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문화와사람]
이 남자가 사는 법
최정학(2004-08-12 06:09:08)
예원대 산학협력단장 이두엽
1956년 전주 출생. 고려대 졸업. KBS TV 프로듀서. (주)서울컴 대표이사. 조순 서울시장후보 홍보실장. 통합민주당 지구당 위원장. 문화전략연구소장. <(주)문화전략21>부사장. 현재 예원대 산학협력단장. 편저로는 『지역감정연구』, 역서로는 『이벤트의 마술』이 있음.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20여년 만에 이두엽 단장이 만들어 나간 이력이다. 남들은 평생 두세 번 찍기도 힘든 ‘명함’을 얼핏 10여 번은 족히 찍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명함’의 이력들이 말해주고 있는 다양함에 다시 한번 놀라기 십상이다.
“방송국 프로듀서로 방송 프로그램 만드는 일, 10년 정도 해본 선거 기획 홍보 일, 글쓰기 작업, 회사 경영,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문화 행사와 문화 프로그램 만드는 일 등 저는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들을 해봤어요. 한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다양한 경험들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사고의 밑바탕이 돼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늘 기발한 발상과 유쾌한 상상력을 달고 다닌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아이디어 뱅크’라고 부르기를 서슴치 않는다. 아직 미완으로 남아 세상 빛 볼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많지만, 이미 세상 빛을 본 것도 있다. 지난 7월 10일과 11일에 걸쳐 진행되었던 기획공연 ‘Voice of Asia’도 그중 하나다. 그가 6년 동안 ‘업보’처럼 머릿속에 담고 다니던 것을 기어코 무대위에 올린 것. 물론 남는 아쉬움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큰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비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아이디어가 편재할 수 있어요. 문제는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아니고 그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할 수 있다는 목표 의식을 갖고, 사람을 저축하고 시집을 읽는 등 자기감수성과 마음의 능력을 한 걸음 전진시키려는 노력이 더해져야겠죠. 문화 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에요. 꿈만 꾸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마케팅 책도 많이 읽고, 기획서도 잘 쓰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일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그의 이력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다. KBS PD와 회사 경영, 선거 기획 홍보, 지구당 위원장 등의 이력과 현재 그가 하고 있는 문화 기회 일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더욱이 최고의 평생직장으로 손색없는 KBS PD를 그만두고, 보다 냉엄한 현실 속에 몸을 맡겨야 했던 까닭은?
“방송국에 들어가면서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한 달간의 연수 기간도 이런저런 기획을 하는데 보냈으니까요. 하지만 방송 연수를 마치고 프로그램 제작 실무에 참여하면서 다큐멘터리에 관한 열정은 식어갔어요. ‘일 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방송국 생활에 회의도 느끼고 여러 가지로 고통스러웠어요. 그때가 바로 전두환 정권 때였거든요. 제가 맡은 프로그램들이 점점 정책 프로그램으로 변질되다보니 점차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게 됐죠.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계속 그런 프로그램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의식의 분열 같은 것이 다가왔어요. 일종의 존재론적 회의 같은 것이었죠. 또 한 가지는 방송 제작일이 제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어요. 평생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연출자의 자세인데, 그런 점이 내 천성과 기질에 맞지 않은 것 같았거든요. 저는 여러 한정된 자원을 동원해서 기획하고 판을 벌이는 일이 적성에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는 지금 ‘문화건달(?)’을 자처하며 문화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국영방송의 PD직을 박차고 나와 국회의원 비서관과 선거 기획 홍보 등의 일을 하다가, 결국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 일을 하면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 제가 했던 그 많은 일들도 결국은 사람들 마음속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들을 창조해내는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적에는 문학을 하고 싶어서 시집도 많이 보고, 세계문학전집도 많이 읽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가방에 교과서는 안 넣고, 도스토예프스키 책만 넣어 갖고 다니면서 수업시간에도 읽을 정도였죠. 그때 읽었던 책들이 새로운 일을 기획하거나 글을 쓸 때 어떠한 형태로든 필요한, 종합적인 사고나 안목을 세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사람들과 노는 것은 더더욱 좋아한다. 덕분에 그는 지금껏 일을 해오며 주위 사람들의 많은 도움도 받았다. 하지만, 노는 것도 무턱대고 노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즐겁게 놀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그는 노는 것에도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협궤열차가 덤프트럭과 측면 충돌을 했는데 트럭은 그대로 있고 열차가 넘어졌다는 신문 기사를 봤어요. 열차가 얼마나 작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꼭 한번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협궤열차를 주제로 한 예쁜 단편 영화도 기획해 봤구요. 그러다가 몇 년 후에는 협궤열차가 없어진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바로 ‘협궤열차를 기억하는 모임’을 만들었죠. 협궤열차 여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어요. 삶은 계란은 꼭 그물망에 넣어야 하고, 칠성사이다는 병으로 된 것이어야 하고, 소금은 약간 굵은 것이어야 하며, 그것을 싼 신문지에 소금기가 배어 나와야 했거든요. 어머니가 기차타고 갈 때 먹으라고 삶아주시던 옛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는데, 삶은 계란을 담을 그물망을 구하는 것이 무척 힘들더라구요. 지금도 그때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얘기를 많이 해요. 추억을 공유하니까 몇 년 간 못 만나도 항상 보고 싶은 얼굴이 되는 것같더라구요.”
방송 프로그램 만드는 일에서 선거기획, 문화 기획까지 다양한 일을 해오며 살았고, 실컷 놀기도 해봤으니 멋지게 살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만큼 아쉬움으로 남는 것도 많다.
“뭐든지 꽤 하긴 했는데, 확실하게 한 것이 없어요. 사업가로도, 정치가로도, 글쟁이로도 확실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으니까요. 지금까지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리지 못한 것은 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난 세월을 썩 잘 살아오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그가 전주로 내려 온지 10개월째. 지금은 예원대 산학협력단장을 하며 문화기획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은 전주의 전통문화중심도시화와 관련된 도시 인프라 구축에 관심이 많다. “전주는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을 알고, 새로이 창제하면서도 법을 지킬 줄 아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가능성이 가장 큰 도시라고 생각해요. 전통문화에 있어서는 정말 굉장한 콘텐츠를 가진 도시죠. 지금은 범시민사회가 창조적 생산력이 약동하는 ‘창조도시’를 만들기 위한 지역혁신 노력이 필요한 때에요. 이게 잘 된다면 전주는 정말 우리나라의 모범이 될 만한 도시가 될 것이고, 안된다면 그냥 이대로 쇠락해 버릴 수도 있는 기로에 서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산학협력단이 이런 지역혁신 운동에 불씨를 당기는 일종의 ‘인계철선’ 역할을 했으면 좋겠구요.”
그의 꿈은 전주가 가진 전통문화자원을 디지털과 접목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는 일. 그동안 그가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과 그것들로부터 우러나오는 아이디어들이 가장 든든한 자산이 되어줄 일들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 그런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