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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 | [특집]
전라북도 방언의 아름다움
이태영 / 전주 출생.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2004-08-12 05:55:40)
고향의 말 우리는 ‘점드락’(종일) 자기가 사는 지역의 말(방언)을 사용하면서 생활한다. ‘매다, 묶다’를 ‘짬맨다/쨈맨다/찜맨다/쫌맨다/쯤맨다’고 하고, ‘꼬집다’를 ‘찝어깐다’고 한다. ‘넘어지다’를 ‘자빠지다’, ‘눕다’를 ‘둔너다’, ‘일어나다’를 ‘인나다’라고 쓰며, ‘겨우’를 ‘포도시’, ‘하루 종일’을 ‘점드락’, ‘항상’을 ‘팜나’ 등으로 쓰고 있다. 봄나물인 ‘냉이’를 ‘나숭개’라고 하고, ‘씀바귀’를 ‘싸랑부리’라고 한다.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말(발화)도 지역과 화자의 계층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표현한다. 예를 들면, ‘이것이 머시다냐?, 이것이 머시여?, 이것이 머시당가?, 이것이 머시대야?, 이것이 머시대?’ 등으로 나타난다. 방언은 동질감을 느끼면서 가족과 동네 사람과 연대감을 갖게 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가장 바르게 보여주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문화유산이다. 우리가 방언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라북도 말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이 방언에도 충청도의 말과 전남의 말이 약간씩 포함되어 있고, 또 전라북도의 여러 지역마다 그 말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전북 사람들은 대체로 ‘먹어봉게, 웃응게, 옹게’와 같이 표준어의 연결어미인 ‘-니까’를 ‘-응게’로 발음하고, ‘웃어쌈서, 감서, 봄서’와 같이 표준어의 ‘-으면서’를 ‘-음서’로 발음한다. 또한 ‘가는디, 사는디, 말허는디’와 같이 표준어의 ‘-는데’를 ‘-는디’로 발음하고, ‘웃으먼, 보먼, 가먼’과 같이 ‘-으면’을 ‘-으먼’으로 발음하는 특징을 보인다. 종결어미에서도 특징이 나타나는데, ‘가간디?, 알간디?’와 ‘가도만, 오노만, 간다도만’에서처럼 ‘-간디/가디/가니’와 ‘-도만, -노만’ 등이 많이 쓰인다. 특히 부사에서 아주 독특한 방언을 보여주는데, ‘포도시(겨우), 뜽금없이(갑자기), 솔찬히(상당히), 죄다(모두), 맥없이/매럽시(그냥), 육장(계속), 대번에(바로), 내동(내내), 겁나게(아주,매우), 엘라(오히려), 머냐(먼저), 점드락(종일), 팜나(밤낮,매일)’ 등을 들 수 있다. 방언의 정서적 의미 ‘샘(泉)’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하여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샘 : 물이 땅에서 솟아 나오는 곳. 또는 그 물. ‘샘’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그야말로 ‘샘’이 가지는 물리적 현상을 의미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전라 방언에서 쓰는 ‘샘’의 방언형인 ‘시암’을 쓴다면 이 ‘시암’의 의미는 쓰는 사람에 따라 상당히 다른 정서적 의미를 갖게 된다. ‘시암’에 얽힌 추억에 따라서 방언형인 ‘시암’의 문화적 의미, 정서적 의미는 무한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표준어보다는 방언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어휘는 대체로 경험적으로 습득한 어휘를 쓰고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어휘를 주로 사용하게 된다. ‘혼불’을 쓴 작가 최명희는 ‘옴시레기’라는 부사를 쓰면서 도저히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워서 ‘옴시레기’라고 썼다고 고백한다. “‘옴시레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네, 사전에 있나요? 전라도 사투리인데요, ‘옴시레기’ 얼마나 이뻐요. 이게 ‘모조리’라는 거하고는 좀 다르잖아요? ‘모조리’는 뭔가 ‘깡그리’ 이런 뜻이 있지만, ‘옴시레기’, ‘아유, 옴시레기 왔구나!’ ‘모두 다, 가득’ 이런 뜻인데 얼마나 정감이 있어요? ‘옴시래기’ 그럼 귀엽잖아요. 우리 늘 쓰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사전에는 없어요. 네 그래서 좀 우리의 그 넋이 담긴, 우리의 생활이 담긴, 우리의 그리움이나 꿈이나 혹은 그 삶에 대한 해석이 담긴, 이러한 낱말들이 좀 우리 국어사전에 ‘옴시레기’ 들어와 가지고 좀 이렇게 한 소쿠리 가득 옥돌같이 담긴다면 시대의 강물은 거세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이 국어사전의 징검다리가 우리들이, 또 우리 후손들이, 또 대대로 어디론가 자기 걸음을 가는 그런 걸음이 물에 빠지지 않고 떠내려가지 않고 그렇게 제자리로 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소중한 어떤 그 건널목이 되지 않을까.” 최명희의 말을 빌리긴 했지만, 우리나라 각 지역어가 갖는 정서적 의미의 중요성을 깊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전남과 전북의 방언 차이 전북 방언과 전남 방언을 합하여 전라도 방언이라고 한다. 외지에 사는 분들은 전라도 말이라고 하면 전남 말을 흉내낸다.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 방언과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남 방언은 아주 독특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역의 말은 교통과 문화에 따라서 분화를 한다. 그래서 모음과 자음이 변화를 일으키고 조사나 어미는 물론, 어휘도 이상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전남은 ‘파리’를 ‘포리’로, ‘팥’을 ‘퐅’으로 발음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아래아(·)가 전남지역에서는 ‘오’로 변하면서 독특한 발음이 된 것이다. “팥떡을 먹어양게 후딱 가서 사오셔.”(전북), “퐅떡을 먹어양께 후딱 가서 사오시기라오.”(전남) ‘먹응게’를 ‘먹응께’, ‘온당게(온다니까)’를 ‘온당께’로 발음한다. 종결어미에 ‘-라오/라우’를 많이 써서 ‘어서 외기라오’라고 표현한다. “고실고실헌 찰밥을 묵고 자퍼 죽겄네.”라는 말에서 ‘먹고 싶다’를 ‘먹고 잡다’로 표현한다. “아이 시방 그 일을 어찌야 쓰까잉?” ‘해야 하다’를 ‘해야 쓰다’로 표현하는 방언이 바로 전남 방언이다. 전남에서는 ‘먹다’를 ‘묵다’로 쓰고, ‘버리다’를 ‘부리다’로 쓴다. 그래서 ‘묵어부러, 묵어불고, 묵어뿔고, 묵어삘고’와 같은 예가 나온다. 전남과 전북을 구별 짓게 하는 특징 중의 하나가 ‘해버리고’를 ‘해불고’로 발음하는 데 있다. 방언을 잘 보여주는 어휘에는 부사가 있는데 전남 방언에는 ‘무단시(괜히), 싸게(빨리), 징허게’ 등의 부사가 특징적이다. “무단시 나보로 욕을 히쌍께 신경질이 나부러.” 일인칭 대명사는 ‘내가’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데 전남에서는 ‘나가 그르케 가키드냐?’처럼 ‘나가’를 쓴다. ‘올으는 비땀시 베리뿌렸다.’ ‘-때문에’를 ‘땀시/딴시/땀새’라고 쓴다. 전라북도에서는 대체로 ‘때미’로 쓴다. 대체로 전남방언은 부분적으로 전북방언보다는 거센 느낌을 준다. 오히려 전북 방언은 부여와 같은 충남 방언과 가깝다. 전북 방언은 ‘먹응게, 봄서, 허는디’와 같이 부드럽고, 된소리가 별로 없는 게 특징이다. 또한 말을 할 때, 노래처럼 ‘겁~나게, 점~드락, 포도~시, 굥~장히, 워~너니’ 등과 같이 늘여 빼는 가락을 넣는 특징이 있다. 전북 방언은 표준어가 가지고 있는 10개의 모음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고, 또 거센 발음이 없어서 국민들에게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판소리, 한글 고전소설과 전북 방언 판소리가 전북에서 발달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전북 방언의 특징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북 방언은 말씨가 부드럽고 입을 적게 벌리고 발음하는 특징이 있다. 전라도 방언이 10개(또는 9개)의 모음을 가지고 있고, 또 거센 발음이 없어서 대중들에게 무리가 없이 받아들여지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부드러움으로 연결되는데 이 부드러움은 해학과도 관련되고 여유로움과도 관련되어서 판소리에서 그러한 느낌이 조화롭게 발현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모음 ‘에, 아’는 음악적으로 매우 강한 음인데, 전북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노인들의 경우 ‘에’를 ‘으’나 ‘이’로, ‘아’를 ‘어’로 발음하고 있다. ‘이’ 모음은 전설 고모음으로 가장 앞에서 발음되고, ‘으’ 모음은 중설고모음이다. ‘어’ 모음은 중설 중고모음으로 중설 저모음인 ‘아’ 모음보다 훨씬 발음하기가 쉽다. 같은 음성 환경에서 ‘으’가 가장 짧게 발음되고, ‘애, 아’가 가장 길게 발음된다. 고모음인 ‘이, 우, 으’는 다른 모음들보다 짧게 발음된다. 이처럼 전북 방언에서는 조사에 쓰이는 모음은 대체로 짧게 발음되는 모음이 사용되면서 발음을 짧게 하는 경향이 높다. 구개모음화를 보여주는 ‘시물(스물), 끄실려서(그을려서), 마실(마을), 가실(가을)’과, ‘ㅣ모음 역행동화(움라우트)’를 보여주는 ‘애비(아비), 괴기(고기), 댕기다(당기다), 쇡이(속이), 깩기다(깍기다)’ 등의 변화는 전라북도 발음에서 아주 일반적인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발음을 쉽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꽃이-꼬시, 밭이-바시, 짚이-지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성 마찰음이나 무성 파열음인 ‘ㅊ, ㅌ, ㅍ, ㅋ’ 등이 평음인 ‘ㅅ, ㄱ, ㅂ’으로 중화되면서 마찰이나 파열이 되지 않고 부드럽게 발음된다. ‘못해요-모대요, 밥하고-바바고, 숯하고-수다고’의 예처럼 ‘ㅎ’음이 자음과 결합될 때 유기음으로 실현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비교적 부드러운 발음이 된다. ‘지침(기침), 졑에(곁에), 성님(형님), 심(힘)’ 등과 같이 구개음화되는 현상도 남부방언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것 또한 전라도 방언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 역시 무성 마찰음이나 파열음이 마찰음 ‘ㅅ’으로 표기되는 것이다. ‘겁~나게, 점~드락, 포도~시, 굥~장히, 워~너니’ 등과 같은 부사에서 보면 어휘에 늘여 빼는 장음이 발달한 것도 판소리와 관련된다. ‘머덜라고리여~, 이거시 머~시다요?’ 등의 문장이 보여주는 장단과 리듬은 판소리의 가락을 형성하는 데 깊이 관련되어 있다. 완판본 한글 고전소설에서 전라 방언을 많이 보여주는 자료는 ‘열여춘향슈졀가, 심청전’이 으뜸이다. 이 소설에서는 많은 전북 방언의 특징을 보여주는 어휘가 수없이 쓰이고 있다. ‘짚은(깊은), 져을(겨울), 화짐(홧김), 셔(혀), 슝악(흉악), 샹단(향단)’ 등이 보여주는 구개음화 현상, ‘실픔(슬픔), 구실(구슬), 시물(스물), 쇠시랑(쇠스랑), 질겁다(즐겁다), 목심(목숨)’ 등이 보여주는 전설모음화 현상, ‘귀경(구경), 맥혀(막혀), 이대지(이다지), 깩끼다(깎이다), 지팽이(지팡이)’ 등이 보여주는 이모음 역행동화 현상, ‘심운(심은), 나뿐(나쁜), 참우로(참으로), 짚운(깊은), 거무(거미), 춤(침)’ 등의 원순모음화 현상 등은 전북 방언의 대표적인 음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모국어인 전북 방언 “누천년 동안 우리의 삶이 녹아서 우러난 모국어는 우리 삶의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 주는 씨앗이다.” 위에 인용한 최명희의 말에서 작가 최명희는 한국어를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로 보기보다는 한국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씨앗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 최명희는 ‘우리의 삶이 녹아서 우러난 모국어’를 재생시키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모국어라는 언어 속에는 반만년 이어져 온 인간과 자연의 모습, 전통, 문화, 예술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최명희는 모국어가 의사 전달의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전통과 자연과 인간을 합일시키는 소중한 매체임을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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