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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 | [문화시평]
'전북청년작가 위상展'의 마지막 요람
구혜경 문화저널 객원기자(2004-12-09 15:01:00)
올해도 이제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얼마 남지 않았다. 이즈음이 되면 사람들은 괜히 분주해지고 마음도 바빠져 어수선해지기 마련인데, 전시장도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행사들을 만들거나 치러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전북청년작가위상展’은 항상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전북의 미술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들을 발굴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년이 되어 전북미술을 주도하는 많은 작가군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에게 작업 의욕과 힘을 주었던 이 전시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한다니 서운한 마음도 함께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전북청년작가위상전’이 그 동안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 처음 전북 청년작가 위상전은 열악한 전북미술화단의 환경을 걱정하여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 작가들에게 기대를 걸고, 젊은 작가를 발굴하여 지원하고 육성하는 취지로 시작하였다. 또한 전북미술이 가지고 있던 미술 양식에 대한 회의로 새로운 미술양식-설치, 미디어-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그래서 많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과 다양한 변화를 가지는 형식들,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을 선보이며 자유로운 창작의욕을 보여 왔다. 그러면서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창작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개인전까지 마련하여 처음 취지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전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남용되어 학연과 지연으로 인한 작가 선정이 이루어지면서 그 내부에서는 서서히 곪아지는 상황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전북의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이 전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서서히 처음 취지와는 다른 해석과 그 의미가 희석되어진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 의미가 희석된 것 한 가지는 현대미술 전체 흐름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은 최근 10년 동안 발 빠르게 변화를 가져와서 설치, 미디어 등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기법의 영상 작업이 주도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지역은 이미 그러한 작업들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전북에서는 아직도 새롭고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업이라는 이름으로 주도해가려고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 동안의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취지로 기존의 형식 틀을 깬 설치와 미디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앞으로 한참 달려 나간 뒤꼬리를 잡고 가는 형상이 되는 모양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 기존 미술의 틀이고, 무엇이 새롭고 실험적인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미술의 형식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 미술이 어떤 형식으로 변화되었는가는 곧 전체 미술의 변화인 양 생각하고 외형적인 변화나 특수한 재료의 사용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예술 작업에 있어서 무엇을 보여주고, 왜 하는지에 대한 의미 부여는 그 뒤에 숨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미술 틀이라고 하는 것은 구상의 평면 작업이라는 발상을 하게 되고, 미디어적인 형식이 진보적인 미술 흐름이라는 생각이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전북미술에서 아직도 설치나 미디어 전시가 소외되고 새로운 형식으로 생각되는 것은 그 만큼 그러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적다는 것인데 이것은 미술 형식을 선호하는 개인 취향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어떤 형식으로 보여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단지 형식은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잘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형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이 적절히 조화되어 작가의 예술 의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전북미술에서 만들어져야할 부분은 전북미술이 가지는 특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전북미술의 기존 틀이라고 하는 것은 평면의 구상작업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은 구식의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막연한 발상으로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북미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이것을 부각시키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미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전북 미술화단이 새로운 전환기를 가지지 않을까 한다. 요즘의 미술 화단을 둘러보면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설치나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작업을 표현하는 경향이 많고, 점점 연륜이 많아질수록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손맛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양분된 현상 속에서 두 부류는 각각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외면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작가는 어떤 형식의 미술이든 자신에게 맞는 것이라면 그것이 설치든, 아니면 평면이든 상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으로 전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전북미술 저변에 확대되어야만 침체되어가는 순수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전북미술에서 젊은 작가들의 위상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젊은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다. 그 특권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젊다는 것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뛸 수 있는 생동감인 것이다. 올해 ‘전북청년작가위상展’에서 여섯 명의 작가들-김용수, 서희화, 신명식, 송상민, 정하영, 한숙-은 주최 측이 의도하는 설치와 미디어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들로 선정되어 미디어까지는 아직 선보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요람’이라는 주제를 해석하며 표현하고 있다. 이들 젊은 작가들에게 조심스러운 것은 설치미술이 막연하게 늘어놓고 걸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 의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표현의 수단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고 덤벼들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또한 요람을 통해 작가들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에 대한 것이다. 아직은 작업에 대한 연륜이 적은 시기여서 요람에 대한 자기 해석이 단편적이고 일차적으로 해석되어 표현하고 있지만 자기 것을 풀어내기 위해 ‘요람’이라는 주제를 스스로 정하고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서서히 요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연습의 한 장이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어서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작가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스스로 작업 의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또 그런 발판이 마련되어 젊은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는 기득권층의 노력도 함께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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