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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 | [문화칼럼]
한류 열풍과 북한당국의 고민
오양렬(2004-12-09 14:22:49)
욘사마, 지우히메, 후유노 소나타, 혼사마, 사대천왕… 일본에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한류라는 새로운 물결이 중화권과 몽골, 동남아시아를 거쳐 대중문화 선진국인 일본에까지 불어 닥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류 열풍이 우리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선호단계를 넘어 볼거리, 먹거리, 옷거리 등 우리의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선호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한 무역관련 연구소가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출기업의 76%가 한류가 자사 제품의 수출 증가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한류 열풍이 문화산업으로서의 직접적인 경제효과뿐 아니라 국가이미지와 기업브랜드 가치를 높여 제조업분야의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한 몫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 북한에서도 ‘새 세대’, 즉 신세대 사이에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어 북한당국을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한다. 북한 신세대들의 남한 열풍은 상품, 드라마, 가요, 패션에서 두드러진다고 하는데, 고위층이 밀집한 평양을 중심으로 신세대들은 남한을 '아랫동네'로 지칭하면서 남한상품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세대들의 남한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단연 드라마이다. 북한당국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경 일대로부터 혹은 해외 출장자들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가을동화’, ‘겨울연가’, ‘올인’ 등 인기 드라마와 영화가 어딘가에서 VCD나 Video-Tape로 복제되어 삽시간에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한 가요의 열풍과 더불어 ‘처음 그 날처럼’(올인), ‘처음부터 지금까지’(겨울연가) 등 드라마 주제가도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요새 평양 젊은이들은 남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들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심지어 머리 염색 등의 패션까지 경쟁적으로 모방하고 나다니면서, 중국제 의류는 ‘촌스럽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흘리고 다닌다고 한다. 2000년 초 김정일 총비서는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실천해야 한다는 이른바 ‘신사고’ 정책을 주창하여, 2002년 7월 초에 기업경영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며 배급제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리고 ‘신사고’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그 동안 획일적이고 경직되어 있던 주민들의 문화생활에도 다양성과 오락적인 요소가 강화돼 왔다. 이러한 유화조치의 결과로 북한 내 국경지역이나 평양 등 대도시 지역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문화적 행태가 늘어가고 있다. 평양 청년중앙회관에 설치된 ‘화면반주음악실’(노래방)과 전자오락실, 그리고 평양시내 150여 개소의 ‘맥주봉사기지’(생맥주 집)에 사람이 넘쳐나고, 앞서 언급한 대로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 머리 염색과 문신이 열병처럼 번져 나가고 있으며, 평양주민들 사이에 애완견과 비둘기 키우기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서양의 퇴폐·불온 녹화·출판물 소지, 불법 방송청취·TV시청, 남한가요 부르기·북한가요 가사 바꿔 부르기, 서양식 옷차림과 화장, 이혼 증가, 미신 및 종교행위 성행 등의 사회문화적 행태가 늘어가고 있다. 북한당국은 당초에 계획하지 않았던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문화행태를 방치하면 결국 체제유지에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신세대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행태에 대해 수시로 제동을 걸고 있다. 최근에도 각종 언론매체, 특히 당 기관지인<로동신문>의 사설란까지 동원하여 ‘새 세대’에 대한 사상교양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의 <로동신문> 사설은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새 세대들을 사상과 신념의 강자, 배짱가로 준비시키기 위한 사업’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사설은 ‘세기를 이어 계승된 혁명 신념과 배짱의 전통을 심어주기 위한 사상교양’을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당 조직의 역할 제고와 함께 ‘혁명적 신념과 배짱을 실천해 일터마다 새로운 비약을 일으키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해 맡겨진 계획을 무조건 끝까지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미제의 반동문화 침투 책동’을 극히 경계하고 있는데, 언론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은 문화의 ‘세계화’에 기대를 걸고 군사적 위협 공갈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문화적 침투를 통하여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떠들면서 교활한 방법으로 반동적인 사상문화를 다른 나라들에 대대적으로 침투시키고 있다”고 수시로 비난하고 있다. 즉 ‘미제가 우리의 일심단결을 파괴하고 우리 내부를 와해 변질시킬 목적 밑에’ 국가 간 경제문화교류와 연계가 밀접해지는 기회를 이용하여 미신, 색정, 부화방탕, 인간 증오사상의 내용이 담긴 출판물을 북한지역에 들여보내려고 책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은 오늘날 경제발전을 위한 개방·개혁과 기존체제 유지를 위한 사상 강화라는 양 극단의 딜레마 속에서 서로 상반되는 문화정책들이 혼재하기도 하고 번갈아 순차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핵 위기라는 악재 속에서도 정치적인 체제 안정에 주력하면서 경제·사회·문화적으로는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문화분야에서의 전략은 사상교육을 강화하면서 민족전통을 강조하는 동시에 대중문화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북한은 이른바 ‘황색바람’으로 불리는 자본주의 문화의 침투에 대비해 전체 주민을 계급교양사업으로 몰아가는 한편, 민족문화의 발양과 군사문화의 일반화를 ‘황색바람’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 각 분야에서 선군문화, 혁명적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한편, 전통문화 살리기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각종 오락·휴양시설 확충, 낚시와 바둑 권장, 일요일의 경우 정치성보다는 오락성에 중점을 둔 문화정서생활 보장 등 ‘건전한’ 문화 향수를 위해 주민 여가생활에 크게 신경 쓰고 있다. 그러나 평양·신의주·청진 등 외부사회와 접촉이 많은 지역의 신세대를 중심으로 이미 한류 열풍이 불고 있고, 모임 등 실제 주민생활에서도 계몽기 가요라고 부르는 흘러간 옛 노래는 물론이고 남한의 통속적인 대중가요가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당초의 예상한도를 넘어 간 듯한 이러한 현실상황에 대해 북한당국은 여전히 양면적인 대응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선은 자본주의 문화의 침습에 대해 각종 사전 검열 및 물리적인 압수 수색과 함께 자본주의 문화 자체를 보다 강력히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주민 여가생활에 대한 배려와 함께 주민들의 취향 변화를 조금씩 수용해 나가는 정책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주민들의 실생활에서 자본주의 문화가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 나갈수록,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두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문예정책도 더욱 강화되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오양렬 |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관심 분야는 북한문예정책으로, 현재는 남북문화교류협회, 북한연구학회, 한국정책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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