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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 | [문화저널]
김장아찌의 보약 맛
최승범(2004-09-14 06:57:30)
장아찌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벼농사만큼이나 오래일 것 같다. 그러나 문헌적인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조의 옛말로는 ‘쟝앗디이’, ‘쟝앳디히’, ‘쟝앗ㅶㅣ이’, ‘쟝앗지이’, ‘장앗지’, ‘장아찌’ 등으로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농가월령가》에는 재료가 흔할 때 많이 갈무리하였다가 내어 먹으라는 권이었다. <7월령>에선 -‘채소 과일 흔할 적에 저축을 많이 하소 / 박?호박고지 켜고 외?가지 짜게 절여 / 겨울에 먹어보소. 귀물이 아니 될까’ 라 하였고, <9월령>에서는, -‘배추국 무나물에 고춧잎 장아찌라’하여 특히, 고춧잎장아찌를 들어 말하였다. 사실, 요량 있는 주부들은 장아찌 담는 일이 중요한 연중행사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장아찌는 간장이나 소금에 절여서 담기도 하고, 된장?고추장에 박아서 담기도 하였다. 재료도 중요하지만 간장?된장?고추장의 장맛이 좋아야 장아찌의 맛도 돋기 마련이다. 그래, 예로부터 장아찌의 종류도 많고 많았다. 제철에 흔한 채소나 어류 등을 뒷날에 대비하여 갈무리하였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이름만도, -무장아찌?열무장아찌?무말랭이장아찌?파장아찌?달래장아찌?머우장아찌?고춧잎장아찌?풋고추장아찌?부추장아찌?미나리장아찌?외장아찌?토란장아찌?감자장아찌?마늘장아찌?콩잎장아찌?두부장아찌?계란장아찌?김장아찌?굴비장아찌?굴장아찌?홍합장아찌?전복장아찌?숙(熟)장아찌, 등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은 입맛으로 직접 즐겨본 것이나, 어물장아찌 중 몇 가지는 귀동냥의 것도 있다. 장아찌타령인 것은 김장아찌의 맛이 입안에 감돌아들었기 때문이다. 김장아찌를 처음으로 맛보게 된 것은 몇 해 전의 일이다. 전주우체국 앞에 자리한 「가족회관」(중앙동 3가 80, 전화 284-0982)에서였다. 비빔밥 한 그릇을 위한 상차림이 이렇듯 푸짐한 것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빔밥을 비비면서 따라나온 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맛깔스러웠다. 그 중, 작은 종발에 앙그러저 있는 한 자밤 음식이 눈길을 끌었다. 바스러뜨린 김무침에 간장기가 승한 것인가 하며 맛을 보니, 이게 아니다. 김은 김인데, 이건 장아찌의 맛이다. 그것도 간장?된장에 담은 것이 아닌 고추장에 박아낸 장아찌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 김 빛깔에도 고추장의 고운 빛깔이 돋아있다. 다시금 두 번 세 번 잘근잘근 맛을 보자니, 개운하면서 향기로운 맛이 갖가지로 입안을 즐겁게 하여 준다. 김의 맛은 물론, 통깨나 잣가루의 맛인가 하면 땅콩?육질(肉質)의 맛이 안기기도 한다. 「가족회관」의 대표 김년임여사에게 이 김장아찌에 대하여 묻자, 주재료는 김이 아니라 파래라 했다. 김은 ‘보라털과’에 속하고 파래는 ‘파래과’가 따로 있으니 분명 구분이 될 것이다. 어린시절에는 파래를 특히 청태(靑苔)로 부르기도 하였다. 물파래가 아닌 말린파래의 빛깔도 풀빛이었고, 그 두께에 있어서도 김과는 달랐다. 그러나 오늘날엔 김의 한자어를 해의(海衣)?해태(海苔)로 같이 쓰듯 김장아찌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제조법을 묻자, 이에 대한 특허를 내었고, 이미 판매도 하고 있으나, 그 비결을 다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김장아찌를 대하면 찬물(饌物)이 아닌 약물(藥物), 약물에서도 보약(補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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