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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얄미운 타란티노, <킬빌 Vol 1, 2>
신귀백(2004-08-09 11:02:47)
예술의 전당 로비에서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7분), 1929>를 보았다. 달리와 함께 만들었다는, 면도날로 여인의 눈을 베는, 그 전설적인 무성영화 말이다.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 '기억의 고집'류 연작의 늘어진 시계 주물像들은 익히 아는 것들이었지만 청동 비너스의 젖가슴과 배꼽에다 서랍을 달아 성적 호기심을 표현한 영감태기의 분방한 상상력은 봐 줄 만했다. 처녀만 태운다는 유니콘의 창에 묻은 핏방울 덩어리 조각은 달리부터 홍상수까지 모든 남자들의 궁금증인지? 10년 연상의 애인 갈리와 함께 앉은 서로의 등이 뫼비우스 띠 같은 의자에 살짝 앉아도 보았다. 의미와 재미 그리고 힘까지 느껴졌다. 천재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많이 컸다) 타란티노의 <킬빌>. 피카소의 손을 거치면 고물 자전거 안장이 황소의 머리가 되고 핸들이 뿔이 되듯, 타란티노는 일본과 중국무술 자투리로 소를 만들어 <킬빌>이라는 만두를 빚는다. 웨스턴과 무협만두가 크로스 오버된 타란티노의 부대찌게는 전후편 모두 맛이 있었다. 어제의 낡은 것을 오늘에 새롭게 하는 그의 힘, 다른 사람이 흉내내기 힘든 독특한 아우라는 보는 사람의 입술을 깨물게 하기보다는 ‘고놈 참’ 하는 감탄을 자아내고 또 누구는 그를 천재라 한다. <킬빌1>. 사랑(혹은 임신)은 킬러의 본성을 애매하게 만든다. 하여, 아름다운 사냥꾼 브라이드는 한 때 의미 있는 타인이었던 빌을 죽여야 하는 처지. 사냥꾼은 또한 항상 사냥감이어서 우마 서먼은 빌의 총에 벌집이 되었으나 간신히 살아남고 복수는 시작된다. 이 꺽다리 여검객은 그녀의 미래와 행복을 앗아간 악당을 향해 신동경객잔에서 명쾌하게 니뽄도를 휘두른다. 벨 때의 속도감과 피에 탐닉하는 것은 구로사와의 명품 <쓰바키 산주로>에 대한 오마쥬. 팔이 잘려나가고 피가 솟구치는 장면은 오리지널에서의 호흡을 참을 만치의 정적도 없이 ‘그냥’ 베어대지만 밉지는 않다. 이어지는 <킬빌2>는 홈드라마로 눈물의 양념을 섞는데, 전편의 피바다에서 살아남은 그녀는 다시 무덤에 갖히게 된다. 관속에서 울부짖는 횡경막 저 깊은 데서부터 울려나오는 짐승의 울음과 거친 숨소리는 그 어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보다 내면의 복수를 암시하는 효과음으로 만빵이다. 생매장 된 묘지에서 공수도로 관을 깨고 살아남는 장면은 <롱키스 굿나잇>의 속곳만 걸친 지나 데이비스가 물 속에서 나와 총을 쏘는 장면과 함께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그림이 될 것이다. <재키브라운>이나 <저수지의 개들>을 만든 타란티노는 테마파크다. 그러나 말이다. <킬빌>에서까지 천재란 말은 과연 합당한가. 사실 이 복수극은 관습과 결별한 영화도 아니고 새로운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닌 B급의 ‘펄프 픽션’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고흐가 자화상 뒤에 목판화 우끼요에를 걸던 날들은 이해가 가지만 오늘날 <라스트 사무라이>를 비롯한 일본에 대한 미국의 구애는 분명 과장된 것일텐데 그는 씹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 경건을 모르는 천재는 소매치기 한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여 대고 평론가들은 그를 창의적 키치정신의 브랜드라고 추켜세운다. 참 나, 천재는 분석을 초월하는가? 천재의 광기는 때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토탈 이클립스>의 랭보가 또 <뷰티풀 마인드>의 수학 천재 또라이가 그렇다. 그러나 공산당을 하면서도 돈과 여자를 밝히던 피카소 철딱서니 없는 영감 달리, 그리고 자뻑의 귀재 타란티노는 사람을 열정과 유쾌함으로 이끈다. 허 참, 옛날에 안 그랬는데, 요즘의 우리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로 이 여시들의 널럴함이 부럽다. <하류인생>은 두부만 썰었는지 힘이 느껴지질 않고 전지현의 <여친소>는 색종이만 오린 듯하기에. 타란티노, 그는 잘 드는 칼로는 정교하게 베고 투박한 칼로는 쳐댄다. 무얼 베어야 하고 어떻게 베어야 ‘죽인다’는 감탄사가 뛰어나오는가를 안다. 마음을 잡아끄는 그것을 작품에 옮기되 어깨에서 힘을 뺄 줄 아는 그. 얄밉다. 꿈을 현실로 맹글고 행위와 노동을 예술로 치부하는 저쪽의 천재라 하는 선수들에게 ‘미운 년 시리즈’는 더 이상 농담도 아니다.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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