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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 | [문화저널]
중소멸 ‘멸치 볶음’의 맛
최승범(2004-08-12 05:48:38)
여름철 반찬이나 안주로 즐겨 온 멸치 이야기나 해볼까. 식성에 따라서는 멸치의 호?불호도 달리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멸치에 입맛이 당겼던 것 같다. ‘멸치수제비’의 장국 맛에도 개운함을 느꼈고, ‘멸치조림’이나 ‘멸치볶음’의 맛도 몬닥하고 연삽했다. 호박장도 ‘멸치호박장’이어야 제 맛이 돋았다. 여름철 ‘멸치젓’이면 보리밥 물말이도 술술 잘 넘길 수 있었다. ‘오사리멸치구이’를 처음으로 맛본 것은 1950년대의 초반, 가람(李秉岐)선생댁에서였다. 저때 선생은 전주시 교동 58번지 양사재(養士齋)에 우거하셨다. 겨울철의 조촐한 술상의 한 접시에 굵직굵직한 건멸치들이 소복이 놓여 있었다. 술상 옆 놋화로의 석쇠에 적당히 구워내면 바로 안주가 된다. 그 맛이 여간이 아니다. 청주 맛과도 썩 어울리는 맛이었다. 포근포근한 맛인가 하면 바삭바삭한 맛이 돋고, 바삭바삭한 맛인가 하면 진기(津氣)가 돋는다. - ‘이건 오사리멸치일세.’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늦가을 철에 잡아 낸 멸치를 말한다.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는 것으로 이 철의 멸치는 가장 살이 많이 올라 있고 맛이 좋다는 것이다. 뒷날에 알게 되었다. 따라서 ‘오사리멸치’란 따로 있는 종류의 멸치가 아니요, 늦가을 철에 잡힌 좋은 멸치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오사리를 얹어, ‘오사리잡것’?‘오사리잡놈’?‘오사리잡패’하면 욕이 된다. 얼마 전, 삼천포수협 건어중매인으로 있는 친구 박종준(朴鍾俊)형에게 멸치의 종류를 물어본 바 있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품명을 알려 준다. 8종이나 되었다. - ①세세멸 ②자멸치 ③소소멸 ④소멸치 ⑤중소멸 ⑥중멸치 ⑦중대멸 ⑧대멸치. 등이 곧 그것이다. ‘멸’은 멸치의 준말이다. 멸치의 옛말은 ‘멸티’, 사투리에 따라서는 ‘며루치?며르치?멜?메레치?메루치?메르치’ 등으로 불리 운다. 치아가 좋지 않고 보면, 멸치조림?멸치볶음도 잘 먹을 수가 없다. 딱딱하게 안기기 때문이다. 최근 멸치볶음을 아주 연삽하게 즐길 수 있었다. 「변산바지락죽집」(전주시 우아동1가 1909-3, 전화 242-2554)에서였다. 바지락죽의 전문점인데, 상차림의 찬들이 정갈하고 깔끔하다. 그 중 한 가지에 멸치볶음이 눈길을 끌었다. 보기에도 물엿 같은 것을 사용한 찐득거린 기운이 없다. 한 마리를 입안에 넣어보자, 연하게 씹힌다. 이에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설탕기가 있긴 하나, 달다는 느낌은 없다. 바삭바삭 씹히는데 혀를 돌리자 이내 서글서글 녹는다. 바지락죽을 들며 간간 한 마리씩을 입안에 넣으니, 깨소금 맛이다. 도우미와 주인에게 멸치의 품종을 묻자, 다같이 ‘모른다’는 것이다. 박종준 친구의 해설을 미루어 생각하면, - ‘중소멸’ 이 아닌가 싶다. 5cm 이짝저짝 크기의 멸치이기 때문이다. 식사 후에 내어주는 이 집의 ‘바지락차’도 향긋하고 개운한 맛이다. 반지락 조가비에 감초를 넣어 달인 듯한 차 맛이다. 차게 간수하여 내놓은 차 맛이어서 시원하기도 하였다. 멸치볶음 생각이면 다시 저 집을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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