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 | [문화시평]
2004 뜨락 음악회
송만규 화가(2004-11-09 12:16:10)
그 시대는 갔지만
격세지감이다.
국가기관인 전주국립박물관 마당 한 가운데에 팔달로나 시위 현장에서나 들을 수 있던 음악으로 음악회가 펼쳐졌다. 노래 부르는 이들의 세련된 차림새와 다듬어진 소리들이 실재감 있게 들려오게 하지지 않았지만 지난 상황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정교하게 쌓여 완고해 보이는 박물관을 배경으로 돌계단 위에 넓게 펼쳐진 무대와 그 양쪽엔 나지막하게 뻗어 내린 소나무가지와 키 작은 푸른 나무들이 잘 다듬어진 무대로 느끼게 하였으나, 들녘에서 옮겨 설치해 놓은 억새풀들이 바람을 타고 제멋대로 일렁이며 은발을 나부끼는 것이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공연이 끝나고 설치된 억새풀들은 관객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기존시설을 이용한 저 비용의 효과적인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적막한 가을 저녁, 별들마저 숨죽이며 움츠리고 있는 분위기에 정지된 무대위에서의 공연은 오늘 선택한 노래들이 간직하고 있는 현장성과는 물론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다. 이제 사회운동이 그러하듯 흘러간 옛노래에서 느끼는 향수와 지금도 유효한 정서가 박재화된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진화 발전하는 것임에 틀림없음으로 역사속의 노래가 되어버린 것들을 눈을 감고 들어보았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절박한 그 역사의 현장을 떠올리며…
전북대학교 합창단원들이 성가대같은 복장으로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는 순간, 저들 나이의 젊은이, 길거리, 최루탄, 화염병, 짱돌들이 스펙트럼처럼 스쳐간다. 긴급조치가 발동하고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과 기름 그리고 불이 젊음과 현장의 절박한 외침과 호소, 분노이 몸부림들이 하나되어 귀가에 왱왱거린다.
나의 자식들에게서는 분노와 절규 그리고 몸부림같은 저런 처절한 노래가 불려져서는 안될 텐데 하면서도 하모니를 이루려는 노력과 고운목소리가 그 시대적 상황을 알고나 부르는 건가, ‘지리산’ ‘잠들지 않는 남도’등의 노래는 너무 가볍게 부르는 것은 아닌지 하며,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진리와 자유, 정의가 용솟음치는 대학생활 동안 역사에 대한 올곧은 인식과 혁명적 낭만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래서 살맛나는 새날에 대해 꿈 꾸고 이루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들로 성장하는다는 것은 우리 역사 발전에 소중한 자산이 틀림없고 개인적으로도 고통과 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 소중하고 멋지지 아니한가!
붉은 천에 흰 글씨가 새겨진 머리띠를 두르고 율동하는 모습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사포’ 무용단원들의 가벼운 붉은 티셔츠 차림은 편안해보이면서 그 느낌은 더욱 역동성과 리듬감이 넘치도록 연출되었다. 지금도 대규모 집회에서 자주 불려지는 ‘불나비’라는 곡에 하나 된 몸짓은 자유, 평등이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정서를 바탕으로 현대무용을 실험성과 독창적 예술성으로 일궈나가면서 무대와 마당을 넘나들며 공연을 해 온 ‘사포’는 고요한 가을 밤하늘이 높지만은 않다. 운동적인 몸짓이 ‘아침이슬’처럼 대중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전 선동의 동력으로 노래패들의 활동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국민운동으로 이끄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노래는 시간과공간의 침투력이 원활하다는 매체의 특성상, 이성에 감춰지거나 억제된 인간의 감성을 흔들어, 시위현장에서 대중을 단결하게하고 투쟁의 열기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전북지역에서는 ‘선언’ ‘소리모둠’ ‘소리꽃’ 등의 노래패가 집회나 시위, 행사장에서 단골로 판을 벌였다. 이들의 명칭만 보아도 어딘지 결연하고 단결된 힘을 느껴지지 않는가? 이들은 이제 삶의 현장에서 또다른 모습들로 또다른 삶들에게 활력을 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뜨락음악회’ 무대에 선 ‘우리동네’는 직장인들로 구성된 노래동호회에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인지 결연함을 이끄는 힘의 노래라기 보다 부드럽고 은근하게 녹아들어가는 정서로 면면이 이어지는 감성으로 다가오게 하는 소리로 들렸다. 경제활동과 문화활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가는 현대의 경제구조에서 이러한 동호회 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고 폭넓은 감성을 확보해 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자생적인 문하 동호회들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앙상불을 이루어낸다면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지향하는 ‘우리동네’ 동호인들의 바램처럼 이 지역은 아기자기한 문화도시가 되지 않을까!
이어진 해금의 울림이 이토록 가슴을 뭉클하게 하면서 긴장감에 좌불안석의 지경에 이르게까지 한 힘은 무엇인가? 내 작은 딸 민지가 초등학교 때 배운 악기가 해금이었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악기를 사달라고 조를 때 사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내가 존경하는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이며 선구자의 생존의 모습이 떠올라 참기가 힘들었다.
문익환 목사님! 평양의 봉수교회에서 부활절예배 때에 잠긴 목소리로 ‘ 저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첫 발언을 해서 북측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던 그가, 그 예배당에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온몸으로 간절하게 부르며 갈라진 조국과 겨레에 대한 사랑을 기원 했다. 그래서 ‘장윤미’의 해금소리는 문익환목사님의 노래와 하나가 되어 전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게 나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강한 감동에 사로잡혀 있는데 편안한 아줌마들이 오늘은 치마저고리를 벗고 무대에 올라왔다. 전북여성농민회의 노래패 ‘청보리사랑’ 이다.
어머니이고 아줌마인 이들은 논두렁에서 밭두렁에서 쪼그리고 앉아 일하다가는 손등 볼 겨를도 없이 모여서 노래 연습하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평등한 여성, 인간다운 농민의 삶을 위하여, 즐겁고 희망찬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함께하는 부지런한 여성 일꾼들이다.
10년전 창단 당시의 얼굴이 보이지 않거나 다른 경우도 있으난 이들의 무대에는 표정이 살아있다. 나는 다른 노래패의 공연이 끝나고 나면 뒤풀이 장에서 투정을 부릴 때가 있다. 입으로만 부른다라고. 그러나 이들은 가슴속에 스며든 삶의 의지, 의미를 여과없이 노래에 그대로 투영시킨다. 그래서 그들 노래에서는 삶의 색깔이 배어나온다. 이시대의 노동요를 생산하고 있다.
푸근하고 친근한 목소리들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잘 익고, 다듬어진 ‘고은영’이 ‘상록수’를 부른다. ‘고은영’은 대중성이 있다. 풍부한 음폭과 속삭이듯 다가가며 부담없는 발성이 친근감을 더해 준다. 성악가들의 대중가수와의 퓨전적 접근이 간혹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잘 풀어 표현하고 있구나하고 느껴졌다. 내 마음이 이제 너그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야학교사로 활동을 했다. 학생들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나이도, 경제생활도, 개인적 이력도, 그러나보니 돌발적인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서로가 힘든 사람들이다. 나도, 그들도... 우리는 그래서 함께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다. 목이 잠기며 울기도 하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하면서 힘찬 박수를 서로에게 보냈다.
지나온 세월들과 함께 고비고비 숨어있던 나의 일기장들이 들춰지는 저녁이었기에 내 가슴은 북처럼 나부댔다. 참을 수 없어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옆에 앉은 ‘문병학’이 볼까봐 애써 이겨낸다.
그 시대는 갔지만 무대에 올려진 영혼들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다시 살아나 아직도 떠다니는 비인간, 반민주, 폭력, 불평등을 날려버리고 자유와 평등, 평화의 메시지가 되리라.
송만규 | 1955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를 졸업했다. 지금은 순창군 무량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에서 섬진강을 화폭에 담고 있으며, 전북민예총 부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