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 | [문화저널]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최승범 시인(2004-11-09 09:53:32)
입안의 황홀한 맛
기름진 음식을 먹다보면 솔깃이 양하장아찌 생각일 때가 있다. 밥상이나 술상에서 흔하게 대할 수 있는 장아찌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하(襄荷)는 새앙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긴 하나, 이것이 더러 저자의 채소점에 나오는 것은 가을 한 철, 그것도 추석무렵이다.
처음 양하 맛을 본 것은 성년이 되어 나의 고향 남원을 떠나와서의 일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전라북도에서도 동부산악지대의 물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부안·고창·전주의 추석무렵 상차림이면 으례 이 양하로 만든 음식이 오르기 마련이었다.
양하라는 먹거리를 알게 된 것은 ‘양하적’으로 하여서였다. 맛조개·돼지고기·대파·당근 등을 자롬자롬 썰이하여 양하와 더불어 양념한 후, 이쑤시개 길이의 꼬치에 꿰어 달걀노른자를 입혀 구워낸 것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전(剪)이었다. 이름을 묻자,
―‘양해. 양하전. 양해간. 양화.’
등 제각각이다. 뒷날 몇 종의 우리말사전을 찾아보고야, ‘양해·양화’의 말들이 ‘양하’의 지방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양하’에 대한 설명에서,
―‘뿌리줄기는 살이 많고 땅속에서 옆으로 뻗으며, 잎은 두 줄로 어긋매겨 나는데 버들잎 모양이다. 특이한 향기가 없이 어린 잎과 땅속 줄기, 꽃이삭을 향미로 먹는다. 열대 아시아 원산으로 일찍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남쪽지방의 산야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채소와 같이 재배하고 있다.’
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양하를 주재료로 한 먹거리는 ‘양하적’만이 아님을 차차로 알게 되었다. 양하의 맛을 챙기다 보니 집에서는 양하를 탕이나 볶음으로 조리한 것도 먹을 수 있었다. 어느 것으로 먹거나 양하의 향기는 마찬가지다.
양하장아찌의 맛을 즐기게 된 것은 전주의 음식점이나 내 집에서가 아니었다. 고창 지방에의 나들이에서였다. 몇 해 전이었던가, 「조양식당」(대표 최계월, 전화 264-2026)에서 점심상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꼭 대만(臺灣) 한란의 자름한 학(鶴)의 부리같은 꽃봉지를 잘게 짜개놓은 것 같은 것이 하나의 중접시에 노여 있었다. 두어 올을 집어바라자니, 양하의 향내가 코끝에 와 닿는다. 고추장에 박아낸,
―양하장아찌
였다. 처음 대한 양하장아찌의 이 맛이라니, 입안이 온통 황홀하기만 하였다. 맛 이야긴 잠시 미루어 두고, 바로 저 지난달의 일이다. 고창음내 변두리 월곡리에 자리한 「우진회관」,(대표 홍명의, 전화 564-0101)에서 ‘고창갯벌구이풍창장어’를 먹게 된 식탁에
―양하장아찌
가 올라 있었다. 대만 한란의 꽃봉지 빛깔이 아니었다. 자줏빛보다도 검은빛이 돋았다. 이는 고추장박이가 아닌 간장에 절여 낸 것이었다. 그러나 양하의 맛과 향내는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고추장박이나 간장절임의 양하장아찌 맛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꼭 집어서 말하기란 어렵다. 몇 올 입안에 넣고 다른 먹거리들과 아울러 저작(咀嚼)하자면 기름기같은 것을 가시게 한다. 선미(鮮味)가 돋는다. 개운하고 산뜻한 맛이다.
한정식의 식당에서 먹거나 장어구이 식당에서 먹거나, 산미(山味)를 느끼고 선미(仙味)에 젖을 수 있는 맛이다.
청정한 산마물의 맛인가 하면 신선세계에나 있을 법한 맛이다.
양하장아찌의 맛은 말로하여 알 수 있는 맛이 아니다. 직접 맛봄으로써 입안의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