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 [문화저널]
'전통'과'혁신'의 관계
김은정 편집주간(2004-12-09 14:18:10)
지난달 일본의 몇몇 도시들을 다녀왔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전통문화의 가치에 눈뜨고 주목하여 도시 발전의 근간으로 세워놓은 도시들입니다. 일본답사는 그동안에도 몇 차례 다녀온 터여서 그 도시들을 읽는 일이 낯설지 만은 않았습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문화적 실현은 탄탄했습니다. 그들의 전통문화는 이미 주민들의 의식 속에,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도시의 미래를 열어가는 문화산업의 중요한 동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일본의 도시들 말고도 오래전에 문화를 주목했던 세계의 도시 중에는 문화적 전통을 살려 산업화로, 혹은 관광자원으로 발전 시켜 성공을 거둔 예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전통을 보존해 독창적 개성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문화적 욕구를 수용해 창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나가는 일본의 전략은 전통문화의 가치에 뒤늦게 눈을 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일본의 전통문화 메카로 자리 잡은 ‘가나자와’에서 ‘전통’은 곧 ‘혁신’입니다. 전통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현대적 삶을 구현, 일본안의 전통문화 ‘메카’로 자리 잡은 가나자와의 문화도시 만들기의 과정과 전략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천도 역사의 부활을 꿈꾸며 새로운 역사도시로 나아가는 ‘나라’나 천년역사의 전통을 힘으로 세계를 끌어들이는 ‘교토’ 역시 우리에게는 부러운 대상입니다.
경제 불황의 국면이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문화적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삶에는 문화적 향기가 넘쳐나는, 그래서 늘 여유롭게 보이는 그들의 삶과 의식을 엿보는 일은 새로운 자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에 대한 명료한 인식과 그것을 바탕으로 혁신을 철저하게 실현해 나가는 방식을 만나게 되면 그것은 자극이 아니라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답사 길에서 만난 일본의 문화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전통은 곧 혁신이다’고 말했습니다.
‘전통과 혁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긴장 관계에 있다. 전통을 무시하는 혁신은 무질서를 낳고, 혁신을 외면하는 전통은 미라처럼 생명력을 잃는다.’
이것이 전통과 혁신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관점이자 가치관입니다.
보존의 개념으로 관념화되어버린 ‘전통’과 새로움을 지향하는 ‘혁신’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곧 서로 같은 연상에서 만나는 동질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일본 문화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전통적 혁신’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통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면서 끊임없이 유·무형의 문화를 탄생시키는 ‘전통 혁신’은 일본 문화의 저력이기도합니다.
전주도 전통문화중심도시를 도시의 미래로 선택했습니다. 선택하는 것만도 쉽지 않았으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완성에까지 이르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 고단한 과정에 갈등과 대립, 고통이 없을 리 없지만 바람직한 실현을 위한 진통이라면 모두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노정이겠습니다.
이번호는 올 한해 마지막 호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2004년이 가고 있습니다.
마음 황망해지지 않는다면 올 한해 잘 사신 것입니다. 뒤돌아보아 뿌듯하고, 앞을 보아 의연할 수 있다면 세상 살만 할 것입니다.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새해 맞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김은정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