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문화비평]
농촌이 아닌 서울대가 성폭력의 천국이다
변희재(2004-08-12 06:10:37)
얼마 전 서울대 학생들의 농활현장에서의 성폭력 사건 진위공방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서울대 학생회 측은 '아줌마', '아가씨' 등의 호칭을 문제 삼다가, 여론이 안 좋아지자 물리적인 성폭력 사건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홍성군 농민회 측은 서울대 학생회의 언론플레이를 참을 수 없다며 반박 성명문을 발표하면서, 농활대와 농민회 측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언론과 네티즌 여론은 서울대 농활대에 대해 비판적이다. 학생들이 농촌에 가서 농민들의 의식을 계몽시키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엘리트리즘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특히 농촌의 일상적인 문화 자체를 대학의 문화에 빗대어 '야만'으로 몰아붙이는 행위는 문화혁명 시대의 홍위병 수준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이번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농활은 그 의미가 퇴색된 상태였다. 대학 학생회의 모든 활동들이 으레 그렇듯이, 평소에 농촌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던 학생들이 농활 가기 1주일 전부터 몇몇 농촌관련 비평 글을 모아 커리집을 만든다. 이 커리집을 하루 정도 읽고 다들 농촌 전문가 행세를 하며 농활을 떠난다. 그렇게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농촌에 가봐야 본토에서 수십 년간 농민운동을 해왔던 농민회 사람들과 상식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한 천박한 수준이다. 농민운동도 벌써 하나의 전문분야의 운동으로 자리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활대는 90년대 중반 이후 '체험 삶의 현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것으로 전락했다. 농학연대를 말하지만 농민 입장에서는 학생과 연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며,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농활은 지나가는 대학생활 중의 하나의 추억일 뿐이다. 특히 서울대생들 중에 농활체험을 바탕으로 농촌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은 학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겠는가?
이렇게 농활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점에서 2000년대 들어 학생들은 새로운 깃발을 하나 들고 나왔다. 명분으로는 양성평등을 위한 반성폭력 농활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농촌문화 때려잡기였다. 이는 대학문화의 급격한 퇴조 현상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당연한 돌파구였다. 현재 서울대 학생회의 수준으로 볼 때 농민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 어렵다. 그냥 일방적으로 농촌문제에 대해서 한수 가르침만 받고 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열등적 위치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아이템이 바로 성폭력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농촌의 의식이 낙후되어있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1년에도 농촌주민이 여학생에게 "술 좀 같이 먹자"는 발언을 하여 철수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일 터져 나오고 있지만 "농활 도중에 거의 날마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농활을 다녀온 서울대 학생회 측의 증언을 감안해보면 대한민국 농촌은 날마다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성폭력의 천국이란 말이다. 그리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성폭력 천국에서 그간 농활활동을 해온 그들의 선배들은 성폭력 사건이 벌어져도 이를 쉬쉬하며 덮었던 성폭력 2차 가해자들이 된다. 농촌주민들이 2000년 들어서 갑자기 성폭력범들로 돌변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사건의 진위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밝혀질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이 부분만큼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학생회측이 주장하는 농민회 사무실 내에서의 물리적 성폭력 사건은 농촌의 성폭력 문화가 아니라 너무나 전형적인 서울대의 성폭력 문화이라는 점이다. 최소한 이러한 성폭력 문화를 농촌주민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그 잘난 지성의 서울대생들이 할 짓이 아니다.
98년도 이후 서울대 내에서는 성폭력 가해자 실명 공개 대자보를 붙이는 것을 합의하였다. 그래서 성폭력을 저지른 학생은 실명으로 반성자보를 쓰고 휴학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수많은 성폭력 사건의 유형 중에 서울대 내에서는 유독 남녀가 술 먹고 혼숙하다 벌어지는 사건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가해자인 남학생은 대부분 술에 취해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이번 농활대 사건에서도 가해 남성이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면서도 피해 여성이 피해를 당했다니까, 일단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 것과도 유사하다.
농활대는 농촌으로 떠나기 전 철저한 의식교육을 받는다. 야한 차림의 옷을 입지 못하게 하고, 마지막날 농민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를 제외하고는 저녁에 일체 술을 마실 수 없도록 규약을 정해놓는다. 아마도 이번 농활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규약을 어긴 사안에 대해서는 밤마다 인민재판식의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농활대 간부들이라면서 첫날부터 농촌주민들과 밤새 술을 퍼마셨다. 더구나 농민들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취중 남녀혼숙까지 벌였다. 서울대 내에서도 이런 환경에서는 늘 성폭력 사건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 저질 성폭력 문화를 농촌에까지 가져가 그들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그래놓고서 농촌을 성폭력의 천국이라 떠벌리고 다니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한번 반대로 생각해보자. 홍성군의 농민들이 서울대로 학활을 왔다고 치자. 서울대생들의 일상의 문화 하나하나를 농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보자. 서울대생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당당히 보여줄 자신이 있는가? 매일 같이 술이나 퍼먹고, 녹두거리에서 헤롱헤롱 거리며 남녀혼숙을 밥 먹듯이 해대고, 여기도 성폭력 저기도 성폭력 외치는 것이 서울대의 일상의 문화가 아니던가? 서울대생들이 농활에 가서 농촌의 야만적인 문화 어쩌고 하지만 농민들이 서울대의 문화를 보면 아마 기절할 것이다. 쓰레기들의 퇴폐 향락 문화라 생각하지나 않을까?
이미 대학문화는 사실 상 끝장이 났다. 사회 구조적으로 보면 운동 분야의 전문화 때문에 기껏해야 대학교 1, 2학년 때 얇은 커리집 몇 권 읽은 수준으로 문화생산을 지속해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거시적인 문제 말고도 서울대만을 따로 생각한다면, 서울대생 개개인의 머리 수준도 서울대 문화를 죽이는데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치열한 내적성찰도 없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술이나 퍼먹고 있으면 그게 무슨 대단한 지식인의 고뇌인 양 착각한다.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서는 말 빨이 안 먹히니 죽으나 사나 성폭력 하나만 붙잡고 늘어지는 나태함 등등이 추락하는 대학문화의 속도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여론이 안 좋으니 대한민국 농촌 전체를 성폭력의 천국으로 몰아붙이며 자기들 살 길을 찾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권력에 빌붙어 학벌을 팔며 출세의 길을 달리는 그들의 선배들의 모습을 찾는 건 우연일까? 그들의 선배들은 그렇게 성공했을 수 있어도 지금은 통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머리를 깨우치지 않으면 앞으로는 서울대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차별을 당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