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 | [문화저널]
"길,스스로 빛나던"
박남준 시인(2004-11-09 11:24:29)
"길,스스로 빛나던"
일찍이 수많은 길이 있었다. 파괴와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으며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 붓다가 걸어간 깨달음으로 이르는 자비의 길이 있으며 내가 곧 길이요 진리라 말하며 예수가 걸어간 사랑의 길이 있었다.
배우고 깨우친 바 그 도리를 치국에 펼치려던 공자의 길이 있었으며 무위자연으로 나아간 장자의 길이 있었다. 나폴레옹과 징기스칸과 히틀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침략전쟁의 길이 있었다. 진리를 찾아 떠나던 길의 나그네, 화엄경의 선재동자와 같은 구도자의 길, 혜초와 원효가 걷던 길이 있었다.
김구가 가던 길이 있었으며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과 같은 길이 있었다. 윤동주가 가던 길이 있었으며 서정주가 가던 길이 있었다. 언제 그 길들이 끝나기나 했었는가. 길은 언제나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서 구례, 하동, 산청, 함양, 남원을 잇는 지리산권 마을들을 거쳐 제주도, 부산, 거제도, 통영, 고성, 마산, 창원, 진해, 김해, 울산, 양산, 밀양, 지금은 창녕지역을 걷고 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도법스님, 시인 이원규등과 오천리를 훨씬 넘긴 순례의 길, 어느 날엔 눈보라가 치기도 했다.
비바람이 불기도 했다. 눈을 맞고 걸었다. 비를 맞고 걸었다. 40도가 오르내린다는 불가마 속 같은 무더위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몸은 자꾸 주저앉고 싶었다. 걷고 또 걸을수록 어디를 가나 이 나라의 모든 길들 생명과 평화와는 너무 먼 고통의 길이었다.
하루 종일 길 위에서 보내는 나날들 그리 마음 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갓길도 없는 길을 대형트럭이 우당탕탕 순례단의 곁을 바짝 지나친다. 시커먼 매연의 굴뚝연기를 내뿜으며 고개 길을 질주한다. 맵다. 숨이 확 막힌다. 도심의 인도를 빼놓고는 그 어디를 가도 사람이 사람답게 걸어가는 길은, 사람이 사람에게로 걸어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과 평화로 가는 순례의 길, 손을 흔들며 나간다. 지나가는 트럭이, 버스가, 승용차들이 그 손을 마주 들어 함께 흔들어 준다. 처음 손을 흔들 때는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씽씽 지나가던 차들도 가끔은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박수를 쳐주기도 한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따뜻하고 따뜻한 일이다. 이 작고 작은 일이 바로 함께 가는 일의 첫 걸음인 것이다
언제였더라. 아마 내가 모악산에 살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밤이 깊었을 것이다. 달도 별빛도 없었을 것이다. 비틀비틀 술 취했을 것이다. 그 밤 작은 산골짜기 외딴집으로 가는 길, 맹인처럼 더듬어 길을 가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개울 옆 산으로 오르는 길이 밝다. 환하다. 눈을 꿈적거려보았다. 거기 캄캄 어두운 길이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길이 빛나다니, 스스로 제 몸에 빛을 품어 길을 밝히다니. 누군가 저 어두운 길을 걸어 먼저 갔을 것이다. 새들이 날아갔을 것이다. 토끼가 다람쥐가 너구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갔을 것이다. 지렁이가 민달팽이가 오체 투지로 온몸을 다 엎드려 나아갔을 것이다.
탁발의 길, 밥을 얻으려는 것이다. 밥을 얻어 몸을 살리려는 것이다. 잠자리를 얻어 몸을 쉬려는 것이다. 돈을 얻어 순례의 길에 유용하게 쓰며 기금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마음을 얻어 생명과 평화의 등불을 세상에 밝히려는 것이다. 그 길에서 얻은 진리로 나를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 탁발을 해주는 이들, 탁발이란 곧 자신을 비우며 끊임없이 나누는 바로 나눔과 섬김의 일이었다.
많은 이들을 만났다. 눈보라를 만났으며 비바람을 만났으며 님도 몰라본다는 봄볕에 까맣게 얼굴이 그을리기도 했다. 짜장면을 얻어먹었으며 다리 밑에 앉아 주먹밥을 나누고 빵과 우유를 탁발 받고 푸짐한 주안상을 마주하며 한숨과 절망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교회와 성당과 원불교교당과 절간에서 탁발의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주었으며 빈한한 시골마을 허름한 마을 회관에서 하루 밤의 몸을 누이기도 했다.
이 길, 생명평화탁발순례의 길, 함께 꿈꾸자는 것이다.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비록 저 허공의 무지개를 좇는 일일지 모르나 나 아직 몸 성하여 걷지 않는다면, 함께 꿈꾸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의 병든 땅위에 한 그루 나무의 씨앗이 싹을 틔우며 푸르러지겠는가. 막다른 길도 그 끝을 가보아야 왜 이 길이 막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를 알게될 것이다.
생명과 평화로 가는 일, 그것은 한 그루 나무를 세상에 심는 것이다. 그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내는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푸른 나무를 드리우며 산다는 일이란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을 아끼고 지켜준다는 것이다.
산에 들에 새들과 어린 짐승들 겁 없이 뛰어 놀고 갯벌이 강물이 바다가 흘러온 길 막힘없이 우리 곁에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친 이들의 쉴 곳이 되고 다리가 되고 지팡이가 되고 눈 먼 이의 눈이 되고 말 못하는 이의 입이 되어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꼭 껴안아 준다는 것이다. 그 세상 정말이지 살맛나는 세상 아닐 것인가. 거기 늘 푸른 나무가, 튼튼한 나무가 뿌리내릴 것이다.
아침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길을 간다.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길을 가다 길을 묻는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이 인간중심 개발의 논리로 치달으며 지상 위 어느 것 하나 고귀하지 않은 것 없는 뭇 생명들을 죽음의 나락으로 내 몰아가는 반생명의 시대에, 가진 자의 힘의 논리로 가난하고 힘없는 자와 나라를 억압하는 반평화의 시대에 시인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함께 가야할 생명과 평화의 길에 대해 물었다. 그대 안으로, 바로 내 안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걷는다는 것, 오래 걸을수록 자신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일, 힘겹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박남준 |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1984년 시전문지 '시인'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별의 안부를 묻는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