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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 | [특집]
밤내 사람들
오용기 /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아나, 똥』이 있(2004-08-12 06:02:55)
오용기 / 시인 같은 산골 주제꼴에 읍내 사람들이 토끼하고 어쩌네 하며 빈정대는 ‘짚은 밤내’가 내 고향이다. 팔공산, 신무산, 괘등산에다 이름도 엄섬한 ‘천황봉’이 에운 가운데 암술처럼 숨어 있다. 밥솥 걸어놓은 모양 같대서 ‘밥내[食川]’랬다는 말씀을 조부님께 들었지만 그야말로 ‘민간 어원설’이 아닐까? 산골짝에 깊이 박힌 마을을 ‘밤내’라는데 형국이 똑 그렇다. 골 깊어 물이 많다 보니 근동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장마철에 ‘어디 사요?’ 하고 물으면 ‘밤내 상만요’하며 논두렁을 내려서지만 가물철에는‘나 밤내 사요’하며 호기 있게 올라선단다. 고갯길 걸어 넘던 어린 기억으로는 장수보다 남원에 가깝다. 외가와 진외가가 남원 산동이기 때문일까? 듣고 자란 고향말도 그렇다. 읍내에서는 ‘왜 그랴?’ 하는데 ‘왜 그레?’ 하니까. 할머니 친정은 가말[釜節]. 온천 값을 할 만한데 허명인지 세상이 미처 몰라주는 건지 아직 그대로인 채 마을 앞에는 고남산이 지리산 쪽으로 벽같이 막아선다. 묵을 것은 고남산이 들랑날랑허게 처묵는 뇜이 공부나아이나 세나꼽재기나 허고넌 책이녕 잭기장이녕 마룽으로 한나 달구새끼 징검기리게 널어놓고 정심 숟구락 놓자마자 씨신데끼 베락 총소리가 나게 내할겨 하루 점드락 비깜도 않고 꼬드래나 처백혔다가 뱌지 고플 임세 됭개 아그빠리에 밥은 또 처앵길라고 아지락기리고 들어와? 조선이 두려빠지게 떠외야도 신치렇고 꿩 새끼맹이 숨어 기도 맹도 없이 자빠져 놀다가 인자사 기어들어? 팍 보독시려 놓고 볿아 불텡개. 코쫌배기나 조깨 개젓허니 딲는단 말이제 소매에다 씩씩 문태 옷 개가죽칠헌 것 조깨 봐 조. 놀다 들어오면 할머니는 이렇게 구성진 욕을 퍼부었다. 욕 끝에 등짝이녕 대가리녕 비짜리 꽁탱이로 되시기녕 오곰쟁이녕 얄짤없이 쥐어 박혀 찔끔거리다 조부님 부르시는 소리에 밥상머리에 앉곤 했다. 할머니는 전주 최씨다. 거개 아시겠지만 전주 최씨, 특히 여성들은 생활력이 아주 강하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낸다. 젖은 신발도 품든 솥전에 세우든 새 신마냥 당실하게 말려 냈다. 풀쐐기 같은 성깔만큼이나 확실한 분이었다. 너그덜 아칙에 척척헌 것 발에 뀌게 헤서야 씨겄냐? 씩씩이 몸 거천헐 우산 하나이 없넌디 단 둬 걸음을 걷드래도 모른 발로 나스게 헤야제. 묵잘 것 입잘 것 셴찮은디 공부헌다고 눈 안 기시고 시만허드락 너그 앉았는 꼴 보먼 내 수잠얼 자드래도 신이나 고실고실허게 헤서 신겨야제. 맴이사 기룬 것 없이 헤주고 잪다마넌 알량헌 산 삐대기 논 멫 다랭이 그것 반툴라닝개 이 쎄가 다 빠진다. 내 외가는 한재[大上里]. 육이오 때 잿더미가 된 걸 두고 사람들은 ‘한재’라는 이름값으로 친다지만 사방을 넘나드는 큰 고개로 붙은 이름 같다. 어머니는 칠순인 지금껏 내주장이 별로 없다. 열네 살에 어머니 잃은 막내 설움을 올케 밑에서 마룻바닥 광내며 지운 덕일까. 그만큼 무던하니까 근동에 소문 짜한 할머니 뜻 다 받았다는 말을 요즘도 듣는다. 늑대 피헤 호랭이 굴에 든 거이제. 너그 아홉 중에 하나 껭끼고 아심찮이 야달 키웠대야 에미 칠 것이 코 한 번 훔쳐주들 못헸다. 캉캄헌 새복보톰 보리쌀 갈아 쌂아 열세 겐숙 밥헤댐선 불은 손 꾸정물통에서 빼도 안 헤서 너그 할매 꽘소리에 우아래 이문이로 당산너메로 굽을 놓다 보먼 내 신상도 참 곤허드라. 질쌈에 논밭 일에 서답 빨아 푸새 헤야제 밤으로 사랑꾼덜 되리 심부럼 헤야제 워클워클헌 아덜은 뒷전이고 몸뗑이는 쬐깐헌 사램이 아무리 종당걸음을 놓아도 내 숨은 맨날 택에 닿더니. 짤룬 다리 뻗혀놓고 자리 반투아 젖 물림선 삼 삼다 보먼 젖 낮다고 아는 보cos디 싸남이 짝짝 흐르는 할마씨, 데지먼 썩을 놈의 몸뗑이 보지랑보지랑 놀리제 무신 잼이 그리 많냐고 헤김선 삼 톱던 톱으로 앞장갱이럴 안 쥐어박냐. 삼만 삼으먼 되간디? 바래고 잣고 올리고 네리고 매서 동지 섣달 진진 밤 밥상 거둔 호롱불에 삼배 한 필 짜놓고 그 불 들고 새복 부섴에 들어스먼 오감험선도 삭신은 워찌 그리 짜긋기리등고. 너그 각단지게 발뒷꿈치 닳아진 숭터 보먼 시방도 갱경이 뒤씨는디 그 세월 다 졔끼고도 갈시락 일이 무장 늘어지니 무신 팔자가 이럴꼬. 펀적구먼 들이닥치던 하나씨 손님 치름선 안 떨춘 가용주 간 본다고 늦게 배운 도독으로 어쩌다 봉개 묵었다 허먼 고냑꾸가 된다마넌 내 생각에도 폭폭허다. 아직도 일고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듣는 일은 짠한 고역이다. 술이나 한 잔 하셔야 길어지는 통화지만 굽정한 어머니의 세월은 허리만큼이나 고단하다. 시름 줄기를 망태 엮듯 성글게 겯는 어머니에게 같은 골목에 사는 집안 아주머니는 멀리 사는 자식보다 살가울 밖에. 동상, 자네넌 구린 입도 떼지 말소. 내사 땅만 보고 삼선 입성 하나 새끼덜 비우 뽀땃이 맞춰 주들 못허고 천상 짐성 내방치데끼 까놓기만 헸는디 제사다 생일이다 멩일마동 갈부침선도 에미라고 찾아 들먼 속새로 가덜 볼 낯이 없당개. 못 갈쳤어도 저그야 앞앺이 밥그럭덜 챙기고 인자 느리 봄서 살겄제맹. 간잔조롬헌 눈 봉개 한 잔 헸넌디, 베멘허까마넌 옴니암니 따짐선 뒤지기맹이로 헛세월 뒤적게리먼 멋 헌당가? 가세, 자레 가덜이 냉겨 논 쇠주 둬 모금 있을텡개. 작것 우리사 이리 살제 머. 테레비 안 밨등가? 가지랑시런 서울 사람덜도 제우 삼시 세 때 끄니 에우고 안 살아? 뚤방 네려스다 자빠지겄네 이. 그렁개 내 폴 꽉 잡으란 말이시, 동상. 바꿔 듣기도 어려운 그들의 말로 고향 사람들은 누에고치처럼 일상을 깁는다. 정신없이 사투리를 모아 이제 제법 정리한 셈이지만 아직도 고향에는 무슨 보석이 반짝일지 모른다. 주말이다. 어머니 아버지를 뵈러 가야겠다. 막걸리 댓 병에 연필 하나 챙겨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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