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문화와사람]
사진은 역사다
사진작가 유백영씨(2004-08-12 06:07:10)
법무사 유백영 사무실. 법무사란 ‘남의 부탁을 받아 법원이나 검찰청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해 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법률적 지식도 지식이려니와 빈틈없는 일 처리 능력이 요구되는 직업. 하얀 와이셔츠, 주황색 계열의 넥타이, 단정한 금장식의 넥타이핀, 마른 얼굴, 열기어린 눈……어느 모로 보나 유백영(50)씨는 법무사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외모였다. 그런 그가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아니 20년 넘게 사진을 찍어왔다고 한다. 오늘의 주제는 법이 아니라 사진이다.
“지금까지 제가 찍은 공연이 한 230개정도 됩니다. 한해에 50회 정도의 공연을 찍는데, 작년에 찍은 사진을 헤아려 보니까 5만6천 커트가 넘더라구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작년 한 해 동안 5만 6천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단다. 그것도 공연사진만 그렇게 찍었다는 얘기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전속 사진작가’로 알려진 그는 그곳에서 열린 공연을 단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다 찍었다. ‘그 많은 공연들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냐’는 인사치레는 그에게 건넬 필요가 없다. 그의 목적은 공연을 알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뭐 하러 공연사진을 찍느냐고? 곧바로 반문이 되돌아온다. “공연사진이면 어떠냐?”고. 나도 뒤지지 않고 맞서본다. 공연사진 그런 것 뻔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무슨 기술이 필요한가요?
“겉만 보고 찍으니까 찍을 것이 없다고 하죠. 무대 위의 공연자와 객석의 관중들이 교감하는 절정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저의 ‘포토타임’이죠. 관객들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르는 순간, 그 찰나가 바로 사진이 됩니다. 사진은 시간의 정지작업이거든요.”
사진이 시간의 정지작업이라는 말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것이 공연사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연의 질이 사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혼신을 다한 공연이라면 사진도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그에게서는 공연평론가의 자질도 엿보인다. 무대 위의 공연자가 자기 마음에 겨워서 춤을 추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보여주기 위해서 춤을 추는 것인지, 한눈에 알아보는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장면이 예뻐서도 아니고 공연자가 유명해서도 아니고, 공연자 스스로가 온 힘을 다하는 순간, 나는 미칩니다. 미쳐요.” 몸을 부르르 떠는 유백영씨. 그는 지금도 공연의 한 장면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미치겠는” 순간이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다. 1시간 넘게 쭈그리고 앉아서 오로지 그 찰나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토도도도독” 셔터를 누를 때의 전율과 쾌감은 ‘고진감래’라는 말로도 턱없이 모자란다.
“저는 누가 찍어달라고 하면 안 찍어줍니다. 다만 ‘제가 찍은 사진’을 드린다고 하죠.”
이 말 속에 그의 사진철학이 들어있다. 누가 찍어달라고 하면 ‘내 사진’은 절대로 찍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은 순간, 그때부터는 자기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찍은 사진을 드리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같지만 내용은 천양지차다. 그런데 20여 년 경력의 사진작가가 공연사진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다지 명쾌하게 설명되지가 않는다.
“사실요. (주위를 둘러보며 직원들 눈치를 한번 본 뒤) 저한테 이 사무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연사진이 저한테는 백 배 천 배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 10년만 더 제가 공연사진을 찍는다면 국내에서 저만큼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수십만 장이 넘는 자료가 저한테 있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겁니다. 각 예술장르별로 공연을 이렇게 집대성한 예가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역사적인 일입니다.”
개인적인 취미도 아니고 누구한테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역사적 사명감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유백영씨. 사명감이 깊어지면서 외적인 치장엔 무심해졌다. 예전에는 사무실에도 작품사진을 쫘악 걸어놓고 은근히 자랑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사무실엔 사진 한 점 걸려있지 않고 모든 자료는 집에 있다. 일시, 장소, 출연자, 장르별로 구분된 공연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우리 주위에 공연자료를 그만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정보와 자료의 독점!(예를 들어 소리문화의 전당 개관 10주년 행사를 한다고 치자. 그 소프트웨어를 다 뭘로 채울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모든 자료는 그에게로 통한다!) 그가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런 명예를 독점하기 위해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공명심 저는 없습니다. 사진은 적어도 1세대는 숙성돼야 비로소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30년 후에 저는 없습니다. 그때까지 살아있는 예술인도 드뭅니다. 살았다 해도 무대에 오르기는 힘들 겁니다. 그랬을 때 제 사진이 ‘역사’가 되는 것이죠!”
그는 스스로 ‘신기(神氣)’가 좀 있다고 한다. 81년 공모전에 입선하면서 사진작가가 된 그는, 그린 듯이 정교한 자연풍경사진으로 다른 사람들을 압도했다. 추상화 기법에 가까운 얼음사진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진엔 관심이 없다. 남들이 하면 그는 미련 없이 다른 걸 찾는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못한 공연사진에서 역사적 가치를 발견한 건 그만의 혜안이다.
팽팽하게 긴장하면서 절정의 순간을 잡아내는 일. 재능이고 뭐고를 떠나서 시간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그는 “시간만이 사진의 질을 좌우한다”고 일갈한다. “사진은 돈 안 됩니다. 찍는 만큼 손해나는 일이죠. 그래도 찍어야 합니다. 사진을 잘 찍느냐 못 찍느냐의 차이는 그 일에 얼마만큼 시간을 보냈느냐 안 보냈느냐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그 시간은 무작정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그는 공연자를 미리 만나보고 잘 찍은 사진을 ‘미끼’로 던져주며 꾄다. 공연하는 동안 무대를 들락날락할 텐데, 그럴 때 사진을 의식하고 마음을 닫아버리면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기 때문.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진이 나온다.
“나는 온 마음을 떨면서 찍었는데 카메라는 내 마음의 만 분의 일도 못 따라옵니다. 정말 팍팍하죠. 그래도 서두르지 않고 기회를 기다릴 겁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보다 못 찍은 사진이 훨씬 더 많아요. 그리고 나 사진 절대 팔아먹지 않습니다. 다 후손들한테 주고 갈 겁니다.”
그토록 투철한 사명감이라면……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법무사 일을 그만 두고 사진에만 매진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무슨 일이든 ‘빵’을 위해서 하면 자기색깔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빵에도 신경 쓰고 작품에도 신경 쓰다 보면 빵도 부실하고 작품에도 색깔이 없습니다. 빵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려야 오로지 자기색깔에 전념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그것이 빵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법무사 일은 그의 빵이요, 사진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다. 그의 이분법은 너무나 칼 같아서, 사진은 절대로 빵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당연히 돈 받고 사진을 팔아본 적 한 번도 없다.(그에게 돈을 주는 순간 사진은 받을 수 없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체력이다. 절정의 찰나를 건지기 위해 몇 시간이고 대기할 수 있는 강인한 지구력과 사시사철 아프지 않고 공연장으로 향할 수 있는 체력. ‘건강과 시간만이 사진의 질을 좌우한다’는 이 느긋한 사진작가를 보라. 이번 주 소리문화의 전당 공연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