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7 | [특집]
만화 테마기획
문화저널(2004-08-09 11:19:01)
“너 아직도 만화 보냐?”
성난 어머니의 두툼한 손가락이 아이의 귀를 새빨갛도록 비틀어 쥐고 만화방을 나선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엔 ‘아, 벌써 돈은 냈는데, 이제 조금만 더 보면 되는데….’ “엄마! 제발 이것만 마저 읽고 가면 안돼? 벌써 돈 냈단 말이야! 아깝잖아.” 그러나 만화방 가득히 차있는 다른 아이들은 옆에서 일어나는 이 사단에도 꿈쩍 않고, 각자의 손에 쥐어진 만화책들에 눈길을 박고 열심히 삼매경을 해매고 있다. 젓가락에 걸쳐진 라면가락 부은 것도 잊은 채.
누군들 이런 기억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아! 만화방.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내 청춘의 심볼. 그리고 걱정 많은 우리 어머니가 아들과 벌였던 치열한 사투의 현장!’
만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껏 모아놓은 만화를 부모님이 버려버린 일도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기껏 모아놓은 만화를 잃은 허탈함 앞에 던져진 부모님의 한마디는 “넌 이제 만화나 읽고 있을 나이가 아냐. 공부를 해야지.”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만화에 대한 오해 몇 가지.
‘만화는 어릴 때나 보는 것이다’는 것과 ‘만화는 한 번 보고 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만화 매니아들은 이런 사회적 편견 속에서 고통 아닌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나이 살이나 먹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당당하게 만화를 본다는 것은 웬만큼 두꺼운 얼굴이 아니고서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쪽팔리는(?) 일이고, 양가 부모님 다 만나는 상견례 자리에서 “제 취미는 만화 읽기 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또 어떤가. 만화는 쉽게 읽힌다는 속성 때문에 당한 수모도 만만치 않다. “어이구, 산 지 20분도 안돼서 다 봤네. 그럴 걸 왜 돈을 주고 사? 차라리 소설책을 사지.”
이렇게 만화는 그것이 갖고 있는 속성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편견들 속에서 그 안에 어떤 내용과 깊이를 갖고 있건 간에 상관없이, 또 그것이 삶에 얼마나 큰 감동과 멋진 자극을 전해주건 간에 상관없이 ‘철없는 애들이나 읽는 장르’로 매도되어 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년 시절 추억의 요람인 만화방은 낡은 공간이 되었고, 대본소 만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영상시대가 도래하면서 만화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강풀’과 김풍 등으로 대변되는 인터넷 만화가들은 네티즌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를 통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고, 여러 영상분야에서 만화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콘텐츠로 차용해 쓰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얼마 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와 전 세계 영화인들을 경악케 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빌’이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바야흐로 만화적 상상력이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번 달 테마기획은 ‘만화의 추억’이다.
‘제 9의 예술’이지만 그에 걸 맞는 대접(?)은커녕, 아직도 수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만화. 이번 달 테마기획 ‘만화의 추억’은 수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빛나는 우리 유년의 기억 한 켠을 장식하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들로 꾸며본다. 어릴 적 만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 살았던 ‘만화키드’들의 진솔한 추억담과 함께 『만화의 살다』의 저자인 최을영씨가 들려주는 시대에 따른 만화의 변천사, 그리고 만화 『보통고릴라』로 유명한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주완섭 교수의 ‘만화, 그 서사와 과학과 진보의 아홉 번째 예술’은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만화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