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 [문화와사람]
'그림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힘'
최정학 기자(2004-12-09 15:09:55)
딱 한 달 만이었다. 이번엔 그를 만나기 위해 모랫재를 넘었다.
10년째 진안에서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해오고 있는 정미경(34)씨.
짧은 머리, 부르튼 입술, 거칠은 손바닥. 한 달 전 전시장에서 보았던 것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 그간의 생활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전히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을 유일한 낙(樂)’ 삼아, 그 안에 파묻혀 지내고 있었다.
그가 진안으로 내려 온지 이제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다. 그는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 진안에 자리잡은 작업실에서 ‘죽도록’ 그림만 그렸다. 그 10년 세월동안 바깥세상은 그에게 정말 ‘바깥’일 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때 되면 밥 먹고, 또 그리고, 또 책 읽고.’ 그는 ‘홀로 왕국의 홀로 대통령’으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그가 지난 달, ‘외출’을 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었다. 그의 화폭에 담긴 사람들은 ‘주변인’. 전시의 주제도 ‘잉여인간론’으로 붙였다. 손창섭씨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잉여인간론’은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전해진다. 벌거벗은 위안부 할머니의 쓸쓸한 나체, 한바탕 슬픈 굿판을 벌이는 무당의 춤, 고된 하루를 한 잔 소주에 털어내는 남자들의 초라한 어깨, 그리고 작가 ‘자신’의 모습 등. 대부분 우울한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그의 그림이 ‘초라함’, ‘쓸쓸함’, ‘외로움’, ‘열등감’, ‘분노’ 따위의 감정들로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의 축 쳐진 어깨 위에, 중년 남자들이 앉은 탁자 밑에, 강렬하게 들어앉은 ‘전통의 문양’들은 그래도 ‘희망’이 삶을 버티게 하는 힘임을 말해준다.
10년 만에 ‘바깥세상’에 나온 그의 그림들은 그가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특히 세상 쓴 맛 볼 만큼 본 중년의 남자들은 그의 그림 앞에 한참씩 머물러 있곤 했다.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해 정씨는 크게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들도조차 한동안은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할 만큼 희한한 병이었다. 덕분에 정씨는 장기의 일부를 떼어내는 큰 수술을 받아야했다. 수술이 끝나고 얼마간 몸이 회복되자 그는 그길로 다시 작업실을 찾았다. 의사는 아직 입원을 강력하게 권하고 있던 상태였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남들이 말하는 휴식이라는 것을 취해보기 위해 가만히 누워있으면 정말이지 땅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어떨 땐 ‘천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꼭 쉬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어느새 붓을 잡고 있는 모습을 의식하고는 깜짝 놀라곤 해요. 그러면서도 붓을 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제 의지를 떠나버렸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씨는 다시 쓰러졌고, 그 뒤로 두 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싶으면 그때마다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작업실로 달려왔다. 심지어 수술 부위의 실밥조차 빼내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주위에서 그런 그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주위의 사람들은 제가 아픈 것에 대해 그림 탓을 많이 해요. 그림 때문에 제 몸에 병이 생겼다는 거죠.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짚은 거에요. 그림 때문에 제가 아팠던 것이 아니고, 너무 아파서 그림에 더 매달렸던 것이고 또 그림 때문에 아팠던 것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이죠. 제 자신을 온전히 쏟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뿐이거든요. 그렇게 그림에 제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면, 그땐 그림이 제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을 느껴요. 전 이렇게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그건 제가 갖고 있는 유일한 세상과의 다리를 끊어버리는 일이죠.”
무섭도록 그림 그리는 일에 집착하는 정씨를 몇몇 사람들은 ‘자신을 학대’하는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 대한 학대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외골수인 그의 성격은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는 현재 몇 명의 제자들이자 동료들과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다. 정씨와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는 이들은 유삼순(29), 임채숙(26), 박기순(26), 신동환(25)씨. 정씨의 외부적인 인간관계는 사실상 이들이 전부다.
“해는 모두에게 골고루 비쳐지지만, 그 자체의 힘만으로는 무엇인가를 발화시키는 힘은 갖고 있지 못하잖아요. 무엇인가를 태우기 위해서는 볼록렌즈로 빛이 비치는 대상을 축소시켜야 하잖아요.” 하나의 볼록렌즈가 되어 그가 천착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그것들이 온전히 태워질 때까지 집중하고 싶다는 정씨의 설명이다.
이들은 처음 사제지간으로 관계를 맺었지만, 지금은 모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엄연히 작업 동료로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과 만난 것은 대부분 10년 전, 정씨가 진안에 오면서부터다. 당시 진안에는 변변한 미술학원하나 없었고, 당연히 미술학도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이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전주까지 미술학원을 통학하기에는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몇몇 학생
들이 정씨의 작업실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창문너머로 비치는 비너스와 아그리파 석고상들에서 이들은 이제 미술을 배울 수 있다는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 그대로 정씨에게 달려가 미술 실습을 부탁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3가지를 함께 하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씻으면 된다는 거죠. 간장에 밥 비벼 먹으면서 고생도 정말 많이 했어요. 다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작업실에 돗자리 펴놓고 하루 한 두 시간씩 자면서 그림 실습했었어요. 그때 함께 했던 고생 때문에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죠.”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들은 ‘궁상각치우 똥꾼전’을 열었다. 이들이 만나 함께한 10년 세월을 기념하고 정리도 하는 자리였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을 ‘똥꾼’이라고 하잖아요. 술에 취해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본성과 자유로운 발상, 누구든지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을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똥꾼’이라고 이름 지었죠.”
정씨는 내년 프랑스에서 열릴 ‘살롱전’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몇 개의 살롱에서 각국의 작가들을 초청해서 그림을 전시하는 행사다. 정씨는 문화관광부에서 시행한 프랑스 ‘살롱전’ 출품 작품 공모전에서 선정되었다.
“10년간 혼자 무식하게 작업해서 겨우 세상에 내놨는데, 사람들은 벌써 다음 작품이 어떻게 변형될 것인가에 관심을 갖더라구요. 맥이 탁 풀리는 일이였어요. 지금은 내년 ‘살롱전’을 기존의 작업을 그대로 이어서 할 것인가, 변형해서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고민의 와중에도 붓을 놓는 일이 없다. 고민들 하더라도 붓을 들고, 화판 앞에서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던 간에 남들 앞에 딱 한가지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더 붓질을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도발적인 이 명제 안에는 어쩌면 그림에 대한 그의 집착이 가장 잘 녹아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