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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 | [문화저널]
남형두 변호사의 저작권 길라잡이
남형두(2004-09-14 07:25:19)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미국에는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붙인 공공시설이 여럿 있다. 예를 들어 뉴욕에 있는 케네디 공항, 워싱톤 DC에 있는 덜레스 공항, 그리고 최근 사망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LA 공항도 있다. 그런데, 작년 연말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 지역에 새로 건설된 대형 현수교에 붙여진 “알프레드 잠파”라는 이름은 너무도 생소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잠파는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45년간 유명한 금문교를 비롯하여 미국 주요 교량의 건설기능공으로 일하다가, 66세에 은퇴한 그야말로 평범한 노동자였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이 새로운 교량의 이름을 “알프레드 잠파 메모리얼 브리지”라고 명명하면서, “많은 사람이 흔히 대형 건축물에다 유명인의 이름을 붙여야 그것의 위용, 장엄함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번 잠파 브리지를 통해서는 사람들이 교량을 만들기 위해 목숨과 피땀을 바친 이름 모를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직업의 귀천을 막론하고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의 이름으로 공공시설을 명명하는 것은 전문가의식, 책임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어 매우 참신한 것 같다. “잠파 브리지”와 같은 이름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2002년도에 영국의 BBC 방송국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선정하는 여론조사를 하였는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에 이어 “이잠바르 킹덤 브루넬”이라는 사람이 선정되었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브루넬은 템즈강저터널과 당시로서는 희귀한 현수교 등을 건설한 빅토리아시대의 토목기술자로서, 진화론의 다윈,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세익스피어, 만유인력의 뉴턴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오랫동안 사농공상에 젖어있던 우리의 전통에 의하면, 이러한 영미의 사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정치지향적인 우리네 문화는 존경하는 이름에 정치인들 외에 다른 직역의 이름을 올려놓는 것에 인색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예로부터 이름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었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이름은 소비자에 대한 신뢰로 연결되어 상표(브랜드)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인 명품들이 대부분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 예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명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그 이유를 품질 때문이라고 강변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브랜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유명 브랜드의 권리자가 그와 같은 부를 얻는 것이 합당한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므로 다음 기회에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이른바 짝퉁이라고 하는 모조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조품은 두 가지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먼저, 다른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 놓은 업적을 큰 노력 없이 가로채는 것은 무임승차로서 옳지 못하다. 이를 방치할 경우 어느 누가 자신의 이름과 바꿀 명 브랜드를 만드는데 평생을 투자할 것인가? 둘째, 모조품은 진품의 가치를 희석화한다. 어느 것이 진품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소비자는 비싼 진품 대신 그럴싸한 가짜를 찾게 되는데, 이는 결국 가치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름(브랜드)을 중시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은 표절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지난 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가짜가 난무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진짜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이는 결국 문화의 황폐화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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