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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 | [문화저널]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말린 묵 조림의 잘깃거린 맛
최승범(2004-08-09 10:51:09)
말린 묵 조림의 잘깃거린 맛 “이건 무슨 음식?” “묵”. ‘묵’이라면 도토리묵?메밀묵?녹두묵(청포묵)하는 묵을 말한 것이 된다. 묵의 조리에 이러한 것도 있었던가, 호기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초여름의 일이다. 박병식(전 남원군수)?안홍엽(전 전주MBC 전무) 두 친구와 어울려 ‘저녁’을 들기로 하였다. 이날은 박병식 친구가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었다. 좌정한 곳은 「오목대 한정식집」. 옥호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오목대」의 기슭인 교동(63-13번지, 전화 232-8533)에 자리하고 있는 한옥식당이었다. 깔끔한 상차림이다. 그 중 처음 대한 한 접시의 음식 이름을 묻자, 도우미의 대답은 한마디, 그저-묵. 아닌게 아니라, 도토리묵의 빛깔이다. 농도가 짙다. 그러나 채를 처서 양념한 도토리묵도 아니요, 묵볶이?묵저냐?묵튀각도 아니다. 자름자름 놓여있는 한 가닥을 들어 맛을 보자, 도토리묵 향기이다. 그러나 그 씹히는 맛은 무슨 육질의 것인가 싶게 잘깃거린 맛이다. 난생 처음 대하는 묵 음식이요, 묵 맛이다. 도우미에게 이 묵음식의 바른 이름을 알아오도록 부탁하였다. 이윽고 주방을 관장한다는 이점순여사가 들어왔다. 한 자리 두 친구와는 구면인 듯 하다. 알고보니, 나와도 고향이 같은 남원 출신이 아닌가. 묵음식의 이름인 즉, - 말린 묵조림. 이란다. 한 모 한 모의 묵을 적당한 두께로 썰어서 정갈하게 말린 것을 저장하였다가 필요할 때에 내어 쓴다는 것이다. 상에 올릴 때는 따뜻한 물에 불려 자름자름 썰어서 참기름?간장으로 조려내면 된다는 설명이다. 이여사는 「2004풍남제 제 1회 맛장인 경연대회」의 밑반찬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는 도우미의 귀뜸이었다. 17세기 시골에 묻혀 산 선비 이휘일(李徽逸)의 노래가 떠오른다. - ‘보리밥 지어 담고 도토릿국을 하여 / 배 곯는 농부들을 진시(?時:때를 쫓아) 먹이어라 / 아해야 한 그릇 올려라 나도 맛보아 보내리라.’ ‘도토릿국’이란 장국으로 끓인 ‘묵국’을 말함이다. 어느 해였던가, 경주 나들잇길에 해장국을 청하자, 시래기가 든 국말이에 채친 메밀묵을 얹어 낸 것이었다. 끓여낸 국말이인데도 시원한 맛이 돋았다. 도토리묵을 채쳐 넣은 묵국도 별미라는 생각이었다. 청포탕(淸泡湯)은 녹두묵을 사용한 묵국이다. 닭고기?쇠고기 국물이어서 옛날엔 귀물로 꼽았다. 보리밥에 도토리묵국을 노래한 저 선비의 어머니는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음식의미방)이라는 우리나라최초의 조리서를 남긴 안동 장씨(1598-1680)이거니, 저 집안 내림의 묵국은 어떠한 맛이었을까. 상위의 ‘말린 묵조림’ 한 가닥을 다시 즐기자니, 윤덕인(尹德仁)교수가 쓴 어느 글에선가 읽은 - 묵장아찌 도 떠오른다. 묵장아찌는 간장에 담는다고 했다. 3~4일에 간장을 끓여 식혀서 다시 부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쓸 만큼 꺼내어 참기름을 깨소금에 무쳐 쓰면 된다는 것이다. 까맣게 간이 밴데다 꼬들꼬들한 맛이라고 했다. 이 집, 이여사의 ‘말린 묵 조림’의 빛깔도 까맣다. 잇 사이에 안기는 맛은 꼬들꼬들 잘깃잘깃한 맛이다. 묵 한 모를 놓고도 뒷날을 요량하고 맛을 챙긴 지난 날 여인들의 슬기가 새삼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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