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11 | [문화저널]
2004 전주세계소리축제'판소리와 재즈'를 기획하고
최동현-군산대학교교수(2004-11-09 11:56:03)
판소리에 색감을 입히다 올해 네 번째를 맞은 ‘2004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주제는 “소리, 경계를 넘다”였다. 소리에 무슨 경계가 있기에 경계를 넘는다는 말인가? 그것은 장르의 경계, 문화의 경계일 터이다. 소리가 장르간의 경계를 넘을 경우 만나게 되는 것이 성악(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서양 성악)이나, 기악, 관현악, 무용 등일 것이며, 문화의 경계를 넘다 보면 다른 나라의 음악과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가령 독일의 음악이나, 미국이 음악 등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판소리가 경계를 넘어 다른 장르, 혹은 다른 문화의 음악과 만나고, 소통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 어차피 판소리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세계화를 해야 한다면 경계를 넘어 소통하고 대화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2004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주제가 “소리, 경계를 넘다”로 선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경계를 넘어서 소통가능성을 탐색해 볼 정도의 역량을 소리축제가 축적했느냐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판소리와 재즈’는 본래 ‘2004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위해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본래는 판소리의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 걸작 선정에 맞추어 준비한 판소리 음반(‘Pansori’) 중에서 선별한 곡에, 미국 시애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즈 음악가들의 재즈 연주를 곁들여 만든 것이었다. 재즈와 판소리가 만나기 위해서는 당연히 판소리 소리꾼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호흡을 같이 하면서, 협연하고, 그 결과를 음반에 담아야 하겠지만, 비용 문제로 소리꾼들은 가지 않고, 녹음을 가지고 가서 재즈 연주와 믹싱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Pansori ― east to west’였다. 이 음반 제작의 목적은 인류구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판소리를 외국인, 특히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판소리는 원체 민족적 특성이 강한 음악이기 때문에 서양인들로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음악이다. 기악이라면 그래도 좀 낫겠지만, 성악이다 보니 이해의 기본이 되는 사설부터 이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재즈를 곁들인다면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우리나라 재즈 음악가들과 함께 작업을 할 수도 있었으나, 서양인들의 해석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미국인들을 동원하였다. 이 음반의 내용이 ‘2004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주제와 잘 맞았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재즈 팀을 불러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Pansori ― east to west’에 있는 음악만으로는 부족해서, 그 이전에 우리나라 민요를 재즈화했던 음반 ‘朝鮮之心’(영문명 The Heart of Core'e)에 있는 음악들을 포함하여 레파토리를 구성하였다. 레파토리 선정은 이 두 음반의 편곡자이자 재즈 팀의 리더인 이안 조엘 래쉬킨(Ian Joel Rashkin)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2004년 10월 18일 래쉬킨 일행이 입국을 하고, 19일 오후부터 연습 일정이 마련되었다. 제일 먼저 문제가 된 것은 두 나라 음악가들 사이의 의사소통이었다. 래쉬킨 일행은 한국어를 모르고, 판소리 창자들은 영어를 모르니, 모든 의사소통이 자원봉사자와 나의 짧은 영어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음악은 음악대로 통하는 것이어서 쉽게 적응이 되어 갔다. 나중에는 서로간의 눈짓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였다. 음반 제작시에는 판소리가 미리 녹음되어 있었기 때문에 재즈 연주자들은 그 녹음에 일방적으로 맞추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같이 연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재즈 팀과 판소리 창자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진모리 장단에 미국인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자진모리 장단의 강박이 전체 박자의 9/12의 위치에 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진양조의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였다. 녹음을 한 판소리에서는 판소리 창자들이 한껏 기교를 부리느라 박과 박 사이의 간격이 일정치 않아서 연주자들이 매우 어려워했는데, 같이 연주를 할 때는 소리꾼들이 박과 박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소리를 했기 때문에 호흡을 맞추기가 훨씬 쉽다고 했다. 이번에 공연된 ‘판소리와 재즈’에서는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 보았다. 아니리까지 포함한 형식, 아니리를 제외하고 순수한 창 부분만으로 된 것, 재즈 전주가 있고 창이 시작되는 형식, 판소리 창 도중에 소리를 쉬고 재즈 연주가 소리를 이어가는 형식, 그리고 창이 끝나고 그 리듬을 살려 즉흥으로 길게 연주하는 형식 등을 골고루 시도해 보았다. 장단도 모든 종류의 장단을 다 사용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미국 재즈 팀이 판소리와 다양한 만남을 시도해 본 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는 본래 그대로 있고, 늘 재즈가 판소리를 따라가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판소리와 재즈’라기보다는 ‘판소리를 따라가는 재즈’ 연주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판소리와 재즈는 빠른 곡, 특히 중중모리나 엇모리, 그리고 판소리 장단은 아니지만 동살풀이 장단에서 훨씬 더 호흡이 잘 맞았다. 이들 장단이 사양 음악가들에게 쉽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느린 진양조 곡의 경우에는 판소리와 잘 어울리는 양식이 어떤 것인지 보다 더 다양한 방법을 탐구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재즈 음악가들은 이번 연주를 ‘판소리에 색깔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들이 판소리에 입힌 색깔이 서양인들이 판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판소리를 판소리로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방법으로서 이러한 협동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판소리가 문화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판소리와 재즈의 만남은 여러 가지 가능한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도 첫 시도였다. 그러기 때문에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판소리가 문화의 경계를 넘어 퍼져 갈 수 있는 통로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될 수만 있다면, 이 공연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 공연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보람이다. 공연이 끝나고 재즈 음악가들은 모두 만족해했다. 우리 소리꾼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부담이 따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쁨도 더 큰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동현 | 1954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판소리의 세계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판소리 연구』, 『판소리란 무엇인가』, 『판소리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