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 | [특집]
콩팔칠팔에 대하여
신경숙 /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1984년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하(2004-08-12 06:01:58)
어쩌다 정읍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께 전화조차 드리지 못하는 날이 이어질 때면 마치 혼이라도 내려는 듯이 어머니께서 먼저 전화를 걸어오신다. “어쩌서 내 딸이 전화도 없다냐!” 하신다. 나는 어머니가 나하고 얘기를 나누실 때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두고, 혹은 수화기 저편에 있는 나를 두고 “내 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참 좋다. 내가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 전데요” 하면 어머니는 금세 “오, 내-딸!” 그러신다. “내” 와 “딸” 사이에 경쾌하게 흐르는 그 리듬을 전해 들으면 갑자기 내 존재가 이런저런 책임과 억압으로부터 싹 벗어나 그저 한 여인의 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한테 자주 듣는 말 중의 또 하나가 “콩팔칠팔”이라는 말이다. 내가 어떻게 지내느냐 물으면 ‘뭐..기냥 콩팔칠팔 지낸다-" 하신다. 어려서부터 자주 들어오던 표현이라 나는 익숙해서 그러려니 하는데 언젠가 서울내기 올케가 내게 대체 “콩팔칠팔”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콩팔칠팔?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주려고 막 입을 떼다가 할말이 없어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올케를 쳐다보며 웃어버렸다. “기냥기냥 콩팔칠팔 살먼 되지 뭔 욕심을 내고 그냐?” 라든지 “콩팔칠팔 하다보면 어느새 세월 다가고 없다” 라든지 혹은 어머니가 “콩팔칠팔 지낸다”라고 표현하실 때마다 그런가보다 했지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어떻게 지내신다는 것이냐고 물어볼 염을 못냈다. 사전적 의미로 정확히 뭐라고 설명은 안되지만 그냥 무슨 말인지 알겠는 그런 말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언젠가 한번 그때도 어떻게 지내시느냐 물으니 콩팔칠팔 지내신다기에 근데 어머니! 콩팔칠팔이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대뜸 “기냥 살랑살랑 산다는 뜻이여” 하신다. 살랑살랑 산다? 나는 쿡 하고 웃고 말았다.
맞춤법대로 문장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들을 때는 그런 말이 어딨어 할말들이 사실 우리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것이 말의 진정한 재미이기도 하며 말의 생명이기도 하다. 언어를 가지고 인간세계를 표현해내는 소설가로 살다보면 불쑥불쑥 자신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며 듣고 자란 말들의 방문을 받는 때가 자주 있다. 작가에게는 태어난 고장의 말들이 내면의 한 풍경을 이루고 있는 게 당연하다.
어렸을 때 텃밭에는 부추가 한쪽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부추를 “솔” 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이름이 참 좋았다. 어머니가 “밭에 가서 솔 좀 비어(베어)오니라” 하면 신이 나서 부엌칼과 바구니를 들고 텃밭에 가곤 했다. 나는 “솔”이 소나무 잎새를 닮았서 이름이 “솔”인가보다라고 혼자 생각했다. 솔을 베려고 왼손으로 솔을 한줌 쥘 때마다 느껴졌던 감촉도 아직 그래도 간직하고 있다. 나중에 서울에 와서 시장에서 “솔 좀 주세요” 했더니 도시 사람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어떤 사람은 부엌을 청소하는 솔을 찾는 줄 알고 그런 건 그릇가게로 가보라고 일러주는 이도 있었고 솔이 뭐냐고 묻는 사람도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부추를 가르켰을 때야 이게 왜 솔이냐고 부추라고 정정해주기도 했다. 나중에야 내가 알고 있던 “솔”이 “부추”라고 불리기도 하고 “정구지”라고 불리기도 한다는걸 알았지만 내게는 아직도 “솔”이다. 왜냐면 나는 “솔”이라고 불러야 “솔”의 냄새며 맛이며 감촉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솔”을 볼 때면 느꼈던 소나무 잎새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도 연장되는 것이다.
요즘은 나도 어렸을 때 들었던 말들을 수없이 잊어버렸다. 자연 초기 소설에 등장하던 말들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내가 태생지를 떠나 살아온 햇수가 벌써 이십년을 훌쩍 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모양이다. 가끔 가족모임이 있을 때 누군가 어렸을 때 들었던 말을 쓰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아, 그런 말이 있었지, 할 정도로 이제는 우리에게서 아주 멀어져버린 말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허전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가끔 정읍에 갔을 때 이제는 늙으셔서 한없이 말이 느려진 어머니와 긴 대화를 나누게 될 때면 어머니가 하는 말에 귀를 바싹 기울이게 된다. 어머니는 항상 그런 말을 즐겨 쓰며 사셨을 텐데 나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말들이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올 때가 자주 있어서다. 어머니는 항상 그런 말들을 쓰시며 살아오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내 딸!”이라고 부르는 나는 나의 어머니가 쓰시는 말들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신기해할 때가 있다니.... 쓸쓸한 일이다. 내가 그만큼 내 태생지의 말들과 멀어진 채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거고 우리가 그만큼 오래 헤어져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