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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기
신귀백(2003-04-07 13:59:45)
『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서 브레히트는 노래합니다. "처녀들의 유방은 따뜻하기만 한데/ 나는 왜 허리굽은 농부와/ 어부의 찢어진 어망만을 노래하는가"고.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어부의 찢어진 그물 같은 3류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치고 패는 <넘버3>의 인생과는 다르죠. 대체로 재수없고 빽없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밴드 이야기죠.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를 따라 부르던 고등학생이 겁도 없이 그 길로 직업으로 들어섭니다. 잘 나갈 땐 나이트의 7인조 밴드가 3인조 스탠드바를 거쳐 홀로 뛰는 가요주점에 이르릅니다. 끝내는 칠순잔치나 따라 다니는 '따라지'가 되어가는 이야기죠. 영화는 당연히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어서 떠오른 생각 한 토막. 한 삼년 전, 그 때 내가 사는 변두리의 망부석이란 이름의 나이트라기엔 좀 그렇고 스탠드바라기에도 좀 그런 술집에서의 기억. 3인조 밴드 앞에서 아저씨들이 보리춤 막대기춤 추는데 묵직한 핸드폰을 손에 들고 춤을 추는 거 있죠. 고추 팔아서 몇 푼 남긴 아자씨들이, 나 핸드폰 샀다 이거죠. 오부리는 안주고 밴드에게 자꾸 맥주만 권하던 사람들. 그날 이후로 노래하는 3인조 밴드를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히 노래방과 가라오케 때문이겠죠. 영화 속에는 함중아식 콧소리로 '내게도 사랑'이,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어쩌고, 하여튼 옛날노래 무지하게 나오죠. 페이소스가 있어요. 20년 전 서로 좋아하던 따라지들이 다시 보컬을 이루어 여수의 나이트에서 부르는 '사랑밖엔 난몰라' 노래는 찡하고요.<친구>가 오버라면 이건 찬찬이 들여다보는 거죠. 우리의 지나온 날들을 말이죠. 임순례 감독은 작고 죽어가는 것들을 들여다 보는 따뜻함과 힘이 있어요. 이 영화는 영화제에서 상을 좀 먹은 후에 앞으로 10월에 개봉한다 합니다. 연기나 믹싱이 좀 서툴러도 꼭 보세요. 따뜻해요. 중국의 차세대 주자 왕 샤오슈아이의 <북경자전거>도 자전거 한 대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3류인생의 이야기죠. 시골서 상경한 소년은 택배회사에 취직합니다. 이 소년은 자전거(중국말로 單車, 하하)가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죠. 즐비한 고층건물과 고가도로가 밀집한 북경시내를 죽어라 뛰는 그는 재수 없게도 자전거를 잃어버립니다. 자전거를 잃어버려 비슷한 單車에 아프게 눈을 두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실 만도 합니다. 우여곡절로 며칠을 헤맨 후 자전거를 찾게 되는데 그 소년 역시 장물아비에게 자전거를 산 케이스라서 그들은 누구도 자전거를 양보할 수 없죠. 그런데 그 해결방법이 기가 막힙니다. 주먹을 교환한 끝에 결국은 서로 하루씩 자전거를 나누어 타기에 이르르죠. 중국판 <천국의 아이들> 버전이랄까요. 아하, 그 큰 중국이 왜 대만을 발로 밟지 않고 기다리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자전거의 주인을 가리는 것을 법에 호소하지 않듯이 대만과 중국은 그들의 삶을 전쟁에 호소하지 않지요. 윤동주는 잘생기고 힘있는 것보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합니다. 독자님들! 저는 이마트보다는 점빵에서, 나이트보다는 동네 '치킨센터'에서 팔아주어야겠다는 따라지적 교훈에 이르렀습니다. 와이키키 비평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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