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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 | [문화가 정보]
'생명문화를 보다' 2004 부안영화제
최영오 기자(2004-09-14 07:01:39)
“꼭 80년의 광주 같았어. 불 지른 것만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내고.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말해주는 신문은 하나도 없었지. 그뿐이야, 분명히 반대한다고 말을 했는데 신문을 보면 찬성한다고 쓰여 있고…… 제대로 보도된 게 뭐가 있어. 중앙지들은 중 앙지라 그렇다고 치고, 부안의 지역신문들은 또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했어.” 첫 영화 ‘유산’이 상영될 부안동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만난 부안상설시장의 상인들은 언론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있는 언론과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새만금과 핵폐기장은 군정으로 시행하는 것인데, 이를 반대하는 영화제는 허가할 수 없다"는 부안군의 논리로 부안예술회관이 아닌 초등학교 강당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화상영을 준비하는 사람들 속에도 캠코더를 들고 있는 시민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부안주민투표 이후 꾸준히 부안의 모습을 담아오고 있다는 ‘참소리’의 박형민 학생기자군도 “풀뿌리 영화제로 시 작되는 부안영화제가 세계의 대표적 환경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언론의 불공정한 보도를 이야기 했다. 극장 하나 없고 문화적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부안, 이런 곳에서 어떻게 영화제를 열겠는 생각을 했을까? “촛불집회가 있을 때마다 열개 중대의 전경들이 내려왔어요. 평화로운 촛불시위에, 언론들은 집회의 본질은 다루지 않고 사소 한 사건을 폭력 시위로 보도하고. 그러다보니 주민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지요.? 대책위 김병철씨는 “김종규 군수의 독단적인 핵폐기장 신청 후에 언론의 보도는 주민들을 분노”케 했고 언론의 왜곡보도에 항의하는 한 방법으로 “장롱 속에 잠자던 낡은 카메라와 캠코더를 하나둘 들고 나온 것이 부안영화제의 시금석이 됐다”고 말 했다. 그러나 프로그래머 한승범 씨는 이번 부안영화제의 성격을 단순한 반핵, 환경영화제로 한정하는 것을 경계했다. 반핵투쟁의 한 방법으로 서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도움을 받아 초보수준의 주민들과 대책위 내 영상팀을 꾸리고, 교육한 것이 부안 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안영화제의 지향점을 단순한 반핵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부안영화제의 상영작들을 크게 4가지 정도로 묶었다. ‘주민섹션’과 ‘생태환경’, ‘다른 운동의 세계’와 ‘긴급 편성’이 바로 그것이다. 주민들 스스로 부안의 상황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영상교육이 ‘주민섹션’이라는 성과로 나타 났다면 국내외의 ‘생태?환경’ 영화들은 ‘생명문화를 보다’라는 핵폐기장 반대의 기치를 내건 이번 영화제의 주제를 가장 잘 대변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참여 영화제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부안영화제는 지금까지 부안의 고민을 밖으로 돌리는 시도를 하 고 있는데 그것이 ‘다른 운동의 세계’와 ‘긴급편성’의 프로그램들이라는 것이다. 주류언론들에 의해 왜곡되었던 부안의 현실을 주민들 스스로 바로 잡기 위해 시작한 영상운동이 부안영화제라는 환경?생태?생명?자치를 주제로 한 영화제를 만들어냈지 만 부안주민들과 조직위는 시선을 과감히 부안 밖으로 돌려, 보다 넓고 깊게 우리 주위의 일들을 살피는 작업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이번 영화제에서부터 이루어졌다. 긴급편성 된 고 김선일씨 및 한국의 반전운동 상황을 다룬 ‘끝나지 않은 전쟁-다큐멘터리’이 그 대표적인 예. 한국통신 계약 직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을 섬세하게 기록해 그들(비정규직)의 투쟁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묻고 있는 ‘이중의 적-이지영 감독’과 같이 부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어보이는 주제들(인권?여성?노동?평화)의 영화들이 비중 있게 상영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프로그래머인 한승범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들을 보면 부안영화제의 지향점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난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타인 을 배려할 수 있는 눈을 길러줄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다룬 ‘버스를 타자’와 임신한 여성 철도 노동자가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까지 희생되는 ‘소금’.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어머니를 한 여성으로 새롭게 조명한 ‘엄마…’ 등이 한감독의 추천작이다. 폐막작인 다큐멘터리 ‘새만금, 핵폐기장을 낳다-이강길 감독’는 핵폐기장 유치 반대투쟁을 재조명함은 물론, ‘위도가 왜 핵폐 기장 유치신청을 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럼으로써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폐기장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환 기시켰다. 이 영화는 바다와 갯벌이 생활의 터전인 위도가 새만금 사업이 추진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었고, 그에 따른 지역경제의 붕괴가 핵폐기장이라는 환상의 경제적 가치를 꿈꾸게 했다고 고발한다. 이밖에도 핵폐기장과 같은 생태 환경 문제의 본질을 헤집고 나선 영화들은 적지 않다. 해외작 ‘유산-피터 해저더스 감독’과 ‘히바큐샤-카마나카 히토미 감독’에서부터 국내작 ‘길 위에서 길을 묻다-오종환 감독’, ‘음식물쓰레기 없는 세상, 지렁이가 돕는다-황윤 감독’, ‘동강은 흐른다-김성한 감독’ 등도 생태?환경을 내세운 부안영화제의 주제를 반영한 영화들이다. 실제 이 생태?환경 영화들은 그간 핵폐기장 유치 문제로 ‘찬반양론’으로 극심한 대립을 보였던 부안 전체 주민들에게 갈등을 씻고 상 행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계기도 됐다. 100여 일의 짧은 준비기간과 극장 하나 없는 부안에서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문정현 신부는 “언론, 특히 진보언론들이 부안영화제를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고 당부한 후 “오락성이 강하거나 유명한 영 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를, 더구나 극장도 아닌 곳에서 조각천을 이어 붙인 흰천으로 영화제를 열 수 있는 곳은 부안 뿐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부안 주민들의 높아진 사회의식이 부안영화제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다. 이번 영화제의 기획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도맡았던 부안영화제 사무국장 김화선씨도 “부안영화제를 도와준 후원자들이 많아 이름을 다 댈 수 없을 정도다”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분들은 부안주민들이다”고 말했다. 핵패기장 반대 투쟁의 연장선상에 치러진 이번 부안영화제는 김국장의 말처럼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의 영화제였다. 행사기간 중 잔심부름을 도맡았던 부안의 고등학교 학생들에서 자막을 읽을 수도 없으면서 영화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70대의 할아버 지까지 행사가 치러진 부안동초등교(12~14일)와 부안수협 앞 광장(12~13일) 그리고 격포항 광장(14일)까지의 대장정에 주민은 무대와 객석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주민들은 직접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고 직접 펼친 문화공연(시사난타, 부안은 지금)과 전시(진실말하기-학생 걸개그림전)도 눈길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낮 동안은 생업에 바빠,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던 주민들이 밤이 되면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하나둘 반핵광장으로 모여드는 광경은 이 영화제를 왜 ‘풀뿌리 영화제’라고 부르는지 알게 해주었다. 반핵광장의 전시장도 부안주민들의 고민과 오늘의 부안이 안고 있는 문제의식을 그대로 전해준 공간이었다. 영화제가 열리는 내 내 이 광장에서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룬 설치미술가 최병수씨의 얼음 설치미술 '펭귄이 녹고 있다'와 사진작가 허철희씨의 ‘새만금사업과 부안 반핵투쟁 사진전’이 관객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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