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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 | [문화저널]
이종민의 음악편지/게으르게 사는 즐거움
이종민(2004-09-14 07:23:35)
게으르게 사는 즐거움 - 김일륜의 [가야송] 뉴욕에 사는 한 부자 사업가가 코스타리카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2주간의 휴가를 즐기러 갔답니다. 첫날 그는 그곳의 한 어부로부터 생선을 샀습니다. 맛과 질이 일품이었습니다. 다음 날 그 미국인은 그 원주민 어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부두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생선은 이미 다 팔리고 없었습니다. 그 어부는 최상의 물고기가 잡히는 비밀 장소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에 단지 대여섯 마리의 물고기만을 잡을 뿐이었습니다. 그 미국인이 어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좀더 오래 바다에 나가서 더 많은 물고기를 잡지 않느냐고. 그러자 어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왜 그래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침에 9시나 10시까지 늦잠을 잡니다. 아이들과 놀다가 한두 시간 정도 물고기를 잡습니다. 오후에는 또 한두 시간 낮잠을 잡니다. 이른 저녁이면 가족들과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늦은 저녁에는 마을에 나가 와인을 마시고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보시다시피 제 삶은 충만하고 여유 있고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그러자 미국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풍족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나는 뉴욕에서 온 사업가입니다. 나는 당신이 더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나는 하버드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받았고 사업이나 마케팅에 대해 아는 게 많답니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물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더 많이 잡고 싶으면 저녁에도 낚시를 하러 가야 합니다. 그러면 금새 여유 자금이 생겨서 더 큰 배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 2년 지나면 배가 5,6 척으로 불어나 다른 어부들에게 대여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5년 정도 지나면 당신이 잡은 생선으로 생선공장을 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소유의 브랜드를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그 다음 6,7년 후엔 여기를 떠나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 공장을 운영하게 하면 됩니다. 15년이나 20년쯤 열심히 일하면 당신은 아마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듣고 있던 어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부자 미국인은 주저하지 않고 신이 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선 멕시코 같은 한적한 나라의 작은 시골로 이사를 가는 거죠. 거기에선 매일 늦잠을 잘 수 있고 마을 아이들이랑 놀거나 긴 낮잠을 즐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유 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밤마다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거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인데요?” 느리고 게으르게 사는 즐거움을 역설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젤린스키(Ernie J. Zelinski)가 소개한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의 충고에 충실하게, 게으름 잔뜩 피우며 남의 글을 길게 인용했습니다.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이 보다 더 잘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할 수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제가 ‘전통문화’ 때문에 상당히 부산을 떨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타고난 ‘게으름’을 어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테니스를 쉴 수는 없습니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주일에 서너 차례는 해야 합니다. 팔자 좋다는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벗들과 간단한 산행 마치고 잡담 나누며 맥주 한잔 하는 것도 거를 수 없는 한 주일 일거리입니다. 걸렀다가는 곧장 “너 왜 그러고 사냐?” 김용택 시인의 불호령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찾아뵌다는 명분으로 시골집으로 달려가 제가 심은 나무들을 ‘느리게’ 돌아보는 일도 빠뜨릴 수 없는 주말의 일과입니다. 건강 핑계로 출근하여 하는 아침산책도 생략하기 쉽지 않은 ‘게으름’ 즐기기의 하나입니다. 물론 그 중 으뜸은 돈도 안 되고 반응도 시원찮은 ‘음악편지’를 4년 넘어 써오는 일일 것입니다. 음반을 사 모으고 그것을 돌아가며 들어보는 것은 ‘게으르지’ 않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공 팽개친 채 필요한 자료를 찾아 인터넷이나 음악관련 서적을 뒤지고 다니는 오지랖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고 보니 게으르다는 게 오지랖 넓은 것 아니면 쓸데없이 부지런 떠는 것하고 통하는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꽤 부지런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젤린스키가 권하는 ‘게으르게 사는 즐거움’도 부지런하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그는 ‘적게 일하고 많이 생각하는’ 생활을 성공의 조건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게으르지만 생산적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게으르게 산다는 것은 돈이나 승진, 출세 등 막연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유보하며 부산을 떨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먼 달리기 시합을 멈추고 오랜 시간을 생각하는”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이유도 모른 채 바쁘기만 한 생활을” 그만두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전통문화’에 열중하는 것도 이러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다듬어진 전통문화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싸는’ 그래서 부작용을 최소화 하겠다는 생태적 삶의 자세가 베어 있는 것입니다. 근대 서구문화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젤린스키가 강조하는 ‘느린 삶’이 바로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은 전통에 뿌리는 둔 음악 하나 보내드립니다. 전주 출신 김일륜이 연주한 [가야송](伽倻頌)입니다. 가야송은 말 그대로 가야금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목정배씨의 시에 박범훈씨가 곡을 붙였습니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이 협연한 것으로 김일륜이 25현 가야금과 노래 연주를 맡고 있습니다. 중견 국악인이면서 신세대 풍의 이미지로 활발하게 연주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김일륜 교수(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는 그동안 실내악단 "어울림"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연주회마다 자신의 노래를 포함시킬 정도로 음악적 재능과 끼를 동시에 지닌 연주자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가야송]이 들어있는 그의 세 번째 앨범은 그녀 자신의 “아주 오래된 습관 - 어린시절부터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던 습관”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다양한 노래에는 평소 가야금 연주를 하면서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 깊은 곳의 "갈증"이 묻어 있습니다. 흔히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노래는 두 가지로 분류되곤 합니다. 하나는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통성악곡(판소리, 민요, 가야금 병창 등)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을 바탕으로 창작된 국악가요 형식의 것들입니다. 전자가 정제된 예술성으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대중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후자는 전통 창법을 구사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는 가요적인 요소(트롯적인 요소)로 경도되면서 제자리를 잡아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일륜의 이 앨범, 특히 풍성한 25현 가야금 화음을 동반한 [가야송]은 이 두 한계를 동시에 극복한 전범적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어느덧 가을입니다. 선선한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위해서서라도 우리들 마음을 느리게, 그러면서도 생산적으로 가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곡 들으시며 ‘게으르게 사는 즐거움’의 비결 곱게 키워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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