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 | [문화칼럼]
강원도 평창, 아이들 그리고 감자꽃프로젝트
이선철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 씨티대학교 문화정책대학원에서 예술행정과(2004-09-14 07:00:28)
영국에서 유학하던 4년여를 제외하면 한번도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몇 년 전 스스로 강원도민이 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이유 하나로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평창의 한 산골마을의 폐교를 찾아내어 이사를 한 것이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생활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있던 터라 자연은 나의 몸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과 신선한 영감을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요즘 시골은 사람들이 자꾸 빠져나가 걱정이니 나같이 나이도 젊고 나름대로 전문적인 커리어를 꽤 쌓아온 사람이 제 발로 걸어들어 오면 금방 환영받을 거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낯설고 살아온 내력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 터를 잡는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다 친해지고 잘 지내지만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와 경계심에 눈물이 쏙 나올 만큼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르기도 했다.
이런 나의 다소 엉뚱한 생활을 사람들은 우려 반 부러움 반으로 바라보았다. 많은 지인들이 찾아주었고 그 중 후배 직원 한 사람은 글을 쓰기 위해 작년 겨울 한 달이나 같이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슬며시 자신의 작품이 지역신문인 강원일보의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었음을 말해주었다. 나는 누군가 내가 만든 공간에서 작은 꿈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내 일처럼 기뻐 기념으로 그의 당선작 제목인 “감자꽃” 이름을 따서 교실 한 칸을 산골 아이들을 위한 <감자꽃어린이도서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차츰 나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도와 군에서 관심을 가져 주셨고 여러 가지로 과분한 지원을 해 주셨다. 폐교 하나 덜렁 임대해 살고 있을 뿐인데 이렇듯 기대와 도움을 주고 계시니 나는 당연히 지역에 무언가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전공을 살려 문화와 관련된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기왕의 어린이도서관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다.
그래서 <감자꽃프로젝트>라 이름을 짓고 강원도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우선 문화예술교육 분야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마침 나는 서울의 꽤 많은 분야에서 자문 또는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었고 그런 일들 중 강원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들은 체면 불구하고 다 갖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문화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사업의 시범 지역으로 평창이 선정되어 지원을 받게 되면서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 농어촌 청소년들은 과거와 달리 TV와 인터넷 등을 통한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경험은 여느 도시아이들 못지않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상 직접 체험해 보는 분야나 전문 인력이 필요한 프로그램은 거의 접해보기 어렵다. 그래서 우선 전통문화나 공연예술, 독서 교육 등을 일차적인 분야로 잡았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것은 아이들이 음악인이 되기 위한 기능적인 예술 교육은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을 통한 인성교육으로 창의력과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윤택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준비를 돕는 것이 되어야 했다.
일을 다 잘 만들어 놓았는데 오히려 학교나 교사들의 호응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것은 완전히 기우였다. 무작정 찾아 간 평창중학교의 음악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그 열의가 정말 대단했다. 평소 제대로 된 국악반을 만드는 게 소원이었던 음악선생님은 약간의 지원에도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고 하며 고마워 하셨고, 교장선생님은 교장실까지 강의실로 내어주셨다. 처음에 가야금, 해금, 판소리, 풍물, 피리 등 반 별로 신청을 받는데 과연 아이들이 국악을 좋아할까 염려했으나 몰려든 많은 학생들 때문에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할 정도였고 즉석에서 이루어진 연주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즐거워했다.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에서 강사들이 내려와 반별로 수업을 하였다. 학교 선생님들도 함께 들어오셔서 배우는데 열심이셨다. 군수님과 군청의 직원 분들은 수시로 직접 현장을 방문하셔서 격려해 주셨고, 교육청의 교육장님과 장학사님들은 관내에 더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예상한대로 아이들과 신세대 국악 강사들은 금방 친해져서 문자도 주고받고 미니 홈피도 개설했다. 방학이 되어 마련된 3박4일간의 여름캠프는 더욱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말을 잘 안 들으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강사들을 졸라 쉬는 시간에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극성이었다. 교장 선생님도 밤늦게 통닭과 맥주를 들고 강사들을 찾아주셨고 지역 언론은 물론 방송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마지막 날 발표회 때 그동안 무척 짧은 시간의 학습이었지만 나름대로 배운 것을 열심히 해 보였다. 깜짝 놀랄 만큼 기대이상의 실력을 발휘해서 기획팀이나 강사들은 물론 제자들을 바라보는 학교 선생님들에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고 모두가 스스로 대견해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2학기에 좀 더 실력을 쌓아 연말에 드디어 공연을 통해 기량을 선보이려고 하며 그 무대도 자신들이 직접 기획을 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카네기홀보다 더 높게 보였을 읍내 문예회관에서 난생 처음 가족과 이웃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고 그건 하나의 사건이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젊은 문화의 전도사들인 강사들은 그들의 역할을 끝내고 떠나겠지만 학생들의 마음속엔 영원한 멘토로 남아 있을 것이고, 오늘의 학생들은 내년에 맞는 후배들을 다시 가르치며 자랑스러운 전통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다시 연극과 글짓기 등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