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 [문화저널]
한 겨울에 전주 내에서 헤엄치기
이근수 그림쟁이(2004-12-09 14:54:05)
이 겨울날에 전주내를 기억하라 하니 한겨울에 발가벗고 풍덩 뛰어들어 헤엄치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어디로 뛰어들까 냇둑을 거니는데 반반한 넓적 바위 있어 내발을 묶더이, 가만 앉아 냇물을 바라보는데 낯익은 물방울 하나 흘러와 아는 체 하더이.
“누구시더라”
“날 몰라? 나를 잊다니”
꺼이꺼이, 흐르는 눈물이 불어불어 큰물을 이루더라. 물방울이 울어 참 별일이네. 놀랍고 기막혀 넋 놓고 앉았는데. 앗! 차거 펑덩 허우적. 어느새 냇둑까지 차오른 물이 바위를 덮쳤거든. 물속에 빠지고 보니
“나 알지?” 아까 그 물방울이 눈앞에 와서 되묻더니
“글세, 어디서 봤더라”
“날 따라와”
물방울에 손목 잡혀 흘러가보니 전주다리 밑이야.
“잘 봐” 물방울이 제몸 튀겨 기둥에 그리는데, 흰 고무신 한 켤레.
“아 맞다. 너로구나”
이 물방울이 누군고 하면,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여름날이라 전주다리 밑에서 헤엄치고 나왔는데. “어이 내 신발.” 기둥 한켠에 벗어둔 신발이 안보여 여름날 환한 낮이 깜깜했지. 산지 한 이레도 안 된 흰 고무신을 잃어버렸거든. 게다가 우리집이 제실뜸지나 장승백이 못 미쳐 미륵댕이인데 때마침 공수내다리까지 길에 아스팔트를 덧씌웠어요. 여름 땡볕에 달궈져 얼마나 뜨겁던지 맨발로 걷는 뜨거움이 뿜어낸 화딱지가 속 울어서 눈물·땀물로 흘러 흐르다가 오늘 다시 너를 만났구나.
학년이 오르면서 더 깊은 한벽당 전설 깃든 각시바위·평평바위로 옮아가다 까까머리 뒤로하고 전주내를 떠났지요. 그 뒤 썩는 물 전주내를 못본 체 지내다가 이제 돌아와 보니 흐르는 물결이 햇빛을 실어 눈부시구나. 바람 탄 갈대는 빛을 흩날리고 물가선 버들 푸르러, 냇둑을 걷는 이들 몸과 마음을 푸르게 푸르게 이끄는데. 이제 돌아보니 전주다리 밑에서 한벽당, 각시바위, 평평바위로 헤엄쳐 간 것은 내 키가 자란 것이 아니라 물이 더러워진 터무니라.
꿈꾸지 않았으면 전주내는 흐른 날만큼 썩었겠지요. 오늘 살아 흐르는 냇물에 몸 담그고 또 한 꿈을 꾸는 것은 저 한벽다리 걷어내 푸른 숨 쉬는 한벽당을 바라보는 꿈. 한벽당에서 울려나와 냇물을 타고 흐르는 어르신들 시노래를 듣는 꿈. 꿈들을 모아 함께 가면, 흐르며 마른 목 축이고 더럽혀진 물 품어 새물로 흐르는 전주내와 끝없이 살겠지요. 가만있으니 초록바위가 잘려나가 봄날 이팝나무 싱그러움이 죽었고, 다가산도 깎아내려 하잖아요.
꿈꾸어요. 살아 흐르는 전주내 뜨거운 핏줄을…
꿈에 덧붙여
한벽다리 걷어내면 어찌걸어가냐구요? 돌아가요. 나눗배 하나 띄워 노닐면 맛나겠지. 굳이 차타고 간다하면 물밑으로 뚫고 지나가요. 어찌 뚫을까 궁리하다 보면 머리도 좋아지고 힘도 늘어나요. 도무지 힘들다 싶으면 가장 잘 뚫는 우리겨레 북한 힘을 불러 써요. 이건 남 북 경제협력, 곧 통일 사업도 되겠지요. 냇물을 바라보세요. 살아있는 물고기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을 거슬러요. 그대 살아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