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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 | [특집]
시대의 거울, 만화
최을영 / 1975년 생.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만화 평론집 『만화에 살다』(2004-08-09 11:25:56)
강도영의 ‘순정만화’에 대한 단상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됐던 강도영의 ‘순정만화’가 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적이 있다. 이 만화는 놀라운 접속률을 보였고 사람들은 이 만화를 보기 위해 새로운 만화가 업데이트되는 매주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30대 회사원과 10대 여고생의 순수하고 수줍은 사랑이야기를 그린 이 만화는 사실 이야기 구성이나 소재면에서 보면 그렇게 참신하지 않다. 이야기 진행을 위해 억지로 짜 맞춘 듯한 우연이 반복되고 사랑이란 명제에 대한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러나 이 만화는 일상의 잔잔한 감동과 사랑에 대한 설레임을 그려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다음주에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됐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만화를 보며 각박한 세상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을 통해 인기를 얻었던 덕분에 ‘순정만화’는 책을 통해 오프라인상으로 나오게 된다. 온라인에서 성공한 만화가 오프라인으로 나온 경우는 없지 않으나 강도영의 ‘순정만화’는, 한때 우후죽순처럼 벌어졌던 현상-온라인 만화가 책으로 출간되어 나오는-이 주춤거릴 때 나온 만화라는 점에서 온라인 만화의 가능성이 여전함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2000년대: 온라인 만화의 약진 온라인 만화는 1990년대 중후반의 디지털 혁명이 있었기에 탄생이 가능해진 또 하나의 새로운 대중문화다. 여기에는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접근 용이성-만화는 여러 대중매체 중 어린이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전달력이 가장 쉬운 매체다-도 한몫했다. e-Book이 처참한 실패를 기록한 것과는 달리 온라인 만화는, 만화 자체의 매력 때문에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각 포털사이트에는 인터넷 환경에 맞는 만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출판 만화와는 또 다른 만화적 틀을 형성했다. 인터넷 만화에서는 출판 만화의 전형적인 형식인 칸이 사라지고 있으며 거창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단발성 꽁트 중심의 만화가 대부분이다. 인터넷 환경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와 소재 자체도 그렇다. 거창한 주제는 사라지고 재미를 극대화시켜 추구한다. 물론 수많은 인터넷 만화가 모두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게 중에는 사회성 짙은 작품도 있지만 단발성이라는 점에서 출판 만화와는 또 다른 문화를 창출해냈다. 이는 인터넷 환경에 맞게 만화라는 매체가 새로운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매체는 빠른 속도와 즉각성, 쌍방향성, 그리고 무궁무진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적극적으로 대변한다는 특색이 있다. 강도영은 이런 인터넷 환경을 몸으로 체득해 만화를 그려내고 있다. 강도영은 인터넷을 통해 만화가로 데뷔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02년 6월 홈페이지 강풀닷컴을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데뷔한 강도영은 당시 유행하던 엽기 코드에 맞는 만화를 그려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실수에 관한 에피소드를 그는 만화로 그려냈고 차츰 독자로부터 사연을 받는, 이른바 인터넷의 강점인 쌍방향성으로 더욱 풍성한 에피소드로 만화를 그렸다. 또 그는 앞서 언급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적극 대변한다는 인터넷의 특색을 잘 살려 사회적인 이슈나 문화적인 현상을 만화로 그려내 독자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았다. 이른바 강도영은 인터넷의 새로운 환경에 알맞게 적응하며 90년대 이후 만화계의 화두로 떠오른 일상성에 기댄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거기에는 대중문화는 대중매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는 사실과 시대적 감성과 문화적 기반을 대중문화가 표현해낸다는 아주 당연한 명제가 자리잡고 있다. 강도영의 예처럼 만화는 대중매체, 사회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만화는 그 자체로 사회 현실을 대변하거나 반영한다. 시대적 감성 또는 문화가 그대로 묻어나는 게 대중문화고 그중 가장 접근성이 용이하고 사회문화적 현실을 적극 대변하는 게 만화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1980년대: 거대 담론이 횡행하던 시절 2000년대 출간된 수많은 만화의 특색 중 하나가 일상성에 기댄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풀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면 1980년대의 특색은 뭔가 짓눌려 있는 사회분위기를 대변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때는 일명 만화방이라 불렸던 만화대본소 체제가 만화 유통의 주요 출구였으므로 대본소 체제에 맞는 중?장편 만화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야기 주제 사랑에 대한 비극, 남성들간의 대결구도 등 다소 무거운 주제가 주류였다. 이때 인기를 누렸던 만화가를 대표적인 캐릭터와 함께 일별해보면 오혜성의 이현세, 이강토의 허영만, 독고탁의 이상무, 최강타의 박봉성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일본에서 극화체 만화(일본에서 데즈카 오사무류의 명랑만화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만화, 일종의 성인취향이다)를 자양분으로 하고 있다. 1980년대는 모두 알다시피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다시금 군부독재에 의한 철권통치가 시작됐던 때였다. 억압과 공포로 시작된 80년대 초입, 전두환 정권은 이른바 3S(Sports, Sex, Screen) 정책으로 그들의 숨통을 틔어주는 동시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한다. 이로 인해 컬러TV 방송과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새롭게 등장한 이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삶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특히 프로야구 출범은 많은 이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였고 만화에서도 야구 만화가 주류를 이룰 만큼 스포츠 만화가 탄생했다. 야구만화에서는 남성들간의 대결구도가 필수적이다. 그 대결은 거의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 사이에 이뤄진다. 이현세를 일약 스타 만화가로 만들었던 ‘공포의 외인구단’에는 성공한 인생 마동탁과 실패한 인생 오혜성이 엄지를 놓고 대결을 펼치는 게 주된 이야기 구성이다. 아마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성인 남성들은 이들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실패한 인생에 대한 묘한 동질감, 그리고 남성의 비극적인 사랑과 야망, 실패한 인생이 재기하는 과정에 희열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전체 분위기는 매우 음울하고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다. 비장미가 철철 흘러넘친다. 이는 8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다른 만화가의 만화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마찬가지다. 허영만의 이강토나 박봉성의 최강타, 이상무의 독고탁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 주인공들은 언제나 무언가에 짓눌려 있는 듯 음울한 모습이었고 언제나 야망을 품은 채 뭔가에 끊임없이 몰두했다. 1980년대: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이야기하다 당시 주류 밖에 있었던 만화가들은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리얼리즘이라는 그릇에 채워 넣었다. 오세영과 이희재는 ‘만화광장’이란 만화잡지를 통해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만평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던 박재동도 80년대에 대중 앞에 등장했다. 순정만화계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오니아의 푸른 별’의 황미나, ‘북해의 별’의 김혜린,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신일숙 등 80년대 초반 데뷔했던 순정만화가들은 만화 속에 민중에 의한 혁명을 그려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김혜린은 데뷔작 ‘북해의 별’에서 잘못된 권력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를 그려냈고 황미나는 수많은 검열의 폐해를 겪으며 암울한 시대상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신일숙은 당시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통해 여성성에 기댄, 남녀관계의 기존 패러다임에 반발하는 만화를 꾸준히 내놓기도 했다. 이중 민중의 혁명을 그린 김혜린의 ‘북해의 별’은 허영만의 ‘오! 한강’과 함께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만화의 특색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장편이라는 데 있다. 이는 90년대 단편 위주의 작품이 양산되는 것과 비교해 80년대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장편에 맞는 이야기는 보통 무거운 주제를 가진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혁명, 성공 등 거대담론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이 역시 80년대 만화의 특성이다. 만화 한편이 10권이 넘는 책으로 출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런 구도는 만화대본소 체제에 맞는 제작방식이었다. 1990년대: 일상성과 스타일의 다양화 1990년대는 한국 대중문화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가 생겨난 시대다. 대중음악에서는 서태지란 이단아가 나타났으며 인디레이블이 등장해 펑크와 얼터너티브, 힙합 등 다양한 음악 장르가 소화되기 시작했다. 영화계도 1990년대 중반을 넘어 발전에 발전을 더했으며 수많은 신예 영화감독들이 등장해 영화계를 풍성하게 했다. 만화계에도 1990년대 초반 만화 잡지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지면을 소화해내기 위해 많은 작가들이 데뷔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90년대를 딱히 한마디 말로 규정짓는 일은 어렵고 또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80년대와 비교하자면 거대담론이 무너지고 일상적인 담론이 주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문화에 대해 논하는 게 대학생들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현실보다는 자기 삶에 더욱 큰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핵분열이 일어나던 시기가 90년대였다. 만화 역시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중?장편보다는 단편 위주의 만화가 주류를 이뤄갔다. 독자들은 장편 만화의 긴 호흡을 견디지 못하는 듯 옴니버스 형식의 중편만화나 에피소드 위주로 진행되는 단편 만화를 선호하게 됐다. 특히 만화의 최대 소비자인 10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이런 경향이 더욱 도드라졌으며 독자 취향에 민감한 만화잡지도 이런 만화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만화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대중이 느끼는 소소한 일상에 치중하기 시작했고 10대 취향의 만화가 주류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각기 다른 소비자를 대상으로 주목받았다.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요시하는 90년대의 분위기가 만화 안으로 녹아들었던 것이다. 또 80년대의 무거운 거대담론의 더께를 훌훌 털어버리듯 90년대에 명랑만화가 다시 등장해 독자들에게 유머를 선사하기도 했다. 만화, 시대를 그려내는 거울 한국 만화의 역사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랜 역사만큼의 대접을 받지는 못해왔다. 만화는 언제나 저급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으며 가정의 달 5월만 되면 만화화형식이 치러지고 만화가들은 뜬금없는 항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만화대본소는 남아있고 만화책은 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영화나 문학 등과 함께 만화는 시대를 그려내는 거울이고 때로는 시대를 앞서나가기도 하며 때로는 촌철살인의 풍자도 보여주지만 만화는 한번도 제대로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 성글게나마 알아보았듯 만화는 그 자체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고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대중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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