늘 밑
도시락을 풀어놓고 싶지 않으랴
친구들이 쫓기지만 않는다면
쫓기다 철창에 갇히지만 않았다면
뉘랴 아스팔트 흙먼지 속을
눈물보다도 더 진한 땀방울로
절하며 절하며 가고 있었으랴
다가올 죽음의 고통처럼
점점 살갗을 파고드는 이 한기 속
누군들 밤마다 촛불시위를 하고 있으랴
백 날을 넘어 또 백 날을 향해
이리하여 핵폐기장이 폐기되는 날
천지에 울려 퍼질 그 함성의 이명,
그날이 오면
누군들 손에 손잡고 노래부르지 않으랴
지나치는 사람마다 눈인사를 건네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지 않으랴, 미움과
미움이 서로 용서를 하고 이 산하를 더욱 사랑하지 않으랴
누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