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문화저널]
독자투고
박금희,조연아,박종원(2004-08-12 06:26:29)
만화를 특집으로?
문화저널을 받아보고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다. ‘만화가 문화(?)일 수 있나? 그렇다 쳐도 문화저널에서 특집으로 다룰 정도의 고급문화인가?’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넘기면서 ‘난 참 여러 편견에 빠져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7월호 특집을 다 읽었을 때는 만화에 관한 여러 생각들을 고치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만화를 조명해 나 같은 주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박금희/ 전주 주부
때로, 한 줄의 글이 한 줄의 소나기가 된다
지금 난, 찬 방바닥에 등을 대고 한 줄의 문장을 생각하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또 더 어려운 것은 이 땅 위에 삶을 세우는 것”이다. 이 문장은 내가 『문화저널』 7월호의 문화칼럼, 「화가(畵家)를 아십니까?」에서 본 문장이다.
이 말을 한 마이야코프스키를 난 알지 못한다. 그리고 「화가(畵家)를 아십니까?」란 그 짧은 글에서 내가 마이야코프스키에 대해 얻은 지식은 그가 화가라는 것,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왜 이 문장은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
요 며칠 면접을 보고 이력서를 쓰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처음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는 시인이 되겠다는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는데… 왜 나는 끝까지 해볼 생각을 하지 않지?’ 이제 곧 졸업이라는 생각과 직장을 다니면서 시를 계속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도 내내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난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또 더 어려운 것은 이 땅 위에 삶을 세우는 것’이다.
심상용 교수의 말에 의하면 마이야코프스키는 ‘미술관 안에서나 찬양 받는 죽은 걸작들 대신, 거리와 공장, 그리고 노동자들의 숙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살아있는 예술을 꿈꾸었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재능을 바치고자’했단다.
물론 「화가(畵家)를 아십니까?」에서는 세 명의 화가를 소개하고 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마이야코프스키의 말은 요즘 취업준비로 바쁘게 보냈던 나를 채찍질 한다. 나는 시(예술)를 내 의식 속에만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예술)가 생활이라는 것, 마야코프스키의 말처럼 ‘가장 아름답고 또 더 어려운 것은 이 땅 위에 삶을 세우는 것’이란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무더운 여름밤이다. 하지만 마이야코프스키의 말은 찬 방바닥의 한기처럼, 그리고 한줄기 소나기처럼 내 지금까지의 조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조연아/ 군산, 시인지망생
사이버 난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읽고
새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묻혀있던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새로운 토론의 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문화저널』 7월호의 사이버 난타 코너에서 다룬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도 이런 우리 시대의 흐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7월호 사이버 난타를 보고 몇 자 적습니다.
우선, 글이라는 인터넷 통로로 토론을 했음에도 다른 어떤 토론보다 알찬 토론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토론자 분들도 법학, 사회학을 전공하신 분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다양하게 참여하신 것 같고요.
토론을 읽어 가면서 제가 느낀 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찬성하는 분들의 의견이 너무 지배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양심적 병역거부 반대론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지 못하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독자인 생각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윤걸 님의 말씀처럼 반대론자들이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 문제를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내는 토론의 장까지 밀고 가려면 좀더 확실한 반대론자의 논리가 필요했다, 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문윤걸 님이 끝까지 제기하려 했던 병역의무의 불평등과 병역수행과정의 불평들에 대한 논의가 너무 적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징집과정에서 ‘신의 아들’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의 지도층의 병역기피현상이’ 남아있고 병역수행과정의 불평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주제의 토론은 진정한 출발점에 서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종원/ 익산시 신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