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문화저널]
“길이 아닌 것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상조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2004-08-12 06:15:27)
호남정맥을 종주 하고자 계획을 세운 후 비가 매일 내렸다. 오직 외로움을 아는 자 만이 길을 찾아 나선다. 비를 맞으며 하는 산행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을까 마는 혼자 시작하는 호남정맥 종주인지라 왠지 비를 맞기 싫어 시작을 미루고 있었다. 아직은 정붙일 끄나풀이라도 남아 외롭지 않은 것일까? 태풍과 장마의 연속으로 연일 계속 내리는 비는 국지성 폭우로도 변해 곳곳에서 많은 수재민을 만들고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비가 더위를 잊게 해 주는 이점도 있었지만 계획된 일을 못하는 통에 개운치 못한 기분에서 근 한 달간이나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떠나고 싶었다.
백두산에서 달려 내려온 백두대간이 영취산(靈鷲山 1075.6m)에서 호남과 충남의 산줄기를 형성하는 금남호남정맥과 갈라진다. 영취산은 행정구역상 전북 장수군 장수읍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선상에 위치해있다. 김정길의 ‘전북의 백대명산을 가다’ 영취산 편을 보면 , “영취산은 백두대간을 동서로 연결해줄 뿐만 아니라 서북의 금남호남정맥을 통하여 호남지방과 충남지방의 산줄기를 남북으로 연결해주는 요충지이다. 영취산의 물줄기도 3대강의 분수령이 되는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북쪽은 금강을 통하여 서해로 흘러들고, 남쪽은 섬진강, 동쪽은 낙동강을 통하여 남해로 흘러든다. 아울러 장수지역은 산줄기뿐만 아니라 물줄기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지역이다. 그래서 지명도 길장(長), 물수(水)를 써서 물이 길다는 뜻이다. 물이 길다는 뜻은 섬진강. 낙동강. 금강의 상류가 된다는 점이다. 영취산은 고대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사성(王舍成)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석가가 이곳에서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설법했다고 한다. 영취산을 준말로 영산 또는 취산이라 부르는데 그 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에 걸 맞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1000고지가 넘는 산이긴 하나 바로 옆에 위치한 장안산(1236.9m)의 기세에 눌려 산세가 약해, 그저 스쳐지나갈 정도의 산으로 치부하였는데 속으로 이렇게 중요한 요충지일 줄이야. 정말 제대로 알고 볼 일이다.
오랜만에 비 개이고, 바람에 실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먹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언 듯 보이던 하늘은, 또다시 밀려든 흰 구름과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영취산 정상에서 잽싸게 북동쪽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을 타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구름은 끝도 없이 밀려들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은 구름뿐만이 아니다. 빡빡하게 들어찬 상수리나무와 소나무의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부딪히며 내는 커다란 소리 또한 연이어 바람을 타고 정상을 빠져나간다. 어디로 그리도 급히 가시는가? 북으로 멀리 백운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덕유산 이 흐르고 있다. 동으로 가야산 연봉이 백두대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흐르며 남으로 깃대봉 뒤로 지리산의 그 커다란 덩어리가 지긋이 자리를 틀고 앉은 모습이 한껏 여유롭다.
정상에는 전북산사랑회가 설치한 영취산 정상 1075.6m 라고 쓴 스텐레스 표지판이 서있다. 그 뒤로 백두대간 표지기와 호남정맥 표지기(산길에 길을 안내하기 위해 매달거나 자신들이 진행하는 방향을 표시하는 작은 리본. 길이 갈라지는 곳이거나 길을 못 찾을 때 발견하면 요긴하게 쓰인다)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는 나무는 마치 당산나무를 연상케 한다. 그렇다, 그 표지기들이 어찌 뒤에 올 사람들에게 길만을 인도하는 표식 일소냐? 그것은 앞서 이 길을 걷던 사람들의 호방한 기상과 내 땅을 내 발로 확인하고자하는 국토 사랑의 염원을 뒷사람에게 연결하는 징표이며 이 땅에 만만세세 발복하길 원하는 산사람들의 길상부(吉祥符)인 것이다.
캐론을 쌓아놓은 사람들이 정상부위를 정리했는가? 정상은 자연석을 깔아 깨끗이 정리 되어있다. 백두대간을 따라 조금 내려선다. 길 좌우로 범부채를 닮았으나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나그네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하도 예뻐 손으로 조금 건드리니 꽃잎이 날개 짓을 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꽃잎이라 여긴 것이 나비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꽃잎을 꼭 닮은 나비들이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저마다 꽃에 매달려 있다 꽃과 거의 같은 숫자의 나비이다. 저 많은 나비들을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면 얼마나 예쁠까?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러워져 유혹을 참기로 했다. 난 그들의 세계에 침입한 침범자가 되기 싫었다. 잠시 지나쳐 갈 뿐이었다.
멀리 덕유산 연봉이 뚜렷이 조망되는 곳까지 걸었다. 장수덕유가 바라보였다. 장수덕유는 560m의 고도를 잠깐 동안에 올려쳐야 하는 아주 가파른 곳이다. 육십령에서 일주일분의 식량과 장비를 지고 출발하여 그곳을 오르던, 뜨거웠던 여름의 백두대간 길이 떠올랐다. 그때 필요했던 것은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달랠 한 모금의 물이 아니었다. 그 뜨거운 여름날에도 거기 그렇게, 말라 터진 속살을 가리지도 못하고 버티고 서 있어야만 하는, 우리가 딛고 올라서야 하는 그 오르막처럼 인내하는 것이었다.
어느 초겨울 저녁 남덕유를 넘어 삿갓봉을 향하다 뒤를 돌아봤을 때, 하얀 신설을 뒤집어쓰고 낙조를 이고 있기에 그늘 진 곳은 엷은 핑크 빛과 푸른 보랏빛으로 물들고 봉우리는 아직도 노란빛을 받고 있던 황홀했던 모습의 장수덕유산이었다. 그 봉우리는 그렇게 인내하고 있기에 황홀한 아름다움이 있어도 아직 이름이 없다. 그저 서봉이나 장수의 덕유라 불리고 있다.
발길을 돌려 다시 영취산 정상을 오른다. 인공으로 잘 다듬어 놓은 계단이, 자연석을 곱게 깔아 놓은 산길이 있어 슬펐다. 자연스러움을 잃게 된 대간을 생각하니 슬펐다. 정상에서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 뒤로 호남 정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산길 도처에 이런 거짓, 혹은 과보호가 산재하고 있다. 도대체 길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는가? 앞서 사람이 지나면 자연히 길이 되는 것이다. 길이 아니라 막지 말고 이정표를 정확하게 세우면 될 일이다. 뒷사람이 자기가 갈 길인지 판단하면 될 일이다.
호남정맥은 그곳에서 무룡고개(947m)까지 내리막으로 달린다. 무룡고개 쪽으로 조금 내려서니 노래방 기기의 반주에 맞춰 마이크로 부르는 노래 소리가 신나게 들려온다. 무룡고개 휴게소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다. 우리 민족은 역시나 신명이 많은 민족임이 자명하다. 그러나 무슨 한이 서렸기에 대낮인데도 이렇게 흥을 돋우어 산지사방을 시끄럽게 하는 것일까? 내리막길 좌우로 노루오줌, 까치수염, 둥글레가 보이고 고사리는 지천이다. 노루오줌에는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몇 마리씩 붙어 있다. 넝쿨식물들이 나무를 휘감아 오르며 경쟁이 심한 숲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숲도 약육강식의 법칙아래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숲이 탄생한 이후로부터의 질서이기도 하다. 바람이 거세다. 상수리나무와 소나무 밑에 자란 잡초들이 그 바람을 맞아 길게 눕는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인간의 머리카락과 같다. 팔과 다리에 감기는 바람이 좋다. 문득 숲이 살아있다는 깨달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다. 숲에 햇빛이 든다. 짙고 빽빽한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나뭇잎 보다 작게 떨어지는 햇살이 바람에 흔들려 반짝이며 서로 반사되어 환상의 시계(視界)를 만들어 낸다. 짙푸른 숲이 움직인다. 숲이 살아있다.
무룡고개를 향하여 내리닫던 정맥이 갑자기 끊긴다. 장계에서 번암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확장하면서 크게 절개한 이유로 정맥이 끊겨 억지로 궁색하게 절개지 옆으로 위험스럽지만 길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