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 | [삶이담긴 옷이야기]
인체 이야기 ‘발’
최미현(2004-09-14 07:27:20)
인체 이야기 ‘발’
발은 여성의 인체 중에서 가장 수난을 많이 겪은 인체 부분이 아닐까 한다. 신분이 높은 중국 여인들은 발을 단단하게 감싸 자라지 않도록 전족을 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일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불구가 되어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므로 노동은 불가능하고 움직일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비활동성이 중국 남성들에게는 여성미의 극치로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보면 양귀비가 추운 봄날 화청궁에서 목욕 한 후 시녀가 부축하자 힘없는 듯 교태를 부려 천자의 총애를 얻었다는 구절이 있다. 아마 중국 남성들이 이런 힘없는 여인에게 더 매력을 느꼈나보다.
동양전통 무예에서 발은 하나의 무기이다. 그러나 여성의 발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논리에 의해 더 작게 우겨 넣어 크기를 줄여왔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누구에게도 맞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녀의 계모는 이 신발을 자신의 딸들에게 신기기 위해서 발가락과 뒷굼치를 잘라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데렐라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이 동양이나 서양이나 전하고 있다. 중국의 신데렐라는 유양잡조(酉陽雜粗)에 나오는 섭한의 이야기이다. 섭한이라는 아가씨는 계모로부터 갖은 구박을 받으며 사는데, 계모 몰래 숨어서 물고기를 기른다. 나라에서 큰 잔치가 열리는 날 섭한은 물고기의 도움으로 비단옷과 금 구두를 얻어 성장을 하고 나갔다가 계모에게 들키게 된다. 도망치다 떨어진 구두 한 짝을 이웃나라 임금님이 줍게 되고 그 구두의 주인공을 찾아 왕비를 맞는다는 줄거리이다.
여성의 신발이 성기를 상징했던 것도 동서양이 같다. 여성의 성적인 매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여성의 신발이 사용되어져 왔다. 특히 뾰족한 하이힐의 경우에 그렇다. 프랑스에서는 신부가 남편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식 신발을 잘 보관하여 절대로 잊거나 없애지 말아야 한다. 시칠리아에서는 남편감을 구하는 아가씨들은 베게 밑에 신발 한 짝을 넣고 잠을 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변심했을 때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고 한다. 이런 걸로 유추해 봐도 신발은 다분히 성(sex)과 밀접한 상징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붉은 등이라는 중국 영화를 보면 부잣집에서 그날 밤 주인을 모실 첩에게 늙은 여인이 발 맛사지를 미리 해주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발을 자극해 주면 신체의 여러 부위를 활발하게 움직이게 해주기도 하지만 성적인 자극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았다는 것도 다분히 성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맨발을 보이는 것을 수치로 알았는데 이것은 신체 서열에서 하위인 발을 보이는 것에 의한 수치심도 있었지만 맨발을 보인다는 것은 성적인 관계를 허락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온 것을 기록할 때 이력서(履歷書)라고 부르는데 신발(履)을 끌고 온 역사(歷)의
기록(書)인 것이다. 발에 신긴 신발이란 본능을 누르는 이성이라고 볼 수도 있고 보호수단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기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신발을 두 짝 다 온전하게 신고 있는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