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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 | [서평]
역사에게 묻다
송만오-전주대 사학과 교수(2004-11-09 14:58:13)
역사에게 묻다 (책문-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지음,2004,소나뭎 펴냄)) 선시대에 실시된 여러 과거 가운데, 급제자에게 가장 영광스럽고 또 출세가 보장되었던 시험은 문과였다. 대과라고도 불리는 이 시험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갑오개혁이 있던 1894년까지, 무려 500여 년 간을 지속하면서 14,600명에 달하는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문과를 통해 배출된 이들이야말로 조선의 정치 및 사회에 있어 최고의 엘리트집단이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조선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문과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기왕에 나온 논저만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간의 연구 대부분이 문과제도의 운영이나 혹은 문과급제자의 가계를 주목하는 데 치중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밖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문과에 응시한 자가 작성한 답안지 즉 과지(科紙)의 내용도 반드시 주목할 만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천착하는 일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문과의 전시(殿試)에서 실시된 ‘책문’과 ‘대책’을 다룬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또 추천도서로 선정되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책이 출간된 이후 나온 서평만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오늘날 이 책이 차지하고 있는 인기의 정도를 짐작할 만하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의 저자 김태완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중국철학우화』, 『상수역학』, 『도교』 등 주로 철학과 관련된 저술을 남긴 분이다. 따라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저자로서는 처음으로 시도해 본 역사관련 저술이 아닌가 한다. 김태완의 새로운 변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앞으로 저자의 관심이 어디에까지 이를지 참으로 기대 된다. 13장으로 구성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책문’ 13개와 ‘대책’ 15개를 쉬운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단순한 번역 작품에 그쳤더라면 그렇게 많은 주목은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문과의 최종 시험인 전시(殿試)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왕의 ‘책문’에 대한 답 즉, ‘대책’의 내용을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하여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구성해 놓았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각 장마다 마련된 ‘책문 속으로’가 바로 그것인데, 이 부분이야 말로 이 책의 백미요, 저자가 ‘책문’과 ‘대책’이 갖고 있는 함축적 의미를 참으로 꼼꼼히 살핀 결과가 아닐까 한다. 그러면 책 속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이 책은 크게 서론과 본문 그리고 부록 등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문은 과거제도의 도입과 그 역사적 의미 등 우리나라 과거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말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저자 김태완의 한국사 인식에 토대를 둔 것인 셈이다. 철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이처럼 깊은 안목을 지녔다는 점이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두 번째의 본문은 다시 세 부분으로 세분된다. 즉 왕의 ‘책문’과, 응사자의 ‘대책’, 그리고 ‘책문’과 ‘대책’의 행간에 담긴 의미를 모색하여 이를 정리한 ‘책문 속으로’가 그것이다. 이 중 ‘책문’과 ‘대책’은 한문으로 된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저자 김태완의 뛰어난 한문 실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책문 속으로’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현대적의미로 재해석한 부분으로 저자의 혜안이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한편 『책문』에는 모두 13개의 ‘책문’과 15개의 ‘대책’ 그리고 13개의 ‘책문 속으로’가 실려 있다. 책문은 광해군의 것이 셋, 중종의 것이 넷, 명종의 것이 셋, 선조의 것이 하나, 세종의 것이 둘이다. 대부분이 임진왜란 이전에 등극했던 왕이라는 점에서 김태완은 조선후기 보다는 조선전기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연산군, 영조, 정조, 고종 등 조선의 역사를 어둡게 하거나 혹은 밝게 했던 그리고 서양의 도전에 직면했던 시기의 왕이 문과응시자에게 내던졌던 ‘책문’에 대해서도 주목한 책이 저자로부터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책문’에 대한 응시자들의 ‘대책’을 읽는 것도 이 책의 재미이다. 가장 긴 ‘대책’을 낸 사람은 광해군대의 조위한과 광해군 대의 임숙영이다. 두 사람의 대책을 번역한 부분이 47페이지에 달한다. 이들은 그만큼 왕에 할 말이 많았던 것일까. 반면 광해군 대의 이명한의 ‘대책’은 6페이지에 불과하다. “섣달 그믐반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명한은 할 말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저자 김태완이 책을 통해 정작 주목한 인물은 김구와 조광조, 조위한이다. 이는 ‘책문 속으로’의 분량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과연 그들이 어떤 내용의 ‘대책’을 올렸기에 김태완이 주목했던가. 이 점은 그들에게 주어진 왕의 ‘책문’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구에게 주어진 ‘책문’은 “술의 폐해를 논하라”는 것이었으며, 조광조는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중종으로 받는다. 그런가 하면 조위한에게는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이라는 책문이 주어졌었다. 요컨대 술의 폐해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자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들 주제들은 우리나라가 처한 오늘날의 현실에 너무도 절실한 질문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김태완이 이들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남긴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부제가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것이 이해가 됨직하다. 강직한 인물로 대변되는 임숙영을 맨 앞에 배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렸다. 『책문』의 마지막 부록은 책에서 인용한 원문의 출처를 밝힌 부분과 번역에 대한 역주, 그리고 책에서 인용한 책들에 대한 해제, 찾아보기로 이루어졌다. 마치 전문서적과도 같은 구성을 갖춤으로써 책의 무게를 한층 더 돋보인다고 하겠다. 모두가 저자의 정성과 꼼꼼함에서 비롯한 것들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 『책문』은 이제까지 언급한 정성과 꼼꼼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적될 사항이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저자의 전공이 한국사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며, 보기에 따라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되도록 지적사항은 바로 잡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책문』에서 첫 번째로 지적될 수 있는 문제는 조선시대의 과거제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설명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p.10에서 ‘과거시험에는 문과, 무과, 잡과가 있다. 문과는 다시 소과와 대과로 나누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다. 문과를 소과와 대과로 나누는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는 대과는 문과만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소과는 생원과 진사를 뽑는 시험으로 사마시라고도 불렀는데, 문과하고는 그 격이 달랐다. 참고로 말한다면 조선시대의 사마시 합격자는 47000명 정도가 된다. 저자는 같은 페이지에서 대과 즉 문과의 종류가 여럿 있다고 하면서 식년시와 증광시 그리고 알성시를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이 설명도 옳지가 않다. 간지에 자, 묘, 오, 유가 들어가는 해에 실시한 시험을 식년시라고 부른 것을 맞지만, 그 외 나머지 모든 시험은 별시라고 불렀다. 별시 내에 알성시, 춘당대시, 정시 등이 있었던 것이다. 또 문과합격이라는 표현도 문과급제로 바꾸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용어의 사용에도 신중을 기해주었으면 한다. 책문을 책제라고도 한 데도 있으며, p.17을 보면 ‘율곡 이이는 책문을 가장 많이 남긴 사람에 속하는데’라고 하여 책문이 왕이 전시에서 내는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료(혹은 응시자)가 작성하는 것까지도 의미한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밖에 애매모호한 표현(p.67)이나 시 번역의 정확하지 못한 표현(p.63) 등도 눈에 걸린다. 저자가 외람된 나의 지적을 받아 주면 나로서는 더 이상의 바람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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