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수요포럼]
전주시 문화재단을 만드는 이유
이현웅 (전주시청 문화경제국장)(2004-08-12 06:22:50)
전주시가 문화재단(가칭 전주문화재단)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문화재단을 통해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문화정책의 수립, 집행과 평가, 기업의 문화투자 참여와 확대를 꾀하겠다는 것. 이미 시의회에서 1억 5천만 원의 ‘문화재단 설립 준비금’도 배정받아놓은 상태다. 하지만, 전주시의 야심 찬 계획과는 달리 민간 문화예술인들의 시선은 그리 탐탁치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7월 14일 열린 제 19회 마당 수요포럼은 ‘전주시 문화재단을 만드는 이유’를 주제로 벌여졌다. 그동안 전주시가 문화행정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담보로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해왔고, 이미 설립 준비금 명목으로 1억 5만 원의 예산도 배정 받았지만 이에 대한 공론화 자리는 처음이었다.
‘문화재단’의 설립에 대한 민간 문화예술인들의 관심은 50평 포럼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높았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인원만 약 60여명. 지역축제 관계자와 예술단 노조를 비롯해 민간 위탁 문화시설 관계자, 민예총 활동가 등이 참석해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도 함께 높였다.
전주시는 문화재단을 통해 구조적으로 문화행정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담보해, 공익적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겠다고 하지만 민간 문화예술인들의 시각은 조금 달랐던 것. 비판의 초점은 전주시가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 한차례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것과 문화재단이 또 하나의 문화 권력이나 관의 예속 관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로 모아졌다.
반면 전주시가 아무런 공론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문화재단 설립을 밀어 붙인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민간문화예술인들이 주체가 되어 문화재단이 진정 지역문화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주문도 있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최인 CBS보도국장이 사회를, 이현웅 전주시 문화경제국장이 발제를 맡았다.
지역문화의 굳건한 뿌리를 위하여
급격한 근대화의 추진으로 중앙집권적인 성장이 이뤄지면서 지역불균형이 심화되었고, 참여정부는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균형발전과 지역분권을 제시하고 있다.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처럼 관 주도의 문화행정은 이미 그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
전주시가 비영리 법인으로 문화재단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 문화 분야의 전문성 확보와 자율성 보장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전주시 문화정책의 마스트 플랜 수립에 있다. 전주시는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반해 그것의 청사진 마련과 독창적인 문화환경을 조성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아직도 미흡하다. 타 도시와 비교했을 때 문화관련 전문직을 계약직으로 채용함으로써 비교적 열린 행정을 펼치고 있지만, 그 외의 직원들은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잦은 인사 교체로 평균 2년 이상의 업무수행이 힘든데다 전문적인 안목을 유지하기도 어려워 효율적인 문화행정을 펼치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둘째, 문화정책과 사업에 대한 평가다. 전주시가 지원하고 투자하는 문화사업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전주시 예산의 10%이상이 문화관련 사업에 투자되고 있는데도 각 사업마다의 성과와 평가가 원활하지 못하고 자체평가도 충분치 못한 것이 사실. 이는 문화정책에 대한 마스터플랜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각 사업마다 객관적이고도 체계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문화투자 확대를 위한 계기마련이다. 주 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기업은 문화적인 혜택을 통해서 이미지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이 지역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공적인 기구를 만든다면 지역문화에 대한 기업의 투자가 보다 용이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단의 역할을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전주시 문화정책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역할까지는 재단이 지향해야 할 역할이지만 각각의 문화시설을 운영하거나 문화사업을 기획, 집행하는 역할까지 문화재단이 도맡을 경우, 기왕에 다양하게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민간의 영역을 해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부분은 앞으로 심도 있는 토론과 논의를 거쳐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인력은 슬림화된 소수정예개념으로 구성하고 인력 pool제를 활용하여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 예산 문제는 전주시가 매년 3~4억 원 정도의 기본운영비를 지원하고, 연구개발비 및 사업비는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주시가 문화재단에 거는 가장 기본적인 기대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문화정책의 실현이며 이를 위해 공론화된 논의의 장을 확대, 재생산 시키는 것에 있다. 민간주도로 문화재단이 설립되어 공익을 실현하는 비영리 법인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직 민간이 그런 역할과 재원을 담보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관이 주도하여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민간이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해 민과 관이 서로 유기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문화재단, 독(毒)인가 약(藥)인가
전주시가 관주도의 문화행정이 갖는 한계를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전주시 문화재단(가칭)을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이미 시의회를 통해 설립준비금 1억 5천만 원의 예산도 배정받아 놓은 상태다.
제 19회 마당수요포럼에서는 ‘전주시 문화재단을 만드는 이유’를 주제로 문화재단 설립의 허와 실을 짚어보았다. 포럼장에는 예술단 관계자, 민간위탁 시설 관계자, 축제 조직위 관계자 등 우리지역 문화일꾼들이 대거 참석해,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민간 문화계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과연 지금 이 상황에서 문화재단이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해, 문화재단 설립 준비금이 배정된 지금의 상황까지 단 한번도 공론화 과정이 없었던 것에 대한 절차상의 문제, 문화재단 조직의 운용과 그 활동 범위에 대한 문제, 그리고 거대 문화재단이 자칫 민간 문화예술단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올라 뜨거운 참석자들 간에 뜨거운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다.
먼저 가장 먼저 논쟁의 중심에 떠오른 것은 문화재단 설립의 절차 문제였다. 전주시는 문화재단 설립을 위해 이미 설립 준비금까지 받아놓은 상태지만,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은 지금껏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상철 풍남제 총감독은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우리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관주도 문화행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꼭 문화재단의 설립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며 “시에서 문화재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시의회를 통해서 설립준비금을 승인 받은 과정과 어떤 논리로 시의회를 설득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이날 발제를 맡았던 이현웅 전주시 문화경제국장은 “전주시쯤의 여건이라면 안정적으로 문화정책을 수행해가는 조직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전주시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수시로 바뀌는 공문원들이 문화관련 예산은 좌지우지하는 것보다는 큰 틀의 전문조직을 갖고 민간과 함께 정책 협력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논리로 시의회를 설득했다”고 답했다.
김선태 전북민예총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발표했던 것은 대단히 담론적인 것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문화재단의 필요성에 대한 이런 공론장이 있었는가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문화재단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고 시의원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찾을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시의원들도 문화재단에 대한 공론화 과정도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며 일갈했고, 이날 사회를 맡았던 최인 CBS 보도국장도 “사회를 보기 위해 전주시와 시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지만, 문화재단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거들었다.
이 지적에 대해 이현웅 국장은 “정책은 민간부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 질 수도 있지만, 시 내부에서 정책의 일관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필요로 해 만들어 질 수도 있다”며 “기왕에 문화재단에 대해 여러 민간단체들이 이런저런 요구를 해준다면, 그 요구를 수용해 문화재단의 역할이 더 풍성해지지 않겠는가”라고 민간 문화예술단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정상권 전 소리축제 홍보부장은 문화재단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만약 시에서 기획이나 문화예술 행정을 위한 지원정책수립 기구가 필요했다면, 굳이 꼭 문화재단이 아니라 위원회 같은 형태의 조직체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재단을 만들려면 예산의 집행에 있어 충분한 독자성을 확보해야 그 의미가 있지, 그 역량이 제한되어 있는데, 왜 일을 이원화 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행정조직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일들을 문화재단까지 설립해서 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이현웅 국장은 “공조직이 갖고 있는 문화행정의 과부화를 민간쪽으로 끌고 오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법인체인 문화재단을 생각하게 됐다. ‘위원회’형태의 조직은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힘들다”며 “현재 문화관광과는 정책적 교류가 약하고 직원들의 잦은 이동으로 집행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재단이 큰 틀의 정책적을 그려 나가면서, 공무원들이 하기 힘든 창작지원 같은 일들을 함께 해준다면 전주의 문화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이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논쟁의 도마 위에 오른 문제는 문화재단의 역할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이근영 군산시민연대 운영위원은 “지금 이 자리에는 예술단 관계자, 여러 민간위탁 시설 관계자, 축제 조직위원회 관계자들 등 우리지역 민간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와있다. 문화재단 설립이 그만큼 민간 문화단체들에게 민감한 문제라는 뜻이다”며 “한옥마을이나 축제의 사업비 같은 것이 앞으로 문화재단을 통해서 집행되고 운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퍼져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선태 사무처장도 비슷한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현재 우리지역 문화계는 거의 관에서 나온 돈으로 유지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도 이런 이유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왔다. 이런 관주도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문화재단의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전주시는 문화재단에 얼마 정도의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지에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주시가 문화재단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고 주장했고, 백민기 전주시립극단 단원은 “문화재단을 지금 설립하는 이유가 지금까지 민간문화단체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해서인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화정책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한 것은 공무원들의 잦은 이동과 자질부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단지 문화재단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방패막이를 만드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 전주의 민간문화단체들은 충분히 그 역량이 성숙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민간문화단체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고 좀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와는 조금 다른 의견도 나왔다. 유태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 기획팀장은 “문화재단의 설립 준비금이 1억 5천이고, 인력운용도 소수정예로 한다고 했는데,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기존의 방식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지속적인 문화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최소한 축제전문가, 공연전문가, 전시전문가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어울어져 활동해야 한다”며 “다른 지역 문화재단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과 화려한 계획을 가지고도 기업의 투자유치를 거의 받아내고 있지 못하는데, 이렇게 소극적인 기획안으로 어떻게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이현웅 국장은 “현재 전주시의 문화행정 조직가지고는 장기적인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이것을 일관되게 시행하데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문화재단이 전주시의 집행기관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는데, 문화재단의 이사장, 이사들을 다 우리지역 문화전문가들로 채울 생각이다. 이분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재단이 문화정책의 자율성을 극대화시키고, 각 민간문화단체들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유태희 전 기획팀장의 우려에 대해서는 “문화재단이 지금의 시설관리공단 형태의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각 부문을 총망라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보자고 하면 우리지역 민간문화단체들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김영배 김제자활후견기관 관장은 “문화재단의 필요성에 대해서 모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마찰이 일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일관성 없이 정책을 수립해 왔던 전주시가 먼저 필요성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을 민간이 먼저 제안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며 “아직 문화재단이 만들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민간주도로 설립하는 안을 새로 기획하고, 민간 문화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을 것 같다”라고 제안했고, 이종민 전북대 영문화 교수도 “제안은 시에서 했지만,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앞으로 이렇게 합시다’라고 의견을 말해야지, 무조건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며 “앞으로는 민간 예술인들이 끌어가야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전주시가 민간 전문가들을 통한 효율적인 문화행정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기치로 내세운 문화재단. 하지만, 문화재단의 설립은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절차상의 문제와 함께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19회 ‘전주시 문화재단을 만드는 이유’는 갈길 먼 문화재단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앞으로 많은 민과 관의 진솔한 공론 과정이 필요함을 과제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