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교사일기]
사랑의 목욕탕
하송 /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삼례중앙초등학(2004-08-12 06:18:17)
“선생님, 여기예요!”
순간 당황하여 몸을 가리려고 했지만 맨손으로 온 몸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제자들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태연한 척하며 아이들이 부르는 쪽으로 갔다.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이 알몸인 채, 반갑게 손을 흔들며 목욕탕이 떠나가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하며 아이들이 있는 탕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일제히 쏟아지는 아이들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손으로 가슴을 가리게 되었다. 그러자 유난히 나를 따르는 3학년 현아가 들고 있던 수건을 내민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수건을 받아서 목에 둘렀다. 그러자 약간이라도 몸을 가렸다는 안도감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우리 아이들은 크게 이야기를 하며 들뜬 마음에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쉽지 않은데 먼 일본까지 수련회를 와서 이렇게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함께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그래도 공중도덕을 지켜야 하기에, 큰소리로 떠들지 말고 목욕탕 안을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주의사항을 일렀다. 그런데 다행히 관광지인데도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잠시 후, 우리 RCY(청소년적십자) 해외탐방에 동행해서 오신 선생님 두 분이 들어오셨다. 수건으로 몸을 가리면서 엉거주춤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을 향해서, 나와 우리 학생들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했다. 선생님들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가 있는 탕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네. 선생님이랑 애들이 같이 홀라당 발가벗고... 참 좋은 세상이야” 이 말을 듣고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 모두 크게 웃었다.
옛날에는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한편으로는 거리가 있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맛있는 것을 주셔도 괜찮다고 하면서 선뜻 받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교사가 된 지금은 우리 학생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면 엄마한테 하듯이 맛있는 것을 서로 자기 달라고 조르곤 한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 여행을 와서 선생님들과 제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전라로 목욕을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아이들과 따뜻한 탕 안에서 서로 물을 끼얹어주며 몸을 녹이고 있는데 갑자기 몇 명이 우루루 뒤쪽으로 몰려나갔다. 나는 걱정되어서 “애들아, 어디 가니? 다른데 가면 안돼”하고 불렀다. 그러자 애들이 돌아오더니 “선생님, 저쪽에 더 좋은 곳이 있어요. 빨리 와보세요”하며 나를 끌어당겼다. 나와 선생님들은 애들의 성화에 못 이겨 뒤쪽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는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곳에는 텔레비젼에서 몇 번 보았던 여러 종류의 노천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알몸인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서있는데, 애들이 와인탕으로 들어가면서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예쁜 빨간색의 와인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려니 너무 신기했다. “와! 이쁘다. 그런데 와인이 참 맛있게 생겼네”하며 장난으로 침을 꿀꺽 삼키자, 아이들이 일제히 놀래서 한마디씩 했다.
“선생님, 안돼요. 이 와인 마시면 배탈나서 큰일나요. 드시면 안돼요”
나는 가이드에게 들었던 말을 기억하면서 선생님을 말리는 어린 제자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더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아니야, 선생님 도저히 못 참겠어. 이렇게 맛있게 생긴 와인을 두고 어떻게 참냐. 조금만 먹을게.”
그러자 아이들이 모두 “안돼요, 선생님 제발 참으세요. 이것 드시면 선생님 돌아가셔요.”
배탈 가지고는 선생님을 말릴 수 없다고 판단을 했는지, 좀더 강한 협박과 함께 내 팔을 붙잡으면서 말리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말려서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처럼 “아이, 아깝다. 맛있게 보이는데...”하였더니,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그럼 우리나라 가서 와인을 사서 드세요.”
“그러고 싶은데 선생님이 돈이 없어서 어떡하지?”
“그럼, 제가 사드릴게요.”
어린 초등학생 제자에게서 와인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탕 속에서 입맛 다시는 것을 멈추었다. 잠시 후에 아이들이 또 우루루 몰려가더니 불렀다. 따라가 보니 페파민트 탕, 흙탕물 탕, 미인 탕 등의 여러 종류의 탕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탕마다 옮겨 다니며 마냥 신이 났다. 그러다가 우리 선생님 세 명은 뒤쪽 구석진 곳에 있는 신경통 탕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한약재를 망 속에 넣어서 담가 놓은 곳으로 한약 냄새가 향긋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선생님들끼리만 있어서 가슴을 펴고 여유 있게 몸을 담그며 한 숨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몰려왔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높여서 한 마디씩 했다.
“선생님, 우리들을 떼어놓고 이리 오시면 어떡해요. 한참 찾았잖아요.”
“여기는 신경통 탕이라서 어른들만 오는 곳이니까. 다른 탕에 가서 놀고 있을래? 조금 있다가 갈께.”
그러자 아이들은 어른 되기 전에 신경통을 미리 예방 해야 한다며 모두들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들만의 여유로운 시간은 포기한 채 좁은 신경통 탕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렇게 한겨울에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니 새롭고 참 신기했다.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살다보니 이런 세상도 다 있네, 여기가 천국이다, 천국.”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더 효도해야 한다는 당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우리 학생들은 신이 나서 놀기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예”하고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탕에서 나온 후에 나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차례차례 등을 밀어줬다. 그동안 탕을 옮겨 다니며 오랫동안 불린 탓인지 때가 잘 나왔다. 학교 안에서 볼 때보다 이렇게 아이들의 때를 밀어주니 더욱더 제자들이 이쁘고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애들도 선생님을 엄마처럼 생각해서인지 서로 밀어달라고 등을 내밀었다.
“때가 많이도 나오네. 솔직히 말해. 1년 동안 목욕 안했지?”
제자들을 놀리면서 등을 미는 이마에는 사랑이 담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