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8 | [서평]
『아빠와 삼겹살을』(태동어린이, 김종필, 2001)
동화와 아동의 발견
김자연 아동문학가(2003-04-07 11:09:55)
동화를 창작하거나 또는 비평에 임해본 사람이라면, 언제나 그것이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란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주요 독자인 '아동'을 의식해야하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또는 아동문학)는 '어른과 아이의 분리', 이른바 '아동의 발견'에서 비롯되었다. 아동의 발견이란 '어린이가 처한 현실'을 명확하게 깨닫고, 그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발견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동문학은 성인문학과 달리 처음부터 '아동'이라는 규범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물이 아니며,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정서가 있고 고민이 있고, 즐거워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어른과 다르다는 차이. 이러한 차이를 자각하지 않을 때, "어린이를 위해" 씌어지는 동화(아동문학)가 오히려 어른의 생각 속에 아이를 가두고 억압하는 또 하나의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아홉 편의 단편이 실린 『아빠와 삽겹살을』은 이웃에 대한 아픔과 고민이 작품 전체에 넘치고 있다. 이 작품집의 특징은 어린이라고 해서 현실을 여과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린이는 분명 어른과 공존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또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어른들이 연출해내는 생활이 어린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우리는 그것을 「경운기」의 순영이, 「물싸움」의 상수, 「서름이의 노래」의 서름이, 「쓰레기로 만든 구급차」의 덕칠이, 「아빠와 삽겹살을」의 민이의 삶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김종필은 리얼리스트 작가들이 즐겨 구사했듯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착하고 성실하다. 작가는 이렇게 힘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훗날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작품 말미에도 이야기했다. 어려운 이웃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러한 목소리는 작품 곳곳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 중 「아빠와 삽겹살을」은 작가의 무리한 개입 없이 민이의 시선으로 아이에게 수용된 현실을 비교적 잘 담아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작품화하는 데 있어 현실을 얼마만큼 진실하게 포착하는가는 동화에서도 중요한 요건이 된다. 작품의 내용과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작가의 인식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작가의 세계관이나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작품에서의 현실상황은 건강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민이의 정서에 알맞게 조절되어 있다. 부모와의 화해 또한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되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김종필은 이 작품집에서 생생한 현실 보여주기를 추구한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서름이의 노래」와 「햇살연어의 결혼식」에서 보다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정상적이지 못한 자식을 버리려고 하는 아버지, 암수 연어의 배를 가르고 알을 쏟아 섞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부조리한 어른들의 현실을 세세하게 목격할 수 있다. 화자는 마치 '이것이 곧 현실이다. 현실은 아름다운 무지개만이 아니다. 그러니 이 현실을 그대로 들여다봐라'라고 외치는 것 같다. 동화에서도 인간이 지닌 추악한 면을 보여주어 어린이로 하여금 선악의 구별을 뚜렷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라는 대상에 눌려 그저 추상화된 세계만을 보여주던 사람들에 비해 작가의 이러한 용기와 신념은 높이 평가 할만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희망적이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들에 대한 마음이 별로 싹트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이야기가 너무도 사실적이다. 임철규는 『우리시대의 리얼리즘』에서 '리얼리즘 문학에서는 현실의 충실한 묘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현실의 본질을 구체화하는 이미지에다 현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의 작가의 상상적인 전망을 가해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실제의 이야기'를 문학이라는 허구보다는 신문기사나 텔레비전을 통해 훨씬 많이 접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생생함으로 독자에게 충격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대부분 어처구니없이 당하기만 하는 약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사회정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시골과 도시, 노동자와 자본가, 분배의 불평등, 부정부패 등은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낸 분류법이다. 어린이들에게는 개개의 현상 뒤에 숨어있는 구조적인 모순을 꿰뚫어볼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비록 어린이를 위해서 씌어졌지만 그들의 소망을 조금도 들어주지 않는 작품, 그들의 천성과 발달 특성이 왜곡된 작품, 어른들의 사회 개조나 개혁의 발판으로 삼은 작품들이 오늘의 어린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어린이는 지금 이 순간 손에 잡히지 않지만 가볼 만하고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당장 눈앞의 물질,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세계에만 갇혀 살아간다거나, 그것에 만족하여 한발도 앞으로 내디디려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 김종필의 동화가 다음에는 이러한 측면에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또 아이들의 꿈속에 깊이 들어가 더 큰 희망을 제시해주길 바라고 싶다.
김자연/1985년 아동문학평론에 동화가 당선돼 등단했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 2000년 제 10회 방정환문학상을 받았으며, 초등학교 국정교과서 4-1학기에 동화 '항아리의 노래'가 수록되었다. 2년 전부터 매월 <아동문예>에 동화평을 담당해오고 있으며, 전주대학교 언어문학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