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 [문화가 정보]
그리운 장날을 찾아서
김승민 마당기획실장(2004-12-09 14:27:34)
가을의 끝자락
볏단들이 듬성듬성 널브러져 있는 논바닥은 스산했다.
4차선으로 잘 다듬어 있는 큰 길을 버리고 모래재 길을 택했다. 무던히도 꼬불꼬불 엉금엉금 넘어가는 고갯길은 그래도 운치가 있다. 빨갛게 물들인 단풍들을 반쯤 털어낸 숲의 실루엣이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르느라 급조한(?) 4차선이 있어 그래도 무진장지구에 조금은 가깝게 넘어갈 수 있지만 옛날엔 정말 산토끼와 발맞추는 두메산골 오지였으리라.
그런 깡촌에서 그것도 촌놈 셋이서 사고를 친단다.
이현배, 우연태, 김종문.
장계중학교 동창인 세 사람은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며 동창생끼리 결혼해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장한(?) 친구들이다. 이들 세 친구가 주축이 되어 ‘흥이 있었네 흥정이 있었네 우리 장계장 한마당’을 준비했다.
이번 행사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장계5일장에서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장돌뱅이들의 삶을 통해 잊혀진 우리 마음의 고향을 찾는 자리다.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물산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여들던 장계5일장에서 지역민과 장돌뱅이, 그리고 장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전통장의 아우성과 웅성거림을 통해 생활속에서 꽃피우는 한바탕 문화의 향연. 기획자들은 늘 그런 ‘판’을 꿈꾸어왔다고 했다.
손바닥만한 장계면 한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리자니 저만치서 한바탕 풍물소리가 요란하다. 소리를 따라 좁은 골목을 지나니 툭 터진 천변너머에 장이 섰다. 생각보다 제법 크다. 지난번 백제기행으로 강진장과 동계 장을 돌아본 터라 장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커 보이기도 했고, 냇가 뚝방을 타고 펼쳐진 장터의 모습이 한눈에 봐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다리를 건너가자니 양옆으로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이 보따리 보따리 많이도 벌려놓았다. 마늘에 생강, 배추며 푸성귀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장터다.
천변고수부지에 판을 벌인 주인공들이 멍석을 깔고 앉아 또랑광대의 흥겨운 입담과 함께 막걸리 판이 한창이다. 사진작가 이흥재씨의 장날사진전을 장터에서 만나는 일은 더 새롭다. 그의 ‘그리운 장날’ 사진집의 표지에 는 장계장의 풍경이 올려져 있다. 그러고보니 작가의 장계장에대한 애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장계 장은 유난히 마음이 끌리는 장입니다. 편안한 분위기가 그렇고,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풍광이 저의 마음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손내 사람 이현배.
미소가 먼저 떠오르는 그는 옹기장이다. 촌놈답지 않은 가지런한 치아가 유난히 눈에 띄는 그의 미소는 백만 불짜리다. 멍석을 털고 일어나 권하는 막걸리 잔에서도 미소가 묻어난다. 삶의 공간인 장을 통해 일상성속에서의 장계 장을 조망하고 싶었다는 그에게는 옹기처럼 투박한 고집이 있다. 한때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물산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던 장계장이 현대화의 바람에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것이 안타깝고, 우리 마음의 고향까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생각하면 못내 씁쓸하다는 그는 작지만 소중한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소중한 씨앗 하나가 다시 찾는 5일장으로 거듭나는 단초가 되기를 바라며 말이 씨가 되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는 때가 반드시 있으리라 믿음으로 이번 행사를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뚝방에 서서 ‘재밌다’ 는 듯 행사를 보던 할아버지 한분이 전주역사박물관의 도량형 유물 전에 관심을 보인다. “그게 뭐여? 그런 것도 구경 거리랴?” 맨날 사용하던 물건들이 한껏 차려입고 유리관속에 들어 있는 것이 이상했나보다. 동네 아이들도 한 홉, 한 되 콩을 담아보고 재미가 좋다.
이번 행사에는 이흥재의 장날사진전, 이현배의 옹기전, 전주역사박물관의 도량형유물전, 그리고 전라좌도 장수굿 보존회의 풍물, 또랑광대의 흥겨운 입담이 한데 어울려 분위기를 돋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영하교수의 초청강연회와 세미나를 통해 ‘장터를 통한 지역문화의 활성화’가 제안되는 등 기초적인 문화자원조사를 통한 장기계획의 이론적 논리도 마련했다.
바람직한 장계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협의회, 그리고 전문학자가 공동으로 장계에 대한 기획 및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에 옮기는 전문 프로그램의 개발을 제시한 주교수는 선행조건으로 (가칭)장계발전 전문가포럼 조직, 장계문화자원조사를 위한 용역의뢰, (가칭)장계100인위원회의 구성 등을 제안했다.
점심때가 되었는지 이곳저곳에서 허연 국밥연기가 피어오른다. 머리에 손에 이고지고 장터국밥들이 부산을 떨며 장터를 누빈다. “아우성과 웅성거림 그 속에 우리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었습니다. 유행이 돌고 돌 듯 장계 5일장이 기능과 정취를 찾아 활성화 될 날을 기대합니다.” 장계 문화의집 우연태 관장의 인사를 마무리로 이날의 공식적인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 김승민 마당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