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 | [건강보감]
건강보감
신우종-신우종내과의원 원장(2004-11-09 14:53:04)
조금 적게 먹는 지혜
보릿고개로 고생하던 세대가 살아 있는데 어느덧 비만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됐다. 모두들 비만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듯 하다. 중년 남녀들은 아무리 해도 빠지지 않는 자신의 몸무게를 한탄하고, 젊은 여자들은 살찐 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망치고 있다고 고민한다. 모두들 살을 빼기위해 난리다. 몸짱 아줌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이제 비만은 건강과 미의 가장 큰 적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비만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에다 지방간까지 일으키는 주범이고,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두려워하고 퇴치해야 될 건강의 범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지방은 해롭기만 한 인체의 군더더기에 불과한 것인가?
몇 가지 지방 예찬을 하는 것으로 이 글을 이끌어 나가려고 한다. 우선, 나이 들어서는 약간 비만한 사람이 더 장수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 골다공증도 덜 발생한다고 한다. 지방은 외부의 충격에 쿠션역할을 하여 인체를 보호하기도 하고, 추위를 덜 타게 해주며 스테미너를 높여 활기찬 생활을 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먹을 것이 떨어져버린 비상사태를 생각해보자. 뚱뚱한 사람이 날씬한 사람보다 훨씬 더 오래 견딜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방은 우리 신체의 비상곡식창고이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의 가설에 의하면 우리 몸의 조절장치는 수렵채취 시대에 셋팅(setting)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는 사냥이나 자연산물의 채취가 식량원이었기 때문에 먹을거리가 일정하지 않았다. 사냥은 허탕 치기 쉬웠고 열매는 일정하게 맺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굶었을 때 쓸 수 있는 에너지 비축창고가 필요했다. 그런데 우선 에너지를 저축하려면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갈증이 우리 몸의 수분 섭취량을 조절하듯 포만감은 음식의 섭취량을 결정한다.
비만은 왜 생기는가? 원인에는 유전적 소인 등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핵심은 몸이 쓰는 에너지보다 칼로리 섭취량이 많기 때문이다. 만일 몸이 쓴 것만큼 섭취하도록 포만감이 셋팅 되어있다면 비만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수렵채취 시대에 맞게 항시 여유분을 더 저장할 수 있도록, 즉 몸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 조금 더 많이 먹어야 포만감을 느끼도록 셋팅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몸의 잘못된 조절기능을 우리의 의식이 조절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게 들어온 평범한 진리, “조금 부족한 듯 느낄 때 수저를 놓아라.”
이러한 조금 적게 먹는 지혜를 갖지 않는 한 비만은 치료될 수 없다. 적게 먹지 않고서는 운동을 아무리 많이 해도 몸무게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없다.
이것을 실행하기 힘든 사람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오이, 토마토 등의 야채를 아주 싱겁게 나물로 조리하여 많이 먹고 5~10분 정도 기다려 공복감을 어느 정도 없앤 후 소량의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식은 금물이다.
조금 적게 먹는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대이다. 기아가 빈곤한 시대의 비극이라면, 비만은 풍요로운 시대의 대가이다. 중용의 시대는 없는 것일까? ‘중용’의 한구절이 생각난다.
“차라리 칼날 위를 걸을 수 있을지언정, 중용을 지키기는 어렵다.”
조금 적게 먹는 것도 중용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칼날 위를 걷는 것보다는 쉬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