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7 | [문화저널]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 사투리
김남규(2004-08-09 10:49:21)
야야, 장독 덮어라’
“야야, 장독 덮어라.”
“하늘이 멀쩡헌디 머덜라고 독을 덮으라고 헌데여.”
“새살떨지 말고 후딱 덮어, 이러코 삭신 쑤시는 것 본게 고닥새 비 오겄다.”
그 사이에 잠자리 두어 마리 바지랑대에 앉아 자울거리다 화들짝 날아가고......
“옴맘마, 멜짱허던 하늘이 먼 비다냐?”
그리하여 어김없이 ‘빨래 걷어라’, ‘물코조깨 트고 오니라’ 등등 비설거지로 손 바빠지기 일쑤다.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몸으로 얻어지는 지혜가 있기 마련이다. 제법 신식 교육 덕으로 목이 빳빳해진 이들도 혹간 이 체득된 지혜 앞에서 ‘뻐신’ 목 오그라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이 또한 유명을 달리한 어른들을 그리워하고 흠모하게 만드는 사연 중 하나이다.
지금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장독 덮어라’라는 말을 들을 일도 없으려니와 그에 연관된 일련의 생활들조차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즉 장독을 왜 열어 놓았으며 또 왜 덮어야 하는가의 질문은 어느덧 우리의 삶에서 해당사항 없음으로 분류된다는 말이다. 왜 장독을 열어두고 또 덮어야만 했는가, 물론 장을 담는 과정 중의 일부이다.
“장을 당굴라먼 소금을 물에 녹히 가지고 하루이틀 재워, 그리갖고 그 간수를 항아리다 부서갖고 메주 띄우고 참숯 늫고 고추도 늫고 혀. 그리고 메주 우게다 통깨를 쪼깨 뿌려. 그리고 그 항아리다가 새내키 꼬아갖고 둘러 보선도 오리갖고 항아리다 붙이고”
“항아리다가 버선은 머덜라고 붙인데요?”
“말허자먼 발걸음을 조심히라는 뜻이지”
“아하”
“그렇게 히가지고 항아리 뚜겅을 열어놔.”
“왜요?”
“햇빛을 쬐먼 우게가 멋이 안 생겨”
“그냥 덮어 노먼요?”
“안 그러먼 멋이 피어, 고자리도 생기고 장맛도 들 허고, 그런게 지금으로 말 허자먼 소독여. 그렇게 히서 한달이나 한달 보름을 열어 놓았다가 메주를 껀져서 그놈으로는 된장도 맹글고 꼬추창도 담어. 그리고 그 물은 퍼다가 대려갖고 장을 맹글어. 고놈은 그냥 뚜겅을 덮어 놓아”
그러니까 장독 뚜껑을 열어 놓는 기간이 한달이나 한달 보름 정도 되는 셈이고 그 사이에 비가 몇 번은 내릴 것이며 그 기간이 만약 농한기에 해당하는 한여름에 이루어진다면 “야야 장독 덮어라”는 예고 없이 덤벼드는 소낙비의 공격을 알게 하는 신경통 증세로부터 덤으로 얻게 되는 부수 효과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장’과 관련된 생활민속 편에서는 「증보산림경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장(醬)은 장(將)이다.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하여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그리하여 장독대는 어느 집에서고 극진히 위하였으며 해가 뜨면 뚜껑을 열어 놓고 해가 지기 전에 덮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을 담그려면 택일을 하고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장맛이 나빠지는 것은 귀신이 장을 먼저 먹기 때문이라 여기고 이것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장독에 금줄을 쳤는데, 금줄에 고추와 숯을 거는 까닭은 고추는 귀신이 붉은 빛깔을 싫어하기 때문이며 숯의 구멍 속으로 귀신이 들어가 버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라도는 유독 음식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고 그 중심에 장맛이 있었으니 이와 관련된 생활문화가 정교하게 발달해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콩을 이용하여 장을 담는 역사는 기원적으로 동이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그것이 지금에 이르는 것이니, 장 담기 비법은 집집마다 은밀한 방식으로 전수되어 왔을 터이며 그렇게 따져 보면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장맛은 수천 년이라는 세월의 이끼가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역사의 축적물이다. 그러니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다’라는 전국에서 통용되는 진리 차원의 상식화된 담론을 비롯하여, ‘뚝배기보다는 장맛이여’, ‘주인 집 장 떨어지자 나그네 국 마단다’ 등의 속담들이 생기는가 하면, 그 중 단연 재미난 우리 동네 속담 ‘햇장은 쌈빡히도 날내 나는 벱이여,’도 장맛에 민감한 이 동네 아낙네들 사이에서 얻어진 세상살이의 이치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무리 살아가기가 빠듯해도 그리고 아무리 편리한 생활을 지향해 간다 해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우리의 오랜 문화들이 있게 마련이다. 장 문화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며 작금의 세태로 보면 그조차도 짧은 시기 동안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하긴 이제는 장과 관련된 발효 음식 전체가 발효 엑스포로 상품화되고 있는 판이니 과학적 검증을 거치며 그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셈이어서 위안을 삼을 만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집집마다 전승되어 온 그 비법들이 다양하게 남아 찬란한 전라도 음식 문화의 중심을 잡아주기를 소망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