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서평]
미국 보수주의자가 본 ‘미국’
김영기 / 1963년 태어났다. 1982년 전북대 상대 입학해 자퇴하고, 1983년 전북대(2004-08-12 06:23:37)
서평을 써본 적이 언제인가. 근래 수 년 간은 기억이 없다. 글재주도 없고 읽은 책의 느낌을 글로 옮기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또한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공개적으로 강변할 이유가 없었다. 책은 읽는 자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부탁하는 처지이기에 ‘오죽하면’ 하고 엉겹결에 승낙했다. 돌아온 고통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만 앞섰다. 끝까지 "아니오!"라고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전화통화에서 저자도 모르고 설혹 기억했다 해도 미리 아는 사람도 아니고 깡패국가라는 제목을 들은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어떤 책일까? 한편 궁금하였다. 이라크를 다룬 책인가? 아니면 쿠바. 리비아, 이란, 시리아, 수단! 그것도 아니면 북한을 다룬 책일까? 한동안 잊고 있다가 전북대 앞에 갈 일이 있어 서점을 찾았으나 근처를 한바퀴 뒤져도 서점은 없었다. 학교 안에 구내서점을 가야 하나. 그 많던 서점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또 며칠이 흘렀다. 시내 서점에 들러서야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겉표지를 보니 예상 밖으로 미국을 다룬 책이 아닌가. 부시에 반대하는 미국보수주의자의 목소리! 그것도 미국 관료출신의 글이었다. 책은 왜 이리 두꺼운가. 그래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의무감으로 책을 뒤적였지만 쉽게 정리되는 글이 아니었다. 책의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단편적이며 잡문형식으로 씌어진 글이라 어려웠다. 아! 미국인에도 촘스키 이외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하며 읽었다. 나 자신은 그들이 깡패국가라고 얘기하는 악의 축, 북한동포들과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인 깡패백성 아닌가.
이 책의 저자인 클라이드 프레스토이치는 레이건 행정부 상무위 고위관료로서 무역협상을 주도했던 열렬한 공화당원이다. 저자는 이미 대학에서부터 보수주의 써클의 리더였다. 진보적인 대학분위기에 맞서 보수 써클을 조직하고 리더를 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그가 매카시즘과 맹목적인 애국심만이 판치는 미국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미국을 깡패국가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다방면에 걸쳐 진단하고 해법을 이야기하는 의미있고 신선한 글이었다.
이 책은 시각의 차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권하고 싶다. 시각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미국을 선망의 대상이며 신의 축복이 내린 기독교 본국처럼 생각하고 본받으며 따르려 하는 사람이나 필요악처럼 보거나 미국에 대해 처절한 분노를 갖고 있는 사람 등 모두에게 깊은 성찰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미국사회의 기독교적인 도덕적 우월성과 패권적 일방주의가 현재의 전지구적 반미의 원인으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해법으로 타문화와 종교에 대한 편견과 오만,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변한다. 패권적인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자유와 인도주의에 기초한 다자주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환경과 생태문제 등 지구적 차원의 주요현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리고 부시행정부를 비판하며 부시행정부가 미국의 전부가 아니며 아직도 미국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본인의 입장으로 강변한다.
필자는 다방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계화의 문제, 미국의 역사와 제국, 리우에서 교토까지의 전지구적 환경문제, 미국의 원주민과 이중적 인권, 미국의 분쟁 개입사, 아랍과 이스라엘, 미국의 신보수주의 등 숱한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해설한다. 지금까지 깊이 알지 못하는 사건들에 대한 미국 조야의 유익한 정보도 제공한다.
그런 반면에 역시 저자도 도덕적 우월성에 입각한 미국인임을 확인시킨다. 역시 미국인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베트남이 그랬듯, 이란 사람들도 미국의 군대와 무기에서 멀어질수록 더 미국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는 확언에서 보듯 ‘어떻게 하면 미국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지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미국식 물음과 답변의 측면도 있다. ‘미국의 본질적인 변화 없이 관용과 미국예외주의 재고, 다자주의만으로 과연 전 세계인이 미국을 필사적으로 원할까?’ 자문도 해보았다.
80년대에 대학을 보낸 나로서는 이 책은 철저히 미국적인 보수주의자가 미국식 합리주의에 기초해서 미국에 비판을 가한 글로 보여졌다. 저자는 간과하는 것이 있다. 미국의 본질은 미 행정부나 부시 등 일부 지도자들에 의해 여러 사안이 왜곡되어 깡패국가로 간 것이 아니라 태생 때인 독립선언서의 잉크가 마르기 전부터 미국사회의 필연적인 모순이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어떤 선량한 미국인이 통치해도 결국은 큰 틀에서는 미국적 패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인식하는 나와는 큰 차이가 느껴졌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케네디 대통령과 그 가문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며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몇 가지 추문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다. 그는 개척자정신을 이야기하며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치를 외쳤지만 그것은 과거 희랍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제국주의 다름이 아니었다. 그가 베트남에서 보여준 비인간적인 만행과 부도덕한 전쟁을 확전시켜 베트남사람들에게 피의 원한을 심어준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처럼 미국에 대한 시각은 중층적이고 다양하며 상이하다. 특히 제3세게 나라들에 있어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정서에도 불구하고 몇 나라를 제외하고 사회주류는 여전히 친미적이다. 많은 3세계 나라 청년들이 기회의 나라라 칭송하며 자신의 뿌리도 단절한 채 미국을 가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으며 미국 유학이라도 해야 마치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식견이 넓은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우리의 처지는 더욱 심각하다.
미국사회는 보수적 기반에 뿌리를 둔 국제주의로 칭하는 자유주의 그룹과 보수주의로 불리는 고립주의 그룹이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이름으로 경쟁하며 주류를 형성하고 통치를 해왔다. 여타의 정치세력은 큰 의미가 없거나 개인들의 집합일 뿐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한 클린턴 정부나 고립주의 그룹인 부시정부 모두 미국은 제국주의 그 자체라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자유주의 그룹이 통치하던 80년에 광주학살이 있었고 학살자들을 지지 엄호하였다. 다만 우리가 통일과 남북문제에서 보듯이 두 그룹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 이기보다 유연함과 경직됨의 차이를 보이지 않나 싶다. 우리처럼 친미약소국은 미국이 기침을 하면 폐부가 찢어질 듯 앓아야 하기 때문에 그나마 미국에 자유주의 그룹이 집권하여 좀더 유연한 국제정치를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까지는 우리의 목숨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으므로.
현재 우리는 이라크 파병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이 파병 반대와 국제 평화를 외치고 있으나 결국 전투병 추가파병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민족과 국가 전체는 미국의 용병으로 이라크 인들의 눈에 비춰지고 침략국의 일원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의 오만함을 응징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더욱 미국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파병을 국내에서 정치가들이 아무리 미화한들 어찌 이라크인들에게 통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근대화를 위해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 삼은 일제와 마찬가지로 경제 봉쇄하다가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켜 전 국토를 파괴해 놓고 재건이니 복구니 하며 침략에 동조하는 것을 누가 인정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근대화와 아시아 평화를 명분으로 침략한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을 친일 반역자라 부른다. 마찬가지 이치가 현재의 이라크에서 미국에 동조하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무리 정책이 합리성을 띤다 한들 홍익인간이나 인내천과 같은 보편적인 인간존중철학과 타종교, 문화, 역사에 대한 상호 존중, 경제에서의 인간성회복, 호혜와 평등의 질서가 없으면 제국주의적인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나타날 뿐이다.
저자의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 지구의 최대 환경 파괴와 자원 소비국은 미국이며 미국인들이다. 그리고 미국정부는 이러한 미국인들의 철저한 대변자임과 옹호자이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전형으로 어떠한 생태와 환경문제도 여기에 굴복된다.
끝으로 깡패국가라는 이 책은 우리에게 반미는 무엇이며 미국은 어떠한 나라인가에 대한 여러 사건을 통한 답을 준다. 이 답은 우리가 미국을 인식하는 지평을 넓혀준다. 비록 미국인의 편견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타 민족이나 역사적 사실과 전통, 정의를 미국과의 관계에서 사건의 나열로 진단하려한 한계는 있으나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은 역사탐방 뿐만이 아니라 책도 예외가 아니며 그것은 책을 읽는 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