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 | [서평]
문화유산 파괴에 대한 외침
윤덕향 /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있(2004-09-14 07:29:08)
문화유산 파괴에 대한 외침
윤덕향 / 전북대학교 교수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대불만이 아니라 대불로 대표되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사라져버린 문화유산을 다룬 책이다. 그렇다고 하여 아프카니스탄의 문화재나 미술작품을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밝힌 것처럼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저질러진 문화유산의 파괴에 대한 저자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파괴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아프카니스탄의 선사시대부터 바미얀 대불이 만들어진 시대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2부는 대불이 만들어진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크게 바미얀 석불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아프카니스탄의 역사를 구분하는 것의 타당성을 여기에서 논의할 필요는 없으나, 저자는 바미얀 대불이 아니라 이스람의 등장을 시대 구분의 주요한 기준으로 설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영광의 유산’이라고 이름 한 1부에는 9개의 장이 있는데 1장에서는 자연 환경을 비롯하여 인종구성과 교통로 등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2장부터 9장까지 아프카니스탄에서 조사된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을 선사시대부터 대불이 만들어진 시대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하였다. 그런데 이들 개개의 장은 나름대로 독립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서로가 이어져 대불 조성시대까지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왕의 치세에는 이런 일이 있었고 어떤 전쟁이 일어난 원인과 경과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유적이나 유물이 어떻게 발견되고 조사되었으며 조사된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얘기하는 것으로 특정한 시대의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는 책의 흐름에 따라서 시대 순서를 따라서 책을 읽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순서를 바꾸어 읽어도 글의 전개를 이해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르게 보자면 1장을 제외한 8장은 8개의 에피소드 또는 깔끔한 에세이처럼 보이며, 이것들이 아프카니스탄의 문화와 역사라는 큰 틀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2부 ‘파란의 역사’는 8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와 2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던 이슬람 시대는 앞의 2장을 차지하고 11 - 14장은 근대화로 이름 되는 서구 열강의 침투와 문화유산의 발굴조사, 그리고 15장 이후에 문화유산들의 수난과 파괴를 다루고 있다. 문화유적이나 유물을 중심으로 아프카니스탄의 역사를 살펴본 1부와 달리 시대적인 특성 탓이겠지만 2부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반적인 역사, 특히 국제관계나 국내 정치의 역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2부는 1부와 달리 장의 순서를 따라 읽어나가야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다만 아프카니스탄의 현대사에서 바미얀 대불로 대표되는 문화유산들의 수난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강하게 담겨있는 17장은 책의 말미가 아니라 서문에 붙여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 1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별도로 서문(프롤로그)과 에필로그가 붙어있어 저자의 집필 의도와 내용, 그리고 의견과 주장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은 우선 한 나라나 지역의 문화나 역사를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인 편년체가 아니라 유물 유적이나 사건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같은 접근은 개개 사건이나 유물 유적에 치중하다보면 자칫하면 뒤죽박죽이 되거나 전체적인 논의의 초점이 흐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시종일관 문화유산 또는 문명의 파괴라는 큰 명제에 초점이 집중되어있으며 전혀 주제와는 무관할 것 같은 영화조차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같은 명제로 수렴된다. 이 같은 일관된 논의의 집중성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집필동기에서 보이는 문화유산의 파괴에 대한 분노가 전혀 무관한 장이나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의 행간에도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의 서술 방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프카니스탄의 역사를 나열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아마도 바로 이 같은 점, 즉 저자의 의도가 주제가 되고 그 의도가 책의 전체에 면면히 흘러내리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정확한 것이었고 충분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여겨진다.
자칫 이런 류의 문화비평이나 의견을 주장하는 글들은 자료나 근거가 빈약하게 제시되고 목소리만 높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아프카니스탄에서 벌어진 문화유산의 파괴에 분노하여 집필한 이 책에는 얄미울 정도로 차분하게 각종 자료가 제시되어있다. 미술사학자인 저자가 직접 현지를 여행하여 얻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책을 통하여 얻은 자료들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경로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얻은 온갖 잡다한 정보가 저자의 지적 분석과정을 거쳐 지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저자의 자료에 대한 열정은 책의 말미에 붙인 글을 보지 않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그 같은 자료에 대한 진지함은 단순해보이지만 필요한 설명을 각주와 미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나, 전공서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별로 참고문헌을 제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아프카니스탄의 미술사도 아니며 문화사도 아니고 더구나 역사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바미얀 대불로 대표되는 아프카니스탄의 문화유산들이 사라진 것에 대한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집필하여 발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문화 비평이나 사회비평에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아프카니스탄을 중심으로 그 주변지역 일대의 미술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 가득 담겨있다.
즉 1부에서 소개한 유적들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는 주변지역에서 수입된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가지는 미술사, 문화사 또는 문화교류사적 의미가 잘 드러나 있다. 비록 문화유산의 파괴에 대한 항의라는 명제를 향하여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하여 저자가 의도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아프카니스탄과 그 주변지역의 미술이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참고자료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사회나 문화평론 또는 아프카니스탄의 기행문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합하면서 동시에 미술사 또는 문화사의 자료로서도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느끼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각주와 미주가 덧붙여있으며 유물 유적의 사진이 비교적 풍부하게 제시되어있어도 어렵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미술사나 문화사를 전공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이 파괴된 것에 분노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여야한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라면 너무 어렵고 저자 자신도 이점을 의식한 듯 말미에 붙인 글에서 상업성을 따지지 않고 책을 냈다고 하지만 어렵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와는 거리가 멀고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아프카니스탄, 서구열강의 고고학적 식민지로서의 그곳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는 문화재 파괴와 관련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경우를 돌아보는 것은 문화유산이 가지는 보편성 때문만은 아니다. 신념과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또는 목전의 이익 때문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유적 유물이 없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 책은 아프카니스탄과 그 주변지역의 문화 편년표라도 옆에 준비하고 다시 한번 꼼꼼하고 세세하게 읽어볼 가치가 있다. 바람 스산하게 부는 가을의 길목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