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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 | [특집]
살아있는 언어, 방언
서정섭 / 전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거쳤다. 현재는 서남(2004-08-12 05:54:27)
전북방언이 머시여 “저런 별들은 떨어지먼 어디로 가까잉?” “은하수로 빠지겄지맹.” “은하수는 참말로 있는 거잉가.” “있응게 겐우 직녀도 있겄지맹. 칠월 칠석날 저녁에는 까막까치 까마구 대가리가 다 벗어진다고 안히여? 겐우 직녀 만나는디 다리 놔 주니라고. 그렁게 여드렛날 아침에 보먼 그것들이 모다 대가리가 흐옇다데. 밤새도록 애쓰고는 기운이 없어서 다리 밑에 떨어져 죽기도 허고.” “아이고, 그러고 봉게 칠석날이 내일 모레 아니여?” “까치 까마구들 큰일났네. 어쩌까. 대가리 씨릴 일 또 생게서.” “아니 그 겐우 직녀는 언제 쩍에 맺은 인옌이간디 아직도 애기를 못 낳대? 아들 하나 좀 낳제. 효자로. 그러먼 오직이나 좋은 독으로 골라서 오작교를 놔 디릴 거인디. 무지개맹이로. 아, 인간 세상으 아들도 효자는 한다리, 홀에미다리, 인다리를 놓는디, 하늘에 선관 선녀 자손이야 오죽허겄어? 더 말해서 입만 아푸지.” “대체나 그렇네잉.” “남원 광한루에 오작교가 바로 그 겐우 직녀 만나는 다리라든디.” “그러먼 요천수 강물이 은하수겄네.” “하아.” <혼불 4권 148-9쪽> 이 대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은하수에 대해 또 견우와 직녀, 오작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면서 만난 지 오래되었을 견우와 직녀는 왜 아들이 없는지 궁금해 한다. 만약 이들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효자다리 오작교를 놔주었을 텐데라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이야기의 장면, 상황을 연상해보자. 아마 양력으로 8월쯤 되는 한여름 밤에, 어느 농촌 마을 어귀의 모정에 두 아낙이 앉아 있을 것이다. 이들은 풀벌레 소리와 함께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낮에 두 아낙은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논과 밭에서 일을 했을 것이고, 이제는 저녁밥을 먹은 후 짬을 내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주고받는 말은 구수한 전라도 방언이다. 길게 느려빼는 전라도 특유의 울림이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 하다. 특히 ‘어디로 가까잉, 빠지겄지맹, 흐옇다데, 디릴 거인디, 어쩌까, 있응게, 겐우, 까마구 대가리 씨릴 일 또 생게서’ 이런 말들은 사전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전라도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으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다. 여러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 지역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방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방언은 무엇이며, 방언과 표준어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방언이 생기게 되었으며 방언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방언은 촌스러운 말인가? 흔히 방언 하면 농촌을 연상한다. 방언은 농촌의 농부들이 사용하는 말이라는 뜻일 게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7-80%가 농민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농민들이 사용하는 말이 방언이고 농민들은 교육 정도가 낮으므로, 방언은 무식쟁이들의 말이고, 품위가 떨어지며 세련되지 않은 촌스러운 말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방언은 표준어가 아닌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방언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며, 잘못된 생각이다. 방언은 농촌이나 도시 어디이든 간에 특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말하며, 나름대로 일정한 언어 체계를 갖추고 있다. 흔히 표준어나 서울말이 방언보다 우월하고 품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서울말도 하나의 방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방언보다 우월하지 않다. 각각의 방언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각기 소중한 언어이며 각 방언 간에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러면 방언이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먼저 표준어를 생각해보자. 표준어는 자음과 모음이 체계화되어 있고, 맞춤법과 표준어 발음법이 규정되어 있다. 표준어는 서울 지역어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서울말을 모두 표준어로 삼고 있지는 않다. 서울말 중에서도 이러이러한 말만 표준어로 하자고 약속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표준어는 서울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말을 표준어로 정한 것이 아니고 선별하여 인위적으로 표준어를 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어는 자연스러운 언어가 아닌 인위적으로 가공한 언어이다. 그러므로 표준어는 정교하고, 규범성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 비해서 방언은 누가 이런 말을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 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이 방언이다. 즉 방언은 자연스러운, 살아 있는 언어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말하자고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규범화되어 있고, 고정되어 있지 않는 구어이다. 방언은 맞춤법과 방언발음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은 정교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방언이 체계적이 않다라는 뜻은 아니다. 방언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체계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전라도 방언은 “저런 별들은 떨어지먼 어디로 가까잉?”에서처럼 문장 끝에 ‘-잉’자를 붙인다. 그러면 “저런잉 별들은잉 떨어지먼잉 어디로잉 가까잉?”처럼 모든 단어의 끝에 ‘잉’을 붙이면 그것은 전라도 방언이 아니다. ‘잉’자는 문장의 끝에 붙어야 전라도 방언이 된다. 화자들이 미처 알아차리지는 못했어도 방언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서울 중심의 중앙집중화가 가속화된 결과, 우리의 언어도 표준어 중심의 교육이 주를 이뤄왔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으로 지방분권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언어에 있어서도 방언의 중요성과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전주뿐만 아니라 강릉에서도 매년 방언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지 않는가. 방언과 표준어는 대등한 관계이다. 왜 지역에 따라 말이 서로 다른가? 우리나라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단일 언어국가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몇 개의 방언권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방언권은 행정구획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나눠보면 전라방언, 경상방언, 제주방언, 중부방언(경기도, 충청도), 평안방언, 함경방언 등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를 크게는 6개의 방언권으로 나눌 수 있지만 세분하면 더 많은 방언권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전라방언권이라고 하면 그 속에는 전북방언권과 전남방언권이 포함되어 있다. 전북방언과 전남방언이 큰 의미에서는 전라방언으로 통합될 수 있지만 둘 사이에는 또 다른 차이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북방언도 동일하다. 전주, 완주, 김제 익산 등이 하나의 권역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고창, 부안 등은 전남 장성, 영광 등과 가까워서 전남방언의 요소가 꽤 들어 있다. 군산은 충남 서천, 장항과 인접하여 충남방언의 요소를 갖고 있다. 진안, 무주는 충남 금산, 충북 영동, 일부는 경북 김천과 접촉하고 있다. 남원, 순창, 장수는 전남, 경남과 접촉하고 있다. 이처럼 전북이라고 하는 하나의 방언권을 이루고 있지만 그 속에는 더 많은 작은 방언권이 내재되어 있다. 전북방언권 중 전북방언을 대표할 수 있는 전주, 완주 김제, 익산지역의 방언을 전북의 핵 방언이라고 한다. 반면에 그 외의 지역어는 인접의 다른 방언권과 교류가 빈번한 접촉방언이라고 한다. 특히 남원은 3개의 접촉방언권으로 더 세분할 수 있다. 운봉, 인월, 아영, 산내는 경남 함양방언과의 접촉방언권이고, 주생, 금지, 대강, 송동은 전남방언과의 접촉방언권이며, 사매, 덕과, 보절은 임실방언과의 접촉방언권으로 전북의 핵방언권에 속한다. 무주는 충남 금산, 충북 영동, 경북 김천, 경남 거창과의 접촉방언권이다. 우리나라를 크게 6개의 방언권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 지역별로 방언이 왜 존재할까? 방언은 왜 생겼을까? 교통이 편리한 오늘날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이해가 잘 안될지 모른다. 그러나 몇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자.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기 전을 생각해보자. 전주나 남원에서 서울을 한번 간다고 하면 완행 기차를 타고 12시간 가까이 달려가야 서울을 갈 수 있었다. 그만큼 지역간의 이동이 어려웠다. 지역 간 이동의 제약이 심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예가 있다. 지금 6-70세 이상 되시는 분들의 친정이나 처가가 어디인지 조사해보자. 아마 같은 마을인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바로 이웃 마을이나 같은 면내인 경우, 그렇지 않으면 이웃 면 정도인 경우가 많다. 멀다고 해보아야 4-50 Km(100리 정도)를 벗어난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그 당시 분들의 생활권 넓이가 넓다고 해도 4-50 Km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접촉하는 사람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서로 공유하는 문화나 언어도 그 사람들끼리만 향유하게 되었다. 일정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과의 접촉이 불가능하였고 그런 결과로 언어도 서로 접촉할 수 없게 되었다. 즉 언어간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 지역 고유의 말이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역간의 언어가 고립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방언이 생기게 된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것이 방언 발생의 한 요인이다. 또 방언 발생 요인은 지리적 특성, 한계이다. 지리적으로는 가까워도 높은 산이나 강이 가로막고 있으면 지역간 왕래가 불가능하게 된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자연 현상인 산과 강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지리적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터널을 뚫거나 다리를 놓아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언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언론 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점이다. 라디오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절에는 자기 마을 사람들의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지역 소식이나 말을 듣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과학 기술의 미발달, 낮은 교육 정도 등이 방언을 오래도록 유지시켰다. 그런데 오늘날은 모든 면에서 여건이 좋아져 방언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현대화되면서 지리적 방언이 차츰 약화되는 대신에 사회적 방언이 생겨나고 있다. 방언이 왜 중요한가? 방언은 현대국어 중에서 특히 구어체의 언어이다. 구어는 지금 입으로 말하고 있는 언어이다. 그런데 방언이 재미있는 것은 현재 입으로 말하고 있는 구어가 언어의 역사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언이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말은 보수적이란 뜻이다. 예를 들면 전라도 방언에서 ‘무’를 ‘무시, 무수’라고 말하지 않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라고 하지 않고 ‘무우’라고 했었다. 그런데 전북 방언에서는 ‘무시, 무수’처럼 ‘ㅅ'이 왜 들어가 있을까. ‘무’를 고어에서는 ‘무?’라고 했는데 전북방언에서는 ‘?’이 ‘ㅅ’으로 변하여 ‘무시, 무수’라고 하였다. 거기에 비해 표준어에서는 ‘ㅇ’으로 변하여 ‘무우’라고 하였던 것이 ‘무’가 되었다. ‘추워’를 ‘추버’라고 하는 것도 동일하다. 고어에서는 ‘추?’이었는데 ‘?’이 전북방언에서는 ‘ㅂ’으로 변했으나 표준어에서는 ‘ㅇ’로 변한 것이다. 이처럼 방언은 고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방언의 또 다른 특성은 개신성이다. 방언은 구어이고 규범성이 없으니까 어느 하나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언제든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할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면 ‘겁나게 재미있다’라고 말한다. 표준어라면 ‘겁나게’는 ‘무섭다’와 호응을 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방언에서는 ‘겁나게’가 ‘재미있다’와 호응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빈번해져서 ‘겁나게’는 ‘매우’라는 정도부사로 변하였다. 고대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다양한 어형이 아직도 방언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잘 살펴보면 문헌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언어변천의 과정을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방언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특성을 갖고 있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자산이다. 오늘날은 교통, 통신, 언론매체의 발달로 소중한 방언이 차츰 소멸되고 있다. 표준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지역문화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방언을 온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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