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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 | [문화저널]
'밤티재길'
박남원 시인(2004-11-09 11:46:57)
옛 상처 어루만져주던'밤티재길' 전주에서 17번 도로를 타고 오다가 남원시내에 다다를 즈음 이 아름다운 도시의 관문격인 춘향터널이 보이고 거기서 조금만 더 지나면 남원 유일의 서남대학교 정문에 이르게 된다. 서남대 정문에 닿으면 정문 바로 옆에 호젓한 아스팔트길 하나가 나타나는데 여기부터가 말하자면 ‘춘향과이도령고개’가 있는 ‘밤티재길’이다. 원래는 춘양터널이 생기기 전 전주 쪽으로 가는 길목으로 쓰이던 같은 17번 도로였으나 새 길이 생기고 나서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산책로가 되었다. 서남대 정문에서 터널 건너편으로 다시 이어지는 17번 도로변에 있는 오리정모텔까지 2km 남짓 되는 이 편안한 고갯길을 처음 걸었던 것은 내가 서남대 뒤에 원룸 하나를 얻어 생활하게 된 올 사월부터다. 그때 한적하고 약간 쓸쓸한 느낌마저 드는 낡은 아스팔트길이 좋아서 한참을 걸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갖가지의 들꽃들이 길 양 옆으로 무리지어 일제히 손을 흔들어 주었던 첫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오랜 서울살이를 뒤로하고 시골생활을 시작한지 일년이 조금 넘던, 아직도 몸과 마음이 여전히 무거워져 있던 쓸쓸한 봄날이었었다.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의 정한을 나눈 소릿길이기도 한 이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편안하고 정답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가로수, 야트막한 언덕, 가끔 마주치는 낙엽이 내려앉은 나무의자, 그리고 별개미취꽃나 달개비같은 가을들꽃이거나, 장대와 억새, 칡넝쿨과 소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간 담쟁이넝쿨들이 걸을 때마다 일일이 다가와서는 묵은 시름에 부채질을 해서 날려 보내곤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길이 오래된 길이라서 좋다. 까맣던 아스팔트는 흐릿하게 빛이 바래어 있고 노면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그 틈으로 풀씨들이 들어가 자연스레 풀들이 자라기도 하고 아스팔트 양 옆도 조약돌면처럼 둥그렇고 밋밋해서 한가롭기 그지없다. 인간살이의 크고 작은 상처 같은 것들이 길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기약 없이 서울로 떠나는 이도령을 울면서 부여잡던 춘향의 애절함을 이 길이라고 그냥 보아 넘겼을 것이며 그 이후로도 숫한 장돌뱅이의 무거운 등짐이거나 세상살이의 무겁고 힘겨운 걸음걸이들을 남일 대하듯 만 했었겠는가. 비록 아스팔트가 덮이기 훨씬 전 일이긴 하겠지만 길 곳곳에 난 금들은 그런 상처의 기억 같은 것 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단순하지 않고 예사롭지 않는 느낌 때문에서라도 나는 이 길이 좋다. 우리의 일상에 더 이상 쓰지 않는 달구지를 대하는 느낌 같은 것,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이제는 더 이상 돌지 않는 물레방아를 지켜볼 때의 느낌 같은 것. 슬프고 아름답고 혹은 힘들었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했지만 이제는 먼 옛일이 되어 여유롭게 한 소절 노래라도 흥얼거리며 걸어도 좋을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박남원 | 1960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노동해방문학’으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막차를 기다리며』, 『그래도 못다한 내 사랑의 말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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