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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 | [문화와사람]
내가 할 일은 ‘숨은 지역사 찾아내기’
김선경(2004-09-14 07:12:39)
내가 할 일은 ‘숨은 지역사 찾아내기’ -지역사 연구자 김중규씨 태풍 메기의 북상으로 비가 내리던 날, 군산시청 1층 민원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창가 쪽 2인용 탁자에 자리를 잡고 그를 기다렸다. 군산시청 문화관광과 학예사 김중규(39)씨. 몹시 바쁜 듯, 그는 까만 결재서류철을 옆에 끼고 나타났다. 한 일 이십 분, 후딱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를 뜰 기세였다. 어떤 말로 그를 붙잡아놓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봤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작년에 『군산-답사?여행길잡이』(도서출판 나인)를 펴냈다는 것과, 올 8월 「고군산군도?군산연안지역 어전의 유형과 분포」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을 발표했다는 것이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시청 계약직 직원이면서 대학원에 재학중이고 틈틈이 책까지 펴낼 정도로 향토사 연구에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 시청에 근무하기 전에는 건축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만지던 ‘노가다꾼’이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인 걸 어떡합니까? 건축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답사도 다니고 책도 내고 그랬죠. 그때는 진포문화예술원 향토문화연구회 회원이었어요. ‘진포’가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풍물 중심의 단체로 바뀌었지만 진포 향토문화연구회는 군산 구석구석을 돌면서 군산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책들이 『향토사 교본』『잊혀진 백제, 사라진 강』 『군산사랑』 『군산 역사이야기』 『군산 답사여행 길잡이』 같은 책들이다. 답사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책을 발간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군산 답사여행 길잡이』는 무려 4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군산시 문화원으로부터 예산지원을 받는다면 훨씬 수월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는 순전히 자비를 들여 그 일을 해냈다. “당시에 문화원에서 지원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받는다 해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문화원에서 지원을 받으면 무가지로 해야되는데요. 무가지가 되면 사람들이 안 보는 데만 골라서 책이 찾아갑니다. 정작 보고 싶은 사람은 없어서 못 보지요. 또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무가지로 받으면 꼼꼼히 읽지 않습니다. 돈 주고 서점에서 산 책이라야 끝까지 읽죠.” 그의 고집은 그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잊혀진 백제, 사라진 강』을 내놓고는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들이 읽지도 않는 책은 펴내서 뭐하나……. 하지만 그의 말대로 “조사는 제일 저렴한 취미생활”이었다. 이미 역사 찾기에 젖어버린 그의 몸은 옛 기억을 버리지 못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짐을 꾸려서 군산의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아내와 세 아이들의 원망도 숱하게 들었다. 조사는 제일 저렴한 취미생활이기는 했지만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취미생활은 아니었다. 그렇게 답사를 다녀오면 일차로 답사내용을 정리해서 보관해 놓는다. 정리한 자료들이 쌓이면 주제별로 틀을 짜고, 그 틀에 맞게 정리된 내용을 다시 잘라내고 요약한다. 국문과 출신인 부인 이명진(군산여상 국어교사)씨가 맞춤법을 비롯한 교열을 끝내면 군산에 있는 ‘아는’ 인쇄소에 부탁해서 본문을 편집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이 인쇄와 제본비용에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한푼이라도 덜 들이고자 하는 그의 고군분투 끝에 다섯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책을 내고 났더니 군산문인협회에서 전화가 왔어요. 회원가입을 하라고요. 저 혼자 한참을 웃었습니다. 물론 이런 글도 수십 번 고치고 다시 쓰는 과정을 거치지만 어디 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이 최고지요.” ‘저렴한 취미생활’로 그칠 뻔했던 그의 답사활동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그에게 직업도 가져다주었다. 시청 학예사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시민단체에서만 활동했던 그에게 시청 학예사의 경험은 색다른 것이었다. “관공서에서 일하는 것이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시민단체에서 일할 때는 그렇게 요청해도 안됐던 일들이, 여기 들어와서 많이 해결됐거든요. 이영춘 박사의 가옥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도 그렇고, 시문화재 지정 조례안을 만들어서 통과시킨 것도 그렇고……올해만 해도 6개의 시문화재를 지정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것은 이 일이 이제 ‘업’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문화재 답사와 연구, 보존활동은 그의 ‘저렴한 취미생활’이 아니다. 이전까지는 “우리 아들도 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런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한다. 자기 돈 쏟아 부으면서도 즐거웠던 취미생활이 아니라, 이 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직업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지역사 연구 방법과 자료수집 방법 등을 새롭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의 조사활동이 절대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완벽할 때까지 조사만 하다가는 결코 책을 못 냅니다.『군산 이야기』에 나왔던 사람들 중 벌써 절반은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제가 조사해놓지 않았더라면 60년대 이전의 이야기는 확인할 길이 없었겠죠. 이번에 석사논문으로 발표한 어전도 일제시대 이전 형태는 알 수가 없습니다. 30년 전에만 착수했더라도 그 이전 형태가 조사되어 남아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비록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하더라도 내가 할 몫을 해놓는 겁니다. 내가 이 정도 조사해놓으면 이 다음에 다른 사람이 이어서 조사를 하겠지요. 저는 그 자료가 되어주는 것뿐입니다.” 현재 그는 금강유역 마을들의 문화유적을 조사하고 있다. 지금은 금강이 전북과 충남을 가르는 도계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강이야말로 가장 빠른 고속도로였다. 그래서 금강을 끼고 있는 마을들은 그 민속과 생활상의 공통점이 많다. 그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금강의 포구와 나루에 대한 조사도 병행할 생각이다. 하나를 만나면 또 하나가 나타나고, 그 하나에서 또 다른 것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문화유적 조사라는 것도 그 경계와 시종이 막연하다. 그야말로 끝이 없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 아닐까? “인생 누가 알겠습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고, 대학원 공부에 대해 별로 긍정적이지 않았는데 막상 하고 보니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모르면 배우고, 필요하면 찾고,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지,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 같은 것은 세워본 적이 없습니다.” 우직하게 자기 할 일만 하는 사람. 김중규씨는 그런 사람이다. “어려운 것 물어볼 줄 알고 걱정했는데, 아는 것만 물어봐 줘서 고맙다”며 그가 일어서려고 한다. 그가 할 일은 이제 다 한 것이다. 이미 몸에 젖어버린 일이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대체 이 일에서 어떤 보람을 찾고 있느냐고. “집사람과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내 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결재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김중규씨. 바로 저 발걸음이 지역사를 새롭게 써내는 발걸음이라는 생각에, 나는 오래도록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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