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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 | [문화시평]
나비는 천년을 꿈꾼다
김길수-국립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04-11-09 12:19:55)
상상력 빚어가기와 상징의 공연 해법 좋은 연극의 경우 다양한 오브제들이 상징의 극 코드 기능을 발하면서 상상력은 무한 광대하게 확장되어 간다. 전주시립극단의 <나비는 천년을 꿈꾼다>(김태수 작, 조승철 연출, 전주덕진예술회관)에선 구체와 추상의 무대 오브제가 코러스와 만나 다양한 상상의 공간, 다면적인 내면 심리 흐름을 펼쳐 보이려 한다. 미황사를 찾은 한 남자, 그의 표정, 동작이 예사롭지 않다. 어둡다. 왜 그럴까. 산장 여인의 얼굴은 창백하다. 왜 그럴까. 수수께끼 투성이의 사연, 연극적 추진력이란 이를 풀어가면서 그 궁금증을 점차 증폭시켜 나감에 있을 것이다. 독자 대중의 구원을 향해 글을 써나갔던 소설가의 비전, 그러나 그 비전이 아내(염정숙 분)의 죽어감을 방치하게 한 주범은 아닐까. 이런 문제된 글쓰기 작업을 계속해야 할까. 이를 놓고 고민하던 끝에 전라도 땅끝 마을 해남 미황사를 찾아온 동혁(고조영 분), 그러나 주지승을 만나 고민을 풀어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주지 해운(이병옥 분)은 불가해한 화두만 늘어놓을 뿐이다. 그 사이에서 양념 노릇을 톡톡히 해주는 별교댁(서형화 분), 옛 사랑을 만났지만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상황, 이로 인해 가슴앓이를 해왔던 산장 여인 여정(홍지예 분), 이 네 인물이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 희곡 텍스트를 볼 때 여정의 아픔, 동혁의 아픔, 이게 따로 놀고 있다. 과거 숨은 이야기에서 이 두 인물간의 관련성이 약하다. 이런 희곡 구성상의 문제를 파악, 재구성하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한발 앞서간 서구 극예술 창작 흐름을 떠올려 보지 않더라도 전문 극 해석 길잡이(일명 드라마투르그)의 확보 작업은 양질의 공연을 위해 화급하게 선결되어야 할 문제 중의 하나다. 연출 조승철은 무대의 시각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들려주기 대사의 평면성, 이런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청각적 볼거리와 상징 그림이 선을 보인다. 침상, 거울, 흘러내리는 물, 갯바위, 석탑 등 구체적인 오브제가 인물의 지난 행적과 심리 반영에 일부분 활용된다. 인물들의 내적 고뇌를 상징하기 위해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여정의 꿈을 상징하는 바라춤, 집단 겁탈을 상징하는 군무, 나비가 되어 천년의 꿈을 펼쳐가려는 그 비전이 배우들의 집단 신체기호로 변용된다. 천상의 세계, 그리고 거울 오브제를 통한 반영 이미지, 관객은 이중의 환상 이미지를 접하면서 볼거리의 쾌감을 일부 맛본다. 일부 재치 있는 발상이다. 코러스(안대원, 국영숙, 서유정, 소종호, 서주희, 김정영 분)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일부나마 자극시켜 나갔음은 이 작품의 기본 덕목에 속한다. 인물의 또 다른 자아로서 그리고 문제된 상황을 상징의 춤 그림으로 변주시키는 과정에서 코러스는 일정 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창가 전전,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남자, 그러나 이미 그는 사랑할 수 없는 상황, 이제 천년 동안 그 사랑을 펼치고 싶은 꿈, 그 사랑했던 남자가 주지 해운임이 밝혀질 때 관객은 일순간 숨을 멈춘다. 주지 해운과 열정적인 사랑을 영원히 나누고픈 꿈, 이게 바라춤으로 그리고 맑고 아름다운 천상 선녀 이미지로 승화시켜 나가려는 발상, 관객은 이 부분에서 상당 부분 몰입과 긴장의 맛을 느낀다. 죽어 가는 아내(염정숙)를 향한 갈등의 현장, 이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현실, 회상과 현실을 다르게 반응해야 하는 힘든 고난도 연기 문법, 이를 무리 없이 호흡 조절해 나간 고조영, 이를 뒷받침 해준 정밀한 음악 선율 설계 작업 역시 공연성 확장의 주요 요인이다. 이 연극에선 다양한 회상 그림, 환영 그림이 자주 펼쳐진다. 주인공의 내면에 숨겨진 아픔들, 이를 상기시키는 악령들의 상징 춤 그림이 현실 인물과 교차한다. 문제는 반응의 변별성이다. 해당 인물의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환영, 따라서 볼 수 있는 자와 볼 수 없는 자, 그 변별 이미지에 탐색과 실험은 계속될 필요가 있다. 여관방, 배란다, 그 앞 정원과 벤치, 절 마당, 갯바위 등 다양한 구체 무대 그림은 인물의 행동선 및 갈등선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기여한다. 문제는 이 오브제들이 무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함으로써 환상 내지 환영 그림과 자주 충돌함에 있다. 연극의 생명력은 상상력 창출 및 확장 작업에 있다. 다양한 상상을 촉발시킬 치밀한 상징의 극 기호 배치, 이를 위해 상징 무대 그림과 코러스와의 접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죽은 자가 부활하여 너와 나의 가슴 속에 열반의 춤을 추는 열려진 천국 세상, 관객을 압도할 다이나믹한 춤 그림, 그리고 이어질 정적인 아름다움, 그 변화와 교차 작업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볼륨의 구체 무대 구조물 덕분에 코러스들의 움직임, 상징의 의미 살려나가기 작업이 자주 방해를 받는다. 상상력 빚어가기와 상징의 공연 해법, 그 관련점 탐색 작업은 현대 연극의 최대 숙제이자 화두이다. 전라도 해남 사투리 음색의 감칠 맛, 그 곰삭은 맛깔을 음색 설계 과정에서 일부 아쉽기는 하지만 오랜 내공의 육체 언어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한 벌교댁 역의 서형화, 특히 결혼식 전날까지 공연에 몰두하는 그 연극적 열정은 전북 연극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가치가 있다. 김길수 | 국립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으면서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순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연극평론집 <우리시대 삶과 연극의 조망-해체극, 상황극, 희비극>, <남도의희곡미학> 등으로 제2회 Performing Arts and Film Review(연극 부문) 비평상, 제3회 여석기연극평론가상, 예술평론상 등을 수상했다. <동승>, <맥베드>, <땅이여 사랑일레라>등을 극본, 연출, 예술감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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