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7 | [문화저널]
이종민의 음악편지/아련한 사랑의 추억
이종민(2004-08-09 11:28:26)
아련한 사랑의 추억 - 프랑크의 [마음의 양식]
덥습니다. 몸보다 맘이 더 후덥지근합니다. 겉과 속이 더불어 끈적거립니다. 발 여러 개 달린 벌레가 스멀스멀 맘속 땀샘까지 제멋대로 휘젓고 있나봅니다. 뒤 잘못 본 것처럼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저 ‘더러운 전쟁’의 족쇄를 걷어낼 수 있는 것인지? 무고한 죽음에 대한 분노의 촛불을 얼마나 더 켜 올려야 저 오만의 독선을 깰 수 있는 것인지?
이를 떨쳐보겠다고 세자르 프랑크(Cezar Frank)의 [마음의 양식](Panis Angelicus)을 아침부터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줄리안 로이드 웨버(Julian Lloyd Webber)와 로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것입니다.
때론 추억이 위안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곡을 좋아하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얘기입니다. 성북동 어느 부잣집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었답니다. 담장이 유난히 높던 저택, 대문을 들어서고도 한참 계단을 올라 넓은 잔디밭을 지나야 현관문이 나타났습니다. 조심스럽게 그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그는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하얀 블라우스에 연한 연두 빛 주름치마, 보일 듯 말 듯한 홍조, 호수처럼 깊고 맑은 눈. 천사가 소녀라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멍한 충격을 수습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제자를 하나 만나게 되나 싶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르쳐야 할 대상은 이 소녀의 언니였습니다. 그 언니는 콩쥐에 팥쥐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부잣집 맏딸의 공허한 허세와 자만심, 거기에 고삼수험생의 신경질까지 얹혀 있었습니다.
동생의 맑은 미소를 만나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하숙비가 아무리 급해도 백번 때려치웠을 것입니다. 지는 팔 괴고 앉아 선생에게 이것저것 해보라고 숫제 ‘명령’을 해대는 방자함을 선선히 받아들이기에 그의 젊음은 아직 짱짱했습니다. 그러나 견디어 냈습니다. 차나 과일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그 소녀의 해맑은 미소 덕분에 그는 일곱 달 하숙비를 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팥쥐 제자가 아무런 사전 연락도 주지 않은 채 자리를 비웠습니다. 한 시간 반 이상이나 걸려 달려왔는데. 애써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돌아서려는데 그 소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물어볼 것이 있다며 시간을 좀 내줄 수 없느냐고.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처음 따라 들어간 그녀의 방에서는 그윽한 라일락 향이 잡힐 듯 말듯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곡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합창과 어우러진 첼로 소리가 소녀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구나! 그런 생각만 했었습니다.
질문은, 미국 시인 포우(Edgar Allan Poe)의 [애너벨 리](Annabel Lee)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것이 아니어 득의만면(得意滿面), 설명을 해주었지만 열심히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침이 말랐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죽은 애너벨 리처럼 얼어붙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맑은 눈동자를 굴리며 스스로 분위기를 잡아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포우 시의 낭송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시 매력이 그 울림에 있다는데 감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시험? 호소하는 듯한 눈망울 때문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감격적인 찬사를 들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영국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Lord Byron)의 어떤 시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의 이 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영광이요 사랑의 징표라는 것! 그가 비음이 조금 섞인 자기 목소리에 약간의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일 것입니다.
그러나 황홀한 순간도 잠시. 그 뒤로는 얄미운 시누이 같은 제자와의 긴 옥신각신만이 이어졌습니다. 설렘과 실망이 반복되던 과외를 아쉽게 마감한 일년 반쯤 후, 난데없이 그를 찾는 전화가 학과사무실에 걸려왔습니다. 혹시? 아니, 그 소녀의 언니였습니다. 그 소녀가 아파 입원해있는데 그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라일락꽃이라도 사가야 했겠지만 제철도 아니었고, 꼭 그래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심각했지만 막상 당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수척해진 모습에서 얼핏 느낄 수 있는 우수, 그것마저 없었다면 전혀 아픈 사람이라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특별하게 그를 부른 이유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을 뿐입니다. 그렇게 설레는 병문안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포우를 얘기했습니다. ‘애너벨 리’나 ‘레노어’ 등 그의 시에 등장하는 여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즐기는 듯했습니다. 그 요절한 여인들과!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 타락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죽어야 할 운명의 아름다움! ‘초월적 아름다움’(Supernal Beauty)! 영문학도도 감을 잡지 못하는 얘기를 그 앳된 소녀가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병문안을 통해 이 곡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양식] 혹은 [생명의 양식]이라 소개되고 있지만 원래 뜻은 [천사의 양식]이라는 것 -- 천사같은 그녀가 이 곡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프랑크가 쉰 살 되던 해인 1872년에 작곡한 것으로 본래 목소리, 첼로, 오르간, 하프, 그리고 더블베이스의 합주를 위한 곡이었으나, 그 후 다양한 악기의 조합을 위해 편곡, 널리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슴 떨리는 만남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병세가 회복되자 가족들이 드러내놓고 그의 방문을 꺼려했습니다. 아직도 대학을 못 간 제자의 투정은 특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움이 그러한 것처럼 진정한 사랑도 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지속될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또 반년. 이번에는 그 소녀에게서 엽서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대학 진학에 또 실패한 언니를 따라 외국으로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깨알처럼 쓰여 진 편지에 자기는 프랑스 ‘테제공동체’라는 곳에 정착할 예정이라는 사연도 덧붙여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약속된 시간에 대기 위해서는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겨울날. 덕분에 교통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북아현동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선 아예 차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 [마음의 양식]으로도 초조함을 달랠 수는 없었습니다. 운전기사가 신경질을 내며 라디오를 끄려는 것을 겨우 말릴 즈음, 참으로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신촌 쪽에서 소가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소가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멍하니 속아 넘어온 것입니다.
장마철입니다. 장마전선 저기압보다 더 우울한 소식들이 우리들 마음을 멍들게 합니다. 이 곡과 황당한 이 얘기가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뽀송뽀송한 여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