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 | [저널초점]
메세나는 기업의 의무
최영오 기자(2004-11-09 12:14:24)
메세나는 기업의 의무
메사나의 의미
메세나는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등 문화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로마제국의 정치가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메세나란 예술·문화·과학·스포츠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익사업에 대한 지원 등 기업의 모든 지원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의 메세나 활동은 기업이 문화재단, 후원회, 협회를 통한 문학, 문화교육, 미술, 영상·뉴미디어, 공연예술 등에 대한 문화예술 지원사업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 재단이나 기금은 그들의 재산을 운영하여 얻는 수익을, 설립 목적에 충족시키는 데 사용한다. 따라서 현재 메세나의 진정한 의미는 기업들의 조건 없는 문화지원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의 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삶의 질'을 한층 높이는 자선 관점의 사회공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메세나 활동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존의 개념과 더불어 문화예술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기업의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전략적인 홍보활동으로까지 사용하고 있다.
메세나의 세계적 추세
현재, 세계적으로는 영국, 벨기에,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등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메세나 활동이 가장 활발하며 캐나다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와 일본과 한국이 중심이 된 아시아 지역이 협의체 구성을 통해 체계적인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각 국의 협의회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예술지원활동 컨설팅과 연구조사사업, 메세나 시상식 등을 통한 성공사례의 홍보활동, 기업과 문화예술단체를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세미나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업입장에서는 급격하게 변화되는 소비시장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각국의 문화단체들은 세계화가 문화의 영역에까지 파고드는 상황에서 자국의 문화와 예술을 지켜내는 상호보완의 의미마저 가지고 있다.
한 예로 AT&T나 필립 모리스, IBM 등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국제시장을 기반으로 예술에 투자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고양하고 잠재적 고객을 개발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공적인 해외 문화메세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GAN영화재단의 영화산업 지원활동을 들 수 있다. 프랑스의 초대형 보험그룹인 GAN은 1987년 칸느영화제를 기념으로 영화재단을 공식 발족시켰다. 이 영화재단은 영화문화재의 복원, 영화배급의 활성화, 영화계의 신진 발굴 등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예산부족과 관리 당국의 무능력으로 복원이 힘들었던 무성영화의 복원과 창의적인 신인감독을 발굴하여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 그리고 이렇게 선정된 영화들의 배급지원 등을 통해 GAN은 영화광인 젊은 소비계층에게 보다 친숙한 기업으로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메세나
국내에 메세나가 도입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지만 기업과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연대가 모색되기 시작한 것은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부터이며, 이러한 대규모 문화행사들은 기업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94년, 드디어 기업과 문화예술계를 연결해 주는 통로로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발족하였다. 당시 문화부와 문화예술진흥원은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가입을 권유해 167개 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하였고,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포함해 750여 개의 기업이 회원으로 가입, 활동 중이다.
현재까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메세나 활동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메세나 초창기 정부의 기업재단에 대한 상속세와 증여세제의 혜택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런 세제혜택으로 인해 재산의 출연자들은 자기 소유의 재산을 출연하는 경우 5~50%에 이르는 무거운 상속 또는 증여세를 면제 받게 되어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거나 재단활동에 대한 재산출연(기부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메세나 활동의 경우 ‘절대 금액의 부족’, ‘실적 위주의 지원’, ‘최고경영자의 취향이나 인맥을 위주로 한 지원대상의 선정’ 등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내의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교보생명의 메세나 활동을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1기업 1문화 운동’과도 부합되는 교보생명의 메세나 활동은 ‘대산문화재단’을 통한 ‘문학’ 지원으로 축약할 수 있다. 국내 최대의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 시상, 창작문학 진흥을 위한 ‘대산창작기금’ 지원, 가치있는 외국문학의 올바른 수용을 위한 ‘외국문학 번역’ 지원 등 한국학 발전과 한국문화 이해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으로 평가받으면서 자회사인 교보문고는 서점업계가 불황인 상황에서도 높은 실적을 내고 있다. 특히, 우리 문학의 세계화와 선양을 위한 ‘한국문학 번역’ 지원 사업은 문학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건 없는 문화지원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람직한 메세나
현대적 메세나 활동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기업과 문화의 상호호예의 관계정립이 중요하다. 또한 점점 다양해지는 기업의 홍보활동과 수많은 문화예술이 서로 Win-Win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과 문화예술을 연결시켜 주는 개인 또는 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이런 매개자의 역할보다 특정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진 최고 경영층의 개인적 애정과 이해로 일방적인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원 의사결정이 대다수 기업에서 사장, 회장 등 최고경영층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예술의 창조와 젊은 예술인의 지원이라는 장기적이고 높은 관여가 필요한 분야보다는 단기적이고 매체 노출도가 높은 대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문화 예술 분야 지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내의 메세나 활동은 여유가 있을 경우에 행하는 기부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기업이 맡아야 하는 의무 중의 하나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의 이미지 제고 전략과의 연계할 필요도 있다. 기업은 문화 예술을 지원함에 있어서 ‘이것이 단순한 비용의 지출이 아닌 투자임’을 명심하여 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를 수행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 분야의 선정이 필요하다. 교보생명의 경우처럼 특정 분야를 선정하여 집중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가시적이고도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여 실제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날 기업메세나의 위상은 한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에까지 이르고 있다. 한국의 기업이 문화 예술 지원을 통한 사회적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한국 문화 예술의 미래는 어둡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