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7 | [특집]
짧았던, 오래된 흑백에의 열정
정성환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는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산업디자인(2004-08-09 11:10:31)
만화-
친절한 죽음, 오, 나의 어둡고 음탕한 사랑.
- 이마뉴 아미리 바라카, 미국의 시인
너무도 열광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쉽게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젖 떼듯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서 만화는 그렇게 쉽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이를 넷씩이나 낳아서 검은 포도 빛의 엄마 젖꼭지에 빨간약을 발라서 어렵사리 젖을 떼는 어려움 같은 것은 아예 있지도 않았고 아직도 지독히 끈질기게 괴로운 동행을 하는 담배에 대한 애증 같은 것도 전혀 없이 증발하듯이 그렇게 나의 만화에 대한 열정은 쉽게 사라졌다.
19인치 흑백 TV 속에서 한국말을 하는 그레타 가르보, 오슨 웰스, 미키 루니, 제임스 개그니, 에드워드 지 로빈슨, 험프리 보가드는 내가 그리도 열광했던 라이파이, 짱구박사를 단 한방에 내몰아 버렸다. 검정 네모 칸 속에서 과장된 몸짖과 말 풍선으로만 말하는 라이파이는 애저녁에 허리우드 갱스터들에게는 게임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정말 나를 열광하게 했던 멋진 망토, 무사풍의 턱수염을 한 검정 타이즈의 장영철, 천규덕 거기에 나중에 합세한 박치기 김 일까지 정말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의 폭력에 대한 우리의 대처방법의 모호함은 정신분열의 단계에 까지 이른다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은 폭력을 조장하지도 않지만 또한 폭력을 조장하는 산업에 대해 서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부모들은 사춘기 시절의 성격을 형성하는 책, 만화, 공포영화, 비디오 그리고 노래가사 등에 대해 눈감아 버린다. 모든 성공한 사회가 본능을 억제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이를 조장하고 있다. 아니면 최소한도 이것들에 대한 간섭에 무기력한척 하고 있다.
- 존 서머빌, 미국의 역사학 교수. 작가
‘우리의 맹세’가 맨 뒷장에 붙어있었던 기억으로 나는 아마 초등학교 아주 저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의 맹세’는 다시 ‘혁명공약’으로 그리고 다시 일반상식이 만화책의 맨 뒤를 교대하면서 차지하곤 했다. 흑백 TV가 흔치않던 시절에 질이 별로 안 좋은 두툼한 갱지에 완전히 새까맣지는 않은 잉크로 인쇄된 만화는 내 또래의 수많은 손때로 묘한 냄새와 묘한 촉감으로 나를 광분시키곤 했다. 항상 만화의 끝은 ‘계속’으로 끝나면서 다음 편을 항상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장치가 기가 막히게 되어있어 가벼운 거짓말로 어렵게 얻은 용돈을 들고 만화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게 하곤 했다. 평생에 단 한번도 컨닝이라곤 해보지 않은 나도 예외 없이 만화가게에서만은 옆 사람의 만화를 불안하게 훔쳐보게 했으며, ‘계속’이후의 스토리 때문에 나는 수많은 다음 편의 만화를 머릿속에서 그렸다 지웠다를 하면서 어린 날을 지내야 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약간은 젊었던 아버지는 항상 그즈음 사업의 실패와 재기 때문에 수없이 사업에 대한 시나리오를 썻다 지웠다 하곤 하셨던 것 같다. 아직은 다들 깊이 잠든 새벽에 이불에서 몸을 다 빼내지 않은 모습으로 굵은 엄지손을 이마에 대고 깊은 담배를 피우며 고민하실 때 나는 밝은 백열전구 때문에 이불을 깊이 뒤집어쓰고는 아버지처럼 수없이 ‘계속’이후를 그렸다 지웠다하곤 했다. 유달리 성격 급한 아버지를 따라 수없이 많은 질곡을 겪으셨던 어머니는 또 어떤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하셨을까.
최소한 나에게 있어 만화는 존 서머빌이 말한 것은 기우였다. 만화는 만화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를 보았던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만화는 그저 그림으로, 이야기로만 내게 남아 있지는 않다. 또한 나에게는 저 또한 희미하게 어렴풋이 남아 있지도 않다.
아버지의 고민과 좁은 방안을 가득 메운 담배연기와 높은 파도치듯 하는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집안 분위기와 어느 날 남의 집에서 오랫동안 TV를 보곤 하던 나를 무섭게 야단치시고는 그 다음 날로 집에 들여놓은 RCA 19인치 TV와 그 뒤로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 만화는 나의 어린시절의 또 다른 만화가 되어 가슴 속에 또렷이 꽂혀 있는, 잘 정리되어진 앨범처럼 남아 있다.
내가 그리도 쉽게 만화를 잊은 것은 ‘계속’의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영화 중간 중간의 짧은 광고시간도 참기 힘들어하던 내게는 그래도 허리우드 영화는 ‘계속’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도 두려워하고 또 싫어했던 아버지의 성격 급함을 닮아서 일까. 아버지와 똑 같이 희어져가는 나의 백발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